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에서 돌아온 자
- 소설과 영화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화성'이라는 행성이 요즘같이 주목받는 때가 또 있었을까.
아마도 화성 이주계획을 천명하고 있는 미국의 모 사업가 덕이겠지만 사실 과학계에서 화성은 예전부터 인류가 우주로 뻗어나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교두보로 여겨지고 있었다.
수십 년 전의 바이킹호부터 패스파인더, 큐리오시티를 거쳐 최근 임무를 시작한 퍼서비어런스까지. 수많은 무인탐사장치가 이 붉은색 행성을 탐사하기 위해 쏘아 올려졌다. 말 그대로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서 말이다. 그 덕에 이제 현대인들은 스마트폰으로 유튜브만 켜도 화성의 풍경을 볼 수 있는 시대를 맞이했다. 수십억 달러치 수고가 들어간 사진치고는 광막한 모래벌판과 듬성듬성 고개를 내민 돌덩어리만 가득한 황량한 풍경인 것이 사실이지만.
녹색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 화성이라는 황무지에 누군가의 말처럼 정말 인간이 살 수 있을까. 모두가 고개를 갸웃할 때 뛰어난 상상력과 적확한 과학적 묘사로 화성에서의 생존을 이야기한 작품이 있다.
오늘의 이야기는 미국의 작가 앤디 위어의 우주 SF 3부작 중 첫 번째 작품이자 리들리 스콧 감독, 맷 데이먼 주연의 동명 영화의 원작 '마션'이다.
아무래도 좆됐다. 우리의 주인공 마크 와트니는 심사숙고 끝에 결론을 내렸다. 본인은 좆됐음을.
왜냐고? 그가 다름 아닌 화성에 혼자 남겨졌기 때문이다. 수학여행을 가다가 휴게소에 남겨진 것이 아니다. 지구와 가장 가까울 때에도 5천6백만 km의 거리에 놓여있는 화성에 혼자 남겨진 것이다.
물론 처음부터 혼자는 아니었다. 마크가 소속된 '아레스 3' 팀은 화성 탐사를 위해 조직된 팀으로 리더인 루이스, 조종사인 마르티네즈, 우주유영 담당 베크, 화학자이자 유일한 유럽인 포겔과 막내이자 시스템 관리 조한슨까지 총 6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의 동료들은 화성 탐사 임무를 수행하던 중 예기치 않게 마주친 모래폭풍 때문에 NASA로부터 임무 취소 지시를 받아 모선인 헤르메스호를 타고 지구로 귀환하고 있었다. 화성을 탈출하던 도중 마크가 모래폭풍에 휩쓸려 사라지자 원칙에 따라 그를 사망한 것으로 간주하고 남은 팀원들만이라도 피신한 것.
하지만 동료들의 예상과는 다르게 마크는 거센 모래폭풍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식량과 물은커녕 모래와 바위만 가득한 화성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수행 불가능한 임무와 함께. 모래를 파먹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실성할만한 상황이지만 그는 도를 지나치게 낙천적인 사람이었다. 차분하게 자신의 현재 상황을 점검하고 구조될 방법을 강구해보는 마크.
우선 그가 속한 아레스 3팀의 후속주자인 아레스 4 탐사대가 약 4년 후 마크가 서있는 장소에서 3,200km 떨어진 스키아파렐리 분화구에 착륙할 예정이었다. 그리고 동료들이 남기고 간 식량을 아껴먹으면 어찌어찌 1년 정도는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니 이제 그의 임무는 명확했다. 우선 지구와 교신할 방법을 찾을 것. 그리고 3년 치 식량을 확보해 존버 할 것.
임무를 설정한 마크는 식물학자로서의 지식을 십분 활용해 여태껏 그 누구도 시도하지 못한 화성에서의 농사를 시도한다. 막사 밖의 모래와 지구에서 가져온 흙, 그리고 대원들의 똥을 섞어 경작용 토양을 만들고 거기에 감자를 심기 시작한 것이다. 농사에 필요한 물은 MAV설비에서 하이드라진 연료를 끌어와 화학반응을 일으켜 조달했다. 마크가 숨 한번 잘못 쉬어서 막사가 통째로 날아갈뻔하는 등 숱한 위기가 있었지만 어느새 그의 감자들은 싹을 틔우기 시작한다.
