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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가네 Dec 24. 2020

머니볼

다윗이 골리앗을 이기는 법

마이클 루이스 저 '머니볼'(출처 네이버 책)

 - 영화와 책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


 2002년 9월 4일,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홈 콜리세움 야구장, 9회말 1아웃에 스코어는 11:11


한 왼손잡이 타자가 타석에 들어선다. 그 사내의 이름은 스캇 해티버그. 완두콩처럼 생긴 헬멧을 쓴 그의 얼굴에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맞이한 이번 타석은 여느 때와 같은 타석이 아니었다. 팀 기록을 넘어 아메리칸 리그 최장 기록인 20연승의 문턱에서 다 이긴 게임의 리드를 잃은 것이 바로 몇 분 전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그가 출루를 해서 다이아몬드를 돌아 홈을 밟으면 대망의 20연승을 달성할 수 있었다. 그러니 어찌 긴장을 안 하리오.


그는 크게 숨을 내쉬며 방망이를 앞뒤로 몇 번 휘두른다. 해티버그가 노려보는 시선 끝에는 상대팀 캔자스시티 로열스의 마무리 투수, 제이슨 그림슬리가 서있다. 괜히 씩 웃는 것이 영 기분 나쁜 웃음이다.


 그림슬리가 던진 초구는 살짝 빠지는 볼, 해티버그는 애초에 초구를 칠 생각이 없었던 듯 꿈쩍도 하지 않는다. 헬멧을 고쳐 쓰고 다시 방망이를 몇 번 휘두른 뒤 타격자세를 취한 해티버그를 향해 그림슬리가 2구를 던진다. 기다렸다는 듯이 높게 제구된 공을 있는 힘껏 타격한 해티버그는 재빨리 1루 베이스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따-악'


경쾌한 타격음과 함께 높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타구를 보며 그림슬리는 '안돼!'라며 비명을 지르고 관중들은 모두 일어나 미친 듯이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작 공을 때린 당사자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그라운드에서 가장 늦게 알아차렸다. 그의 타구가 구장의 우중간 110미터를 훌쩍 넘어 관중석 상단에 꽂힌 것을 말이다. 두 손을 번쩍 치켜들며 3루를 돌아 홈을 밟는 해티버그를 동료 팀원들이 무자비하게 폭행(?)하고 관중석에는 그들의 20연승을 자축하는 걸개가 펄럭거린다.


모든 선수부터 구단 관계자들까지 승리에 기뻐 날뛰는 와중에도 오클랜드 에이스(A's, 애슬레틱스의 약자)의 단장 빌리 빈은 침착하기 짝이 없다. 그러다 문득 자신과 함께 경기를 관전하던 마이클 루이스에게 말한다. 


"그저 또 한 번의 승리를 거뒀을 뿐입니다."

 

그리고 1년 뒤, 그들의 이야기는 마이클 루이스에 의해 한 권의 책으로 엮어져 야구계에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바로 베넷 밀러 감독, 브래드 피트 주연의 동명 영화의 원작 머니볼(MONEYBALL)이다.




1. 유망주


야구계에 '5툴 플레이어'라는 말이 있다. 파워와 정확성, 빠른 발과 넓은 수비 범위에 뛰어난 송구 능력까지 갖춘 만능선수를 일컫는 표현으로 야구선수에 대한 최고의 찬사라고 할 수 있다.(물론 야수의 이야기다.)

 

빌리 빈은 바로 그 5툴 플레이어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었다. 어려서부터 야구에 두각을 나타낸 빌리를 향해 스카우터들은 연신 엄지를 치켜세우며 그를 야구선수로서의 5툴에다 잘생긴 외모까지 6툴을 가진 남자라고 평가했다.(그래서인지 할리우드의 대표 미남배우 브래드 피트가 그를 연기했다.)


당연하게도 어떤 스카우터도 그를 보고 반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성공 가능성이 높은 유망주는 지옥에서라도 건져오는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들 답게 빌리를 향한 치열한 쟁탈전이 벌어졌고 주전 중견수 자리를 약속한 뉴욕 메츠가 그를 차지하게 된다.


