몇 년 전부터 우리 사회에 회자되는 단어 중에 하나가 '꼰대'다. 과거에는 노인, 선생 등을 뜻하는 은어였지만 최근 들어서는 '자신의 생각이나 방식을 남에게 강요하는 존경받지 못하는 윗사람' 정도로 인식되는 듯하다.
이제 꼰대라는 단어는 모든 이들의 1순위 기피 대상이자 일종의 사회적 탈락을 의미하게 될 정도인데 그로 인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내가 혹시 꼰대가 아닐까?'라며 스스로에게 묻는 정도가 되었다. 우리 사회가 이토록 꼰대라면 학을 떨게 된 이유가 뭘까?
권위적인 자세, 남의 말을 듣지 않는 폐쇄성, 내로남불의 태도, 시대에 뒤떨어진 사고방식 등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자신의 방식을 남에게도 강요하는 습관이 가장 문제일 것이다.
그리고 여기 저 멀리 스웨덴에서 온 꼰대 중에 상 꼰대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이 있다. 바로 2015년 개봉한 동명 영화의 원작. 프레드릭 배크만의 '오베라는 남자'다.
스웨덴의 어느 마을. 그곳에는 '오베'라는 남자가 살고 있다. 그는 꼰대다.
일체의 상술을 배격하며 사브(스웨덴의 자동차 브랜드) 이외의 차는 고철덩어리 취급하고 이웃들과 걸핏하면 싸우는 데다 허구한 날 관공서에 민원을 넣는 독거노인. 아침 일찍 일어나 마을 주변을 걸으며 바닥에 떨어진 쓰레기는 없는지, 거주자 구역을 침범하는 차량은 없는지, 자전거는 자전거 보관소에 들어가 있는지를 시찰하고 규칙을 어기는 사람이 있다면 친절하게 전화를 걸어 당신은 표지판에 쓰인 글자도 읽을 줄 모르는 쓸모없는 머저리라는 것을 일깨워 주는 동네에서 알아주는 꼰대. 바로 그가 오베라는 남자다.
그런 오베에게도 소냐라는 사랑스러운 아내가 있었다. 괴팍한 성격의 외톨이였던 오베를 진심으로 사랑해준 여인. 하지만 오랜 투병 끝에 그녀가 세상을 떠나자 오베 또한 아내를 따라가기로 마음먹는다.
하지만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오베는 죽는 것도 쉽지가 않다. 옆집에 이사 온 가족이 어설픈 운전으로 우편함을 박살 내 분위기를 깨지 않나, 죽으려고 목을 매달았더니 줄이 끊어지지 않나, 달리는 기차에 투신하려 했더니 웬 남자가 철로에 먼저 쓰러지지 않나, 머리에 총을 쏘려 했더니 갈 곳 잃은 청년들이 문을 두드리지 않나, 약을 먹고 죽으려 하니 학대받는 고양이가 문 앞에서 울부짖지 않나.
그럴 때마다 오베는 마음대로 죽지도 못하냐며 툴툴대면서도 세상을 등지려는 시도를 잠시 멈추고 주변을 돌보기 시작한다. 이웃의 차를 친절한(?) 욕설과 함께 주차해주고, 선로에 쓰러진 남자를 구하고, 집 나온 청년들에게 방을 내어주고, 짓밟히는 고양이를 구해 집에 들인 것.
아내의 곁에 가려는 시도가 실패할 때마다 그녀가 묻힌 곳으로 가 '다음번에는 꼭 갈게'라며 약속하지만 오베도 사실 알고 있었다. 그런 식으로 재회하는 것은 소냐도 원치 않을 것임을 말이다.
목숨을 끊으려다 의도치 않게 이웃을 돕고 소냐의 묘비 앞에 서서 툴툴대기를 여러 번. 어느새 오베는 마을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다. 그사이 마음의 벽을 조금씩 허문 오베 또한 내심 이웃과의 교류를 받아들이기 시작하고 그들과 함께 '하얀 셔츠의 사내'들로부터 옛 친구이자 앙숙인 루네를 구해내며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시도 또한 그만두게 된다.
시간은 부지런히 계절을 갈아입고 이 모든 이야기가 시작된 우편함이 박살난 날로부터 4년째 되던 겨울. 한 장의 봉투 안에 자신의 인생을 모두 갈무리해놓고 오베는 잠들듯이 눈을 감는다. '빌어먹을 난리법석을 떨어서는 안 된다'는 그의 유언을 마을 사람들은 기꺼이 거역하고 오베의 장례식장에는 3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석해 그를 떠나보낸다.
동네에서 유명한 꼰대이자 마을의 큰 어르신이었던 오베라는 남자를.
소설과 영화가 거의 유사하지만 450페이지에 달하는 책의 내용을 압축하느라 영화에서는 몇 가지 생략되거나 변형된 부분이 있다. 함께 알아보자.