같은 시간 지구. 아레스 계획의 책임자인 벤카트와 NASA의 국장인 테디 샌더스는 논쟁 끝에 아레스 3 탐사대의 기지를 위성으로 촬영하기로 한다. 아레스 3 탐사대가 남긴 물자는 얼마나 되는지, 마크의 시신은 어떤 상태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그 과정에서 위성 운영자인 민디파크가 태양전지가 깨끗하다든지 물자들의 배치가 임무 일지와 상이하다든지 하는 몇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하고 NASA는 곧 깨닫게 된다. 마크 와트니가 살아있다는 것을.
다시 화성. 일단 감자라는 비상식량을 확보한 마크는 지구와 교신할 방법을 찾기 시작한다. 그리고 떠올린 한 가지 방법. 바로 마크보다 훨씬 먼저 화성에 도달해 임무를 수행하다 잠든 무인 화성탐사선 패스파인더가 그것이었다. 아직 통신이 살아있는 패스파인더와 그에 달린 카메라를 이용해 지구와의 통신을 시도한다는 생각. 위성으로 마크의 움직임을 보고 있던 NASA에서도 관제센터를 만들어 마크의 패스파인더와 신호를 주고받자 드디어 외로운 화성인에게 구출될 수 있다는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천재들이 모인 집단이라 그런지 통신수단이 금세 진화한다. 패스파인더의 카메라를 이용한 원시적인 통신에서 아스키코드를 이용한 단어 짜깁기를 거쳐 화성 탐사 로버 해킹을 통한 텍스트 메시지까지. 그리고 NASA와의 교신 도중 동료들이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마크는 크게 화를 내게 된다. 어쩔 도리가 없던 NASA는 마크의 상황을 헤르메스호에 알리고 대장인 루이스를 비롯한 팀원들은 충격에 빠진다.
그러던 어느 날 불쌍한 화성인에게 사고가 터진다. 수명이 다된 에어로크 연결부가 파열되며 마크와 에어로크가 대포알처럼 통째로 날아가버린 것. 이번에도 기적같이 살아남은 마크가 막사를 수습해보려 하지만 이미 화성의 대기에 노출된 감자는 물론 토양의 박테리아까지 모조리 죽어버리고 만 상황이었다. 남은 식량으로는 600화성일 까지만 버틸 수 있었다. 지구로부터의 보급선은 856화성일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사고를 인지한 NASA는 주마가편식으로 보급 계획을 서두른다. 하지만 채찍질이 너무 과했을까, 일정을 당겨 쏘아 올려진 보급선이 공중에서 폭발해버리고 이제 마크에게는 희망이 남아있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마크는 억세게 운이 없지만 또 한편으로는 억세게 운이 좋은 남자. 보급선 폭발 소식을 들은 중국 국가 항천국이 자신들의 '타이양셴'을 이용하라며 NASA에 손을 내밀고 NASA의 과학자인 리치 퍼넬이 제안한
계획, 그러니까 헤르메스호를 타이양셴으로 보급하고 화성으로 되돌려보내 마크를 구조한다는 '리치퍼넬기동'에 아레스 3팀 모두가 동의하자 마크에게는 다시 희망이 보이기 시작한다.
헤르메스호가 화성에 착륙할 수는 없기에 마크는 화성을 탈출해 궤도를 도는 동료들과 합류해야 했다. 다행히 아레스 4팀의 탐사를 위해 먼저 화성에 보내진 MAV가 그로부터 3,200km 거리에 있어 로버를 개조해 이동 준비를 하는 마크. 하지만 이번에는 로버에 구멍을 뚫다가 패스파인더를 고장 내 지구와의 연락이 두절되고 만다.
누가 누굴 탓하겠는가. 결국 연락이 두절되기 전의 정보만 가지고 마크 와트니는 로버를 개조해 길을 떠난다. 그리고 거대한 모래바람과 로버 전복사고 등 숱한 역경을 이겨낸 끝에 아레스 4호 MAV에 도착해 그 앞에서 주먹을 휘두르고 겅중겅중 뛰며 기뻐한다. 그리곤 MAV에 올라 오랜만에 다시 NASA와 교신을 하는 마크. 화성 탈출을 위해 MAV를 거의 해제 수준으로 개조하며 헤르메스호를 기다린다.