하지만 스카우터들의 예상과는 달리 빌리 빈은 마이너리그에서조차 눈에 띄는 활약을 하지 못했다. 타석에서는 범타로 물러서기 일쑤였으며, 한수 아래로 여겼던 동료들이(대릴 스트로베리, 레니 다익스트라) 점차 자신을 추월하는 것을 목격하며 자꾸만 움츠러들어갔다. 운이라는 요소가 강하게 작용하는 야구장에서 누구나 겪을 수밖에 없는 타석에서의 실패를 그는 쿨하게 흘려보내지 못하고 계속 되뇌며 스스로를 갉아먹고 있었다. 그도 결국 스타가 될 수 없는, 수도 없이 많은 그저 그런 실패한 유망주 중에 하나였던 것이다.


몇 년의 기다림과 좌절 끝에 결국 메츠는 빌리에 대한 기대를 접고 1986년, 그를 미네소타 트윈즈로 트레이드하게 된다. 이후로 수년간의 저니맨(이리저리 팀을 옮겨 다니는 선수) 생활을 거친 끝에 1990년, 빌리는 결국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에서 유니폼을 벗고 전력분석원으로 새 출발을 하게 된다.

  

2. 스카우터 들


빌리의 한계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그저 추켜세우기에 급급했던 스카우터들에 대한 기억 때문이었을까, 2002년 여름, 그해 신인 드래프트에서 뽑을 선수를 고르는 회의에서 팀내 스카우터들을 바라보는 빌리의 눈에 회의감이 가득하다. 자신의 예전 경험도 그렇거니와 단장의 자리에 있는 빌리의 의도를 무시하고 스카우팅 책임자가 멋대로 고졸 투수를 드래프트에서 지명하는 바람에 분에 못 이겨 사무실 의자를 집어던지고 벽에 커다란 구멍을 낸 것이 당장 작년 일이었던 것이다.


그런 빌리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탁자에 둘러앉은 스카우터들은 고리타분한 이야기만 늘어놓는다. 이 선수는 스윙 자세가 좋다는 둥, 저 선수는 몸매가 좋다는 둥.


참다못한 빌리는 논의하던 선수 명단을 전부 쓰레기통에 처박아버리고 화이트보드에 새로운 이름을 써 내려가기 시작한다.


마크 티헨, 제러미 브라운, 스티븐 스탠리, 존 베이커....


이른바 듣도 보도 못한 선수들의 이름을 빌리가 써 내려갈 때마다 스카우터들은 나지막이 신음소리를 내거나 실소를 터트렸다. 간간히 제기되는 스카우터들의 반발에 빌리는 '우리는 청바지 모델을 뽑는 것이 아니다'라며 다른 구단들, 특히 부자구단들이 주목하지 않는 이 선수들의 '출루율'에 집중하고 역설하는데 영화에서는 이런 빌리의 생각을 한 문장으로 잘 요약해준다.


여기서 양키즈처럼 전략을 짰다간 경기장에서 양키즈에게 왕창 깨져요

3. 빌 제임스


캔자스시티의 한적한 시골에서 식품공장의 야간 경비원으로 일하던 빌 제임스는 말 그대로 괴짜였다. 그는 시쳇말로 심각한 야구 덕후였는데 하루 종일 야구에 대한 괴상한 상상을 하며 야구 박스스코어를 파고드는 일만 하는 식이었다. 야구를 파고들다 못한 그는 1977년, 그 당시로서는 큰돈인 112달러를 지불하고 '야구개요'라는 책을 출판해 내기에 이르는데 '투수에 따라 관중 수의 차이가 존재하는가' 따위의 이야기를 스테이플러로 찍어 제본한 조악하기 짝이 없는 책이었다.


당연히 아무도 그 책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고 단 75명의 또 다른 괴짜들만이 그 책을 구입했다. 하지만 되려 그 75명이라는 숫자에 고무된 빌은 더더욱 박스스코어를 파고들어 1978년 두 번째 야구개요 책을 출판하게 된다. 그리고 그새 입소문이 났는지 이번에는 250권이라는 엄청난(?) 숫자의 책이 팔린다. 75권을 판 것에 고무된 사람이 250권을 팔았을 때의 기분이란! 아예 이 쪽 길로 노선을 정한 그의 야구개요는 이제 연간 간행물이 되어 그 후 9년간 매년 출판되고 기존 야구계가 당연하게 여기던 모든 것에 날선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다.