1. 오베라는 남자 : 여러 이벤트의 생략으로 (놀랍게도) 전반적으로 영화에서의 오베의 꼰대력이 소설의 그것만 못하게 그려진다. 하얀 셔츠 공무원들의 차를 가둬 버린다던지 아이패드 하나 산다고 가게를 뒤집어 엎는다던지하는 장면들이 생략된 것. 그리고 소설에서는 이웃집에 서성대는 강도들을 쫓아내다가 흉기에 맞아 쓰러지는 장면이 있는데 영화에서는 오베의 심장이 너무 커서 생긴 질환 때문에 쓰러진 것으로 묘사했다.
2. 소냐라는 여자 : 소냐와 오베의 운명적인 첫 만남이 조금 다르다. 영화에서는 화재로 집을 잃은 오베가 기차에서 자다가 우연히 그 차량에 탄 소냐와 만나는 것으로 묘사되지만, 소설에서는 기차를 타고 출근하던 오베가 승강장에 앉아있는 소냐를 발견하고 즉흥적으로 그녀에게 다가가 말을 거는 것으로 그려진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에 소냐와 오베가 천국의 열차에서 재회하여 손을 맞잡는 장면이 있는데 소설에서는 없는 내용이다. 소냐라는 여자가 오베라는 남자의 삶의 시작이자 끝이었다는 점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라 생각된다.
3. hyundai : 영화에서는 파르바네의 남편인 패트릭이 현대차를 몰다 오베의 우편함을 박살 내지만 소설에서는 도요타 차량이다. 사브 이외의 모든 차를 고철덩이로 보는 오베에게 그게 그거 아닌가 싶겠지만 도요타를 사는 아드리안을 두고 '그 빌어먹을 꼬마는 현대차를 보던 중이었으니까. 하마터면 더 나빠질 수도 있었다.'라고 생각하는 것을 보면 현대차에 좀 더 박한 모양이다. 여담으로 작가인 프레드릭 배크먼은 현대 싼타페를 탄다고 한다. 이 작품을 집필할 때는 ix35(투싼)을 몰았다고.
4. 죽빵 : 영화에서는 앙숙이었던 오베와 톰이 기차선로 사이에서 다투는 것으로 나오지만 소설에서는 샤워실에서 오베가 죽빵을 날리는 것으로 그려진다.
5. 눈길 : 영화에서는 파르바네가 오베의 집 앞에 쌓인 눈이 치워지지 않은 것을 보고 오베의 죽음을 예감하지만 소설에서는 역시 오베답게 집 앞의 눈까지 다 치우고 영면한 것으로 그려진다.
우리에게는 생소한 스웨덴 소설인 이 '오베라는 남자'는 유명 블로거이자 칼럼니스트인 프레드릭 배크만의 데뷔작이자 스웨덴에서만 70만 부 이상이 팔린 베스트셀러다.(스웨덴의 인구는 1000만 명 정도이다.)
평소에 접하기 힘든 스웨덴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한국에서도 인기를 끌 수 있었던 것은 작가의 유머러스한 문체와 가슴이 따뜻해지는 스토리, 그리고 무엇보다도 '츤데레' 그 자체라 할 수 있는 오베라는 주인공의 매력 덕분일 것이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정해진 양의 커피를 마시고 정해진 일과를 수행하며 규범에 어긋난 행동을 하는 자는 가차 없이 응징하는 남자. 자신만의 정의 안에 살며 이를 벗어난 사람을 보면 혀를 끌끌 차지만 가슴 한구석에 따뜻함을 간직한 남자. 무뚝뚝하기 그지없지만 자신을 사랑해준 한 여자만을 위해 평생을 헌신하고 싸우며 사랑한 남자. 그가 바로 오베라는 남자이자 이 소설의 이야기 그 자체이다.
오베는 꼰대일까? 위에서 오베는 꼰대라고 몇 번을 이야기해놓고는 무슨 말이냐 하겠지만 우리 사회가 일컫는 꼰대와 오베는 조금은 다른 게 사실이다.
꼰대는 간섭하되 행동하지 않는다. 오베는 스스로 행동한다. 물론 간섭도 한다.
꼰대는 자신만의 방식과 생각을 강요한다. 오베는 원칙과 규범을 준수하라 할 뿐이다. (주먹을 휘두르면서)
꼰대는 남을 헐뜯기 좋아한다. 오베는 설령 앙숙이라 할지라도 뒤에서 험담하지 않는다. 앞에서 때린다.
꼰대는 약자 앞에서 강해진다. 오베는 강자인 하얀 셔츠의 남자들 앞에서 전투력이 상승한다.
꼰대는 자신만의 세상에 갇혀 변하지 않는다. 오베는 이웃들과 함께하며 스스로 따뜻한 남자로 변신했다.
이러한 사람을 우리 사회는 보통 '꼰대'가 아닌 '어르신'이라고 부른다. 개인화되고 파편화된 요즘 세상에서 참 듣기 힘들어진 어르신이라는 호칭이 이 오베라는 남자에게는 더 어울려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