D-DAY. 이역만리 화성에서 일어나는 마크 와트니 구출작전을 듣기 위해 전 세계 사람들이 광장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헤르메스호 승무원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전 세계에 중계되고 와트니의 '준비 완료'라는 말에 군중들이 낮게 환호했다.
조한슨의 카운트 다운이 끝나자 마크의 MAV가 하늘로 치솟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기서 또 문제가 발생했다. 추진력이 약했던지 헤르메스호와 마크의 거리가 68km에 이르렀던 것. 해결책을 찾아 고심하는 루이스에게 마크가 제안한다. 자신의 우주복에 구멍을 내 '아이언맨'처럼 헤르메스호로 날아가겠다고. 마크의 제안을 한마디로 기각한 루이스가 문득 팀원들에게 헤르메스호의 일부를 파열시켜 누출되는 공기로 궤도를 조정하자 제안한다. 계산 결과 좋은 결과를 얻자 즉각 헤르메스호의 에어로크 하나가 폭발하고 마크와의 거리가 회수 가능한 거리로 좁혀진다. 그리곤 베크가 뛰어내려 누더기가 된 MAV에서 마크의 팔을 잡자 그의 18개월간의 외로운 사투가 끝이 났다. 마크를 구출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휴스턴의 관제센터를 비롯한 전 세계에서 환호성이 울려 퍼지고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마크를 동료들이 괴로운 표정의 하이파이브로 맞이한다.
갈빗대가 몇 개 나가고 몸에서는 똥내가 진동하지만 그날은 마크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날이었다.
원작자인 앤디 위어가 과학적으로 정확한 묘사를 하기 위해 500페이지가 넘는 작품을 써놓은 터라 영화판에서는 과학적 설명은 크게 덜고 그게 크게 덜어낸 거라고? 내용을 압축해 소설 못지않은 멋진 작품을 만들어 냈다. 두 작품 간의 차이점을 몇 가지 살펴보자.
1. 통신망 : 영화에서는 극 후반까지 마크가 지구가 통신을 주고받지만 소설에서는 중반 즈음에 드릴로 로버에 구멍을 뚫던 마크가 실수로 패스파인더를 고장 내 통신이 두절되는 것으로 묘사된다. 그 덕에 그에게 불어닥치는 거대한 모래폭풍을 온 지구인이 목격하지만 정작 화성에 있는 마크가 알지 못하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한다. 통신마저 두절되어 완벽하게 고립된 환경에서 기어코 살아남는 그의 기지가 돋보이는 장면.
2. 섬찟한 계획 : 영화에서는 묘사되지 않는 내용이지만 소설에서는 헤르메스호가 타이양셴으로부터의 보급에 실패할 경우 조한슨을 제외한 모든 팀원들은 약을 먹고 자살한다는 계획을 세운다. 남은 식량과 사망한 대원들의 시신까지(!) 섭취하며 가장 어린 조한슨이라도 살린다는 계획. 다행히 보급이 성공적으로 완료되자 마르티네스는 조한슨에게 '누구를 가장 먼저 먹을 생각이었냐?'는 짓궂은 농담을 한다.
3. 구출 : 영화에서는 탈출선에 타고 있던 마크를 팀의 리더인 루이스가 구출하러 간다. 그리고 헤르메스호와 와트니의 거리가 너무 멀어 구출작전이 무산될 위기에 처하자 와트니는 특유의 똘기를 발휘해 우주복 손바닥 부분에 구멍을 뚫어 '아이언맨'처럼 날아 루이스에게 안긴다. 극적 연출보다 정합성을 중요시한 소설에서는 좀 더 싱거운 묘사를 하는데 업무분장대로 우주유영 담당인 베크가 와트니를 구출하며 와트니의 '아이언맨' 작전은 우주선 일부를 폭발시켜 추력을 얻는데 참고하지만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4. 위기 : 영화에서는 마크에게 닥치는 여러 위기들이 생략되었다. 상술했던 모래폭풍이나 화성 탈출용 MAV를 향해 이동하던 중 로버가 전복되어 생명유지장치나 태양광 패널 등이 바닥에 내팽개쳐진 것 등등. 불쌍한 화성인을 더 괴롭히지는 말자.