'실책이란 기록이 정확한 기록인가?' , '평균 타율이 가장 높은 팀이 진정 가장 공격력이 좋은 팀일까?',  '희생타라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는 플레이 인가?' 등등 기존 야구계의 고정관념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주장을 펼친 것이다.


고집 센 기존 야구인들은 그의 이야기를 헛소리로 치부했지만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빌 제임스의 책을 보고 야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이제 막 선수 유니폼을 벗고 새로운 길로 들어선 빌리 빈도 포함되어 있었다.


4. 반쪽짜리 선수들


오클랜드 에이스는 적은 연봉 총액에도 2001년 시즌, 102승이라는 매우 좋은 성적을 내며 리그 디비전시리즈에 진출했다. 비록 그 디비전 시리즈에서 메이저리그 최고의 명문구단이자 엄청난 몸값을 자랑하는 선수들이 즐비한 뉴욕 양키즈에게 밀려 탈락했지만 사람들은 오클랜드를 향해 격려의 박수갈채를 보냈다. 하지만 그들 모두가 생각했다. 오클랜드의 선전은 순전히 운이며 올해는 그 운도 다했다고 말이다. 바로 구단의 주축 선수인 마무리 이스링하우젠, 외야수 쟈니 데이먼 그리고 1루수 제이슨 지암비가 FA(자유계약 선수)가 되어 팀을 떠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빌리는 떠난 이들과 같은 성적의 선수를 대려 오는 대신(구단 재정상 가능하지도 않다.) 수비 능력이나 주루 능력 등이 결여된 선수들, 이른바 반쪽 짜리 선수들을 팀 내외에서 구해다 적재적소에 배치해 떠난 선수들의 빈자리를 메꾸는 발상을 하게 된다.


반쪽짜리 선수들이란 한때는 알아주는 타자였지만 이제는 나이를 먹어 기량이 떨어진 데이비드 저스티스, 제이슨 지암비의 동생이자 둔한 몸으로 뒤뚱대며 수비하는 제레미 지암비, 그리고 보스턴에서 부상으로 방출된 스캇 해티버그가 바로 그들.(영화에서는 아직 유명해지기 전인 크리스 프랫이 해티버그 역을 맡았다.) 많은 나이, 부족한 수비력 등으로 다른 팀에서는 저평가하는 선수들을 세이버메트릭스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출루율'이라는 하나의 잣대만 가지고 평가하여 거저나 다름없는 헐값에 영입한 것이다. 


그리고 그해 여름, 반쪽짜리 선수였던 스캇 해티버그는 오클랜드의 20연승을 완성하는 홈런을 때려낸다.


5. 한계와 새로운 시작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다.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고. 승자독식구조의 전형인 메이저리그에서 아무리 페넌트레이스(정규시즌)에서 날고기어도 가을야구에서 힘을 쓰지 못하면 실패한 시즌이라 비난받는 것이 각 구단 단장들의 숙명이다. 2002년의 빌리도 마찬가지였다. 


오클랜드 에이스는 팀의 기둥뿌리 세 개를 뽑힌 채로 시즌을 맞았다. 당연히 그 누구도 그들의 선전을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은 오히려 직전해보다 1승이 더 늘어난 103승으로(59패) 지구 우승을 따내고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저력을 보여주었지만 미네소타 트윈즈에게 덜미를 잡혀 2년 연속으로 가을야구의 첫 관문을 넘지 못했다.


충분히 박수를 받을만한 시즌이었지만 야구는 결과로 말하는 스포츠, 그들의 패배가 머니볼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전문가들과 언론의 공격은 악랄하고 집요했다. 


이에 염증을 느낀 빌리는 자신에겐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를 실행에 옮겨 스스로를 시장에 내놓아 트레이드하려는 시도를 하게 되는데 역시 인기 있는 매물이었던지 오래지 않아 보스턴 레드삭스의 새로운 주인, 존 헨리로부터 보스턴의 단장직을 맡아달라는 제안이 오게 된다. 그것도 무려 5년 1,250만 달러라는 역대 최대 규모의 제안을 받은 것이다. 


형식적인 절차인 계약서 작성만을 남겨놓은 빌리는 오클랜드에서의 생활을 정리하며 보스턴에서의 새로운 단장 역할을 머릿속에 그리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문득 깨닫게 된다. 


빌리 자신은 보스턴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것을, 정든 오클랜드로부터 수천 km 떨어진 보스턴에서 새로운 구단주와 일하는 것이 내키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이 모든 소란은 자신의 가치를 확인해보고 싶었던 빌리 스스로의 변덕 때문이었으며 자신의 가치는 역대 최대 규모의 계약을 오퍼 받음으로써 확실하게 증명이 된 셈이라는 것 또한 말이다


곧바로 존 헨리에게 전화를 걸어 단장직을 사양한 빌리는 오클랜드 에이스의 단장으로 복귀하고, 그의 뒤를 이어 오클랜드의 단장으로 부임하기로 예정되어있던 폴 디포디스타도 다시 보좌관의 자리로 돌아온다.


그리고 빌리와 폴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자신의 자리에서 다음 시즌에도 부자구단들을 꺾을 전략을 구상하기 시작한다. 지금까지 그랬듯, 언제나처럼.




원작 도서와 영화 모두 2002년 오클랜드 에이스의 기적이라는 진정한 원작이 있는 만큼 독자들도 두 작품이 실제 에이스의 2002년과 어떻게 달랐는지 비교해 보는 것을 추천해본다. 여기서는 독자들에게 더 친숙하며 실제 오클랜드의 2002년과 꽤 많은 차이가 있는 영화를 중심으로 실제와 어떻게 다른지 간단히 비교해 보자.

(아래에서 다룰 내용은 벤저민 바우머, 앤드루 짐발리스트 공저의 '세이버메트릭스 레볼루션'에서 많은 부분을 발췌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2015년 책자로 선수의 WAR 등은 현재와 다를 수 있습니다)


1) 단장회의


영화 : 영화 초반 빌리는 클리블랜드 인디언즈의 단장 마크 샤피로를 만나러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주요 용건은 이번 시즌 팀에 필요한 불펜투수의 영입. 우람한 덩치의 직원들 사이에 서있던 샤피로와 의견 일치를 보지 못하던 빌리는 푸짐한 인상의 피터 브랜드를 눈여겨보게 되고 짧은 만남에도 번뜩이는 그의 식견에 반한 빌리는 클리블랜드에서 불펜투수 대신 피터를 얻어오게 된다.


실제 : 불펜투수 하나 얻겠다고 비행기를 타는 단장은 없다.(음료수도 안주는 구단의 단장은 더더욱) 또한 단장들 간의 대화에 직원들이 끼는 경우도 흔치 않으며 피터의 실제 인물인 폴 디포디스타는 이미 1998년부터 빌리와 함께 일을 하고 있었다. 또한 폴 디포디스타는 무척이나 깡마른 몸매를 가진 하버드 졸업생인 반면 피터는 예일대를 졸업한 뚱보인데 영화 속 등장인물과 실존인물의 괴리가 다른 인물들보다 훨씬 큰 편이다.

 

2) 반등


영화 : 영화의 중반부, 연패가 거듭되는 와중에도 클럽하우스에서는 음악소리가 울려 퍼지고 이번 시즌부터 팀에 합류한 제레미 지암비는 볼썽사나운 꼴로 엉덩이를 흔들고 있다. 그 꼴을 보다 못한 빌리는 소싯적 재능을 발휘해 방망이를 휘둘러 오디오를 박살 내버리고 클럽하우스는 한순간에 절간이 된다. 분이 풀리지 않은 빌리는 그날부로 팀을 쇄신한다며 피터의 반대까지 물리치고 제레미 지암비는 물론 신인왕 후보인 카를로스 페냐까지 트레이드해버린다. 감독인 아트 하우는 빌리를 향해 자신의 팀을 망쳐놨다며 울상을 짓지만 그다음부터 오클랜드는 거짓말처럼 상승세를 타게 된다.