5. 과유불급 : 영화에서 마크는 화성에 혼자 남겨지든 막사 안에서 폭발사고가 발생해 죽을뻔하든 반드시 카메라 앞에 앉아 그날에 있던 일을 이야기하는 기록충이자 설명충이다. 소설에서는 훨씬 더 심각해서 로버가 거꾸러져 넘어지건 에어로크가 폭발해 멀리 튕겨나가건 즉시 컴퓨터를 켜서 일지를 기록하는데 좀 지나치게 느껴질 정도로 세세한 정보를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터라 이게 과학 설정집인지 소설인지 모를 정도.
*더 세세한 차이점은 나무위키에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으니 참조
https://namu.wiki/w/%EB%A7%88%EC%85%98(%EC%98%81%ED%99%94)/%EC%A4%84%EA%B1%B0%EB%A6%AC
'마션'을 포함한 대부분의 SF작품은 가깝던 멀던 대체로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SF라는 장르가 아직은 구현되지 않았지만 훗날 우리에게 찾아올 기술의 발전과 그로 인해 변화된 사회를 그려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SF에서 묘사된 미래는 현재 우리가 생각해 낼 수 있는 최선의 미래이지만 먼 훗날에 대한 예측이란 게 결국 지금 현재를 기반으로 할 수밖에 없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고 하지 않던가?
때문에 정작 SF작품에서 묘사한 기술이나 사회가 현실이 되었을 때 그 작품들을 돌이켜보면 당시에는 최선이었을 많은 예측이 틀렸거나 촌스러운 표현으로 가득한 것이 사실이다. 마치 100년 전에 예측한 21세기의 모습과 2022년을 살아가는 현재 우리 생활의 차이랄까. 예를 들자면 1902년 영화 '달나라 여행'에서 대포를 이용해 달에 간다거나 2013년의 영화 '그녀(her)'에서 만들다만 보청기 같은 무선 이어폰을 귀에 꽂고 다니는 것 말이다.(2016년에 나온 에어팟 1세대는 콩나물처럼 생겼으니 비슷할지도)
때문에 이 '마션'이라는 작품은 언젠가는, 그때가 언제가 되었든 간에 반드시 위화감이 드는 옛날 작품이라는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이 작품이 세련된 SF로 남는다는 것은, 이역만리 화성에서 살아 돌아온 마크 와트니의 고생 이야기가 '과거에 쓰인 현재'가 아닌 '현실이 되지 못한 미래'의 이야기가 된다는 것은 인류가 지구라는 요람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이 창백한 푸른 별이 수명을 다하는 날 우주에서 사라진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어느 과학자의 말대로 우리 인류가 사라지는 날 온 우주에 빛나는 별과 은하는 더 이상 경탄의 대상이 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후손으로 세상에 날 수 있었던 수없이 많은 생명들과 그들이 만들어낼 노랫소리 또한 그저 없던 일이 될 것이다.
인류의 역사를 돌아보면 우리 인간,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은 뗏목 한 장에 의지해 태평양을 누비고 지구가 둥근지 평평한지도 모른 채 인도를 찾아 망망대해를 나서며 에베레스트 꼭대기와 남극점에 깃발 한 장 꽂기 위해 무수한 목숨을 바치는 습성을 지녔다. 바로 그러한 습성, 끊임없이 탐험하고 끝없이 팽창하는 습성이야말로 인류를 정의하는 가장 큰 특질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이제 우리 눈앞에 다가온 목적지, '화성'이라는 목적지가 우리의 습성을 자극하고 있다. 수천만 km의 거리 너머에서 자신에게 도전하라며 손짓하고 있다. 역사는 반복되는바, 머지않아 화성에도 인간이 꽂은 깃발이 나부낄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게 일론 머스크가 말한 대로 2029년에 끝날지 NASA의 말대로 2030년대 초부터 시작될지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확실하다. 언젠가 인류가 화성에 발을 딛는 날에 이 '마션'이라 작품이 지구인 모두에게 회자될 것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 즉시 우리 인류는 그다음 목적지를 찾아 분주히 움직일 것이라는 사실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