실제 : 사실 제레미 지암비는 2000년 2월에 트레이드로 에이스로 건너왔다. 그리고 에이스를 떠나서는 0.390이었던 출루율이 0.435로 더 상승한 반면 그를 내주고 에이스가 받아온 존 메이버리는 좋은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 그리고 제레미가 트레이드되고 난 후로도 카를로스 페냐는 2달 가까이를 더 에이스에 있다가 (마이너리그로 갔다) 트레이드된다.

 아마도 '02.5.22일에 있었던 지암비 트레이드의 시점과 에이스의 성적이 저점을 찍고 올라가는 시기가 공교롭게도 맞아떨어지는 것을 빌리의 팀 쇄신을 통해 팀이 반등했다는 스토리로 엮어내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근데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제레미 지암비를 영입한 건 누구더라?)


 3) 사라진 영웅들


영화 : 아무리 단장이 주인공인 영화라지만 그라운드 위에서는 선수들이 주인공인 법. 영화는 그라운드 위의 주인공으로 1루수 스캇 해티버그와 불펜투수 채드 브래드포드를 내세운다. 괜찮은 포수였지만 부상으로 선수생명이 위태로운 해티버그와 괴상한 투구폼으로 인해 광대라고 놀림받는 브래드포드는 빌리 빈이 좋아하는 싸고 저평가된 자원들. 남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는다 했던가, 야구를 포기하려 했던 그들은 빌리 빈이 준 기회에 보답하기 위해 악착같이 노력하여 결국 기적을 일구어 낸다.


실제 : 마이클 루이스의 원작과도 일맥상통하는 문제로 해티버그와 브래드포드를 부각하려다 실제 오클랜드의 2002년 시즌을 이끌었던 팀의 간판선수들을 거의 없는 사람 취급을 해버렸다. 팀의 간판타자 미겔 테하다, 에릭 차베즈와 흔히 영건 선발투수 3인방으로 불리던 배리 지토, 마크 멀더, 팀 허드슨이 영화에서는 그 역할이 몹시 축소된 것. 그나마 그해 아메리칸리그 MVP를 수상한 미겔 테하다는 음료수가 안 나온다며 투덜대는 데이비드 저스티스에게 '오클랜드에 온 걸 환영한다.'라며 농담을 하거나 결승타를 치는 장면 정도는 나오는 반면 에릭 차베즈와 영건 3인방은 일절 언급이 없다.(그리고 오클랜드도 음료수 정도는 공짜라고 한다.)

미겔 테하다 : 영화에 나오려면 MVP쯤은 찍어줘야 한다.

그해 미겔 테하다와 에릭 차베즈 두 선수가 기록한 WAR(대체 선수 대비 승리 기여도)는 무려 9.2에 달했는데, 이는 오클랜드 에이스 전체 야수진 WAR의 약 40%를 차지하는 비중이었다. 영건 3인방의 경우는 이보다 더해서 배리 지토가 6.9, 팀 허드슨이 6.6, 마크 멀더가 4.4를 기록, 도합 17.9의 WAR을 기록함으로써 팀 투수진 전체 WAR(25.3)의 71%를 합작할 정도로 기여도가 높았다. BWAR('베이스볼 레퍼런스'에서 제공하는 WAR) 기준 각각 3.3과 1.6을 기록한 해티버그와 브래드포드가 좋은 활약을 펼치기는 했지만 투타의 기둥을 아예 없는 사람 취급해버리고 그들을 부각한 것은 빌리 빈의 머니볼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라는 감독의 의도임을 감안해도 너무한 처사라고 생각되기도 한다.




오후의 나른한 햇빛이 비치는 창가. 그 창가 앞 테이블에 사과 한 개가 놓여 있다. 이제 피카소 화풍의 화가와 모네 화풍의 화가를 불러다 그 앞에 앉혀놓고 사과를 그려보라고 하자. 같은 풍경의 같은 사과를 그릴 테니 똑같은 그림이 나올까? 아닐 것이다. 같은 사과를 그린다지만 피카소 화풍의 화가는 각진 회색 조각이 이리저리 들러붙은 사과와 비슷한 무엇인가를 그릴 테고 모네 화풍의 화가는 풍성한 햇빛이 느껴지는 새빨간 사과를 그릴 것이다. 어쩌면 산들바람에 흔들리는 베일 커튼을 추가해 그릴지도 모른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마이클 루이스의 머니볼과 브래드 피트의 머니볼은 오클랜드 에이스의 2002년 시즌이라는 사과를 각자의 시각과 의도에 맞게 훌륭하게 재구성한 그림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마이클 루이스의 머니볼은 야구 이야기를 하고 있기는 하지만 본질적으로 경제학 서적이다.(출판사도 경제학 서적을 다루는 회사다) 스타 선수들을 거느릴 수 있는 자금력이 곧 경쟁력인, 이 메이저리그라는 시장에서 오클랜드 에이스라는 자금력이 빈약한 기업이 어떻게 선전할 수 있었는가? 다른 구단이 고리타분한 방식으로 선수들을 평가할 때 발상을 전환해 남들이 주목하지 않는 저비용 고효율의 선수를 발굴하는 것이 그 답이었다는 혁신의 이야기이며, 작가인 마이클 루이스가 오클랜드 에이스의 선수단 및 구단 직원들과 함께 부대끼면서 취재한 일종의 르포 형식을 취한다. 때문에 빌리의 성격을 몹시 괴팍하게 표현하는 등 실제 있었던 사실을 조금은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되 크게 왜곡하지 않고 팩트에 기반한 서사를 이어간다. 


이에 반해 브래드 피트의 머니볼은 빌리 빈이라는 개인에 좀 더 집중한 휴먼스토리이자 드라마라 할 수 있다. 빌리의 가족들이 제법 큰 비중으로 등장하며 야구단의 단장으로서 뿐만이 아닌, 한 명의 흔한 이혼남이자 한 여자아이의 아버지로서의 빌리의 모습도 잘 표현했다. 또한 "자신이 평생 해온 경기에 대해 우리는 놀랄 만큼 무지하다"라는 미키 맨틀의 말과 제레미 브라운의 홈런 일화를 통해 빌리로 하여금, 그리고 관객들로 하여금 스스로가 이룬 것에 대하여 한번쯤은 곰곰이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다만 주인공인 빌리 빈을 부각하고 '여기서 양키즈처럼 전략을 짰다간 경기장에서 양키즈에게 왕창 깨진다'라는 말로 대표되는, '차별성'이라는 영화의 주제를 강조하기 위해 사실을 크게 왜곡하는 것에도 거침이 없다 보니 좋은 영화이지만 현실을 지나치게 왜곡했다는 비판을 많이 받기도 했다.




머니볼이 만병통치약이자 유일한 진리는 절대 아니다. 실제로 마이클 루이스가 혁신의 사례로 언급한 2002년 오클랜드의 신인 드래프트는 2020년 현재에서 보면 딱히 잘한 드래프트라 할 수 없었으며, 정규시즌에서 좋은 모습을 보인 팀이 포스트시즌만 되면 무너지는 것이 몇 년째 반복되며 '머니볼로는 우승할 수 없다.'라는 말이 해마다 들리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어차피 정답이 무엇인지는 결국 누구도 모른다. 머니볼이 답인지 속된말로 돈지랄이 답인지는 모른다는 것이다. 시즌 내내 욕만 먹던 감독이 포스트시즌에 돌입하자 작두라도 탄 마냥 신기에 가까운 용병술을 보이고 부진의 늪에서 허덕이던 선수가 끝내기 홈런을 날리는 것이 야구이며 영화에서 빌리의 딸이 기타를 치며 노래하듯 우리의 인생은 미로이자 수수께끼이니 말이다.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떻게 가야 할지 모른다면 자신감 없이 주저앉아있는 것보다 주어진 상황에 맞추어 최선을 다하면서 그냥 쇼를 즐기는 편이 낫지 않을까. 


그 끝에 밝은 출구가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 말이다.


-라이킷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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