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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가네 Jul 15. 2020

네 인생의 이야기(컨택트)

운명이란 정해져 있는가

출처 : 네이버 책

  - 영화와 소설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이라는 것이 과연 존재할까?

이런 질문을 받으면 혹자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할지 모른다.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사람의 운명이라는 건 전부 정해져 있어."라고.

 또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사람에게는 자유의지가 있으니 운명이란 것은 존재할 수가 없어."

 과연 어느 쪽이 진실일까.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한가?


 여기 사주팔자를 다루는 철학관에서나 접할법한 운명이라는 질문을 세련된 SF적 상상력 통해 던지는 작품이 있다.

 바로 2016년 개봉한 '문과생들의 인터스텔라', 드니 빌뢰브 감독의 영화 컨택트(원제 arrival)의 원작 '네 인생의 이야기' 되시겠다.  





 '네 인생의 이야기'는 세계적인 SF작가 테드 창의 소설집 '당신 인생의 이야기'에 수록된 중편소설로, 어느 날 느닷없이 지구 상에 나타난 외계인들과 의사소통하는 임무를 언어학자인 루이즈 뱅크스 박사가 받아들이며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소설은 루이즈가 딸에게 읊조리듯 담담하게 내뱉는, 시점이 오락가락하는 독백으로 시작된다. 나와 네 아버지는 지금 디너쇼를 보고 돌아와 보름달을 보기 위해 파티오(테라스)로 나와 있다고. 그리고 네 아버지가 내게 이렇게 묻는다고. "아이를 가지고 싶어?"


 그리고는 시점이 바뀌어 이야기의 주 무대가 되는 몇 년 전, 외계인들의 음성을 해독해달라며 냉철한 인상의 웨버 대령과 물리학자 게리 도널드가 루이즈를 찾아온다. 그들이 루이즈 앞에 내어 놓은 녹음기에서 흘러나오는, 물에 젖은 개가 퍼덕거리는 듯한 음성만으로는 이 소리에 담긴 의미를 해석할 수 없다는 그녀의 의견을 받아들인 웨버 대령은 '체경'이라고 이름 붙은 거대한 거울 같은 외계인들의 장치가 있는 군용 캠프로 루이즈를 불러들이게 된다.


 시점이 바뀌어 먼 미래, 그녀와 그녀의 남편이 어느새 갈라서 서로 일 년에 전화를 한통이나 할까 말까 하게 되었을 때, 루이즈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딸이 사고로 사망했다는 소식의 전화. 전남편과 딸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시체안치소를 찾은 그녀에게 그곳의 직원이 시트를 걷어 딸의 얼굴을 보여준다. '당신의 딸이 맞느냐'는 눈빛의 직원에게 루이즈는 말한다. "예 맞습니다. 제 딸입니다."


 다시 군용 캠프, 게리와 함께 체경 앞에 선 루이즈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거울을 흘끗 대며 살핀다. 그리고 체경 너머의 문을 열고 나타난 '헵타포드'라는 별명의 두 외계인, ET를 눈앞에서 보는 마냥 경탄해 마지않는 루이즈를 게리가 다독이고 그들은 외계인들이 지구에 온 목적을 캐기 위해 나름의 방법으로 의사소통을 시도한다.

 천리길도 한걸음부터라 했던가. 체경을 향한 걸음으로 시작된 그들과의 대화는 조금씩 진전을 이뤄 어느새 루이즈는 점차 그들의 언어를 습득하기 시작한다.


 그들의 문장은 몹시 특이하다. 일곱 개의 다리 위에 얹혀있는 원통 모양의, 동서남북 어느 방향이건 앞과 뒤가 될 수 있는 방사형으로 구성된 그들의 몸과 같이 그들의 문자 또한 어떤 식으로 회전해도, 어느 지점에서부터 읽기 시작해도 하나의 문장이 완성되는 방식이다.

 또한 그들의 문장은 신비하다. 헵타포드가 쓴 문장은 최초의 획과 마지막 획이 서로 밀접한 상관관계를 이루어 전달하고자 하는 뜻을 표현한다. 이는 그들이 최초의 획을 긋기 전부터 문장 전체를 구성해야 가능한 일이라는 말이다.


 완성된 문장과 최초의 획을 비교하며, 나는 이 획이 메시지에 포함된 몇 개의 다른 구에 관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획은 처음에는 '산소'를 의미하는 어의 문자에서 다른 몇몇 원소들과 그것을 구분하는 한정사로 기능했고, 그다음은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가더니 두 개의 달의 크기에 관한 묘사에서 비교의 기능을 담당하는 형태소가 되었다가..(중략)..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획은 하나의 연속된 선이었고, 플래퍼가 가장 먼저 쓴 획이었다. 이것은 헵타포드가 최초의 획을 긋기도 전에 문장 전체가 어떤 식으로 구성될지 미리 알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197 ~ 198p)


 그러던 중 루이즈는 자신의 방을 찾은 게리에게서 타포드가 과학자들이 보여주는 영상을 보곤 관심을 보였다는 소식을 듣는다. 반색하는 루이즈를 보며 게리는 분필을 들고 칠판에 도표를 하나 그린다.

빛은 물속의 목적지를 향한 최단 시간의 경로를 취한다.

 과학자들이 외계인에게 보여주었다는 내용은 페르마의 최소 시간의 원리였다. 빛이 공기에서 물속으로 들어갈 때 굴절률의 차이로 방향이 다소간 꺾이게 되는데 물속에 막대기를 넣으면 휘어 보이는 것을 다들 한 번쯤은 보았을 것이다. 이 빛의 경로가 특이한 것은 바로 실선으로 표시된 이 경로가 빛이 A지점에서 B지점으로 도달하는 가장 빠른 경로라는 점에 있다. 실선 좌측의 점선으로 표시된 경로는 거리는 더 짧지만 물속에서 이동하는 거리가 길어 물속에서 더 느린 속도를 갖는 빛의 특성상 목적지에 도달하는데 더 오랜 시간이 걸리며, 실선의 오른편 경로는 물속의 구간은 줄어드나 전체적인 거리가 멀어져 마찬가지로 시간이 더 오래 걸린다는 것이었다.


"빛은 이전의 지점을 향해 출발한 다음 나중에 진로를 수정할 수는 없어... 따라서 빛은 처음부터 모든 계산을 끝마쳐야 해."


 마치 광선이 의식을 가진 듯이 극한의 경로를 찾는다는 게리의 말에 루이즈는 머릿속에 어떤 생각 하나가 떠오르는 것을 느낀다.


광선은 어느 방향으로 움직일지 선택하기 전, 자신의 최종 목적지를 알고 있어야 한다. (201p)
이것은 헵타포드가 최초의 획을 긋기도 전에 문장 전체가 어떤 식으로 구성될지 미리 알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었다.(198p)


 언어가 사고를 지배한다 했던가. 마치 장문의 글을 왼손으로는 첫 글자를 써 내려가고 오른손으로는 마지막 글자부터 써 올라가면서도 한치의 오차도 없이 신속하게 문장을 완성하는 듯한 그들의 문자를 연구하며 루이즈는 어느새부턴가 자신 또한 그들과 같은 방식으로 사고하는 것을 깨닫게 된다.

 바로 시간의 흐름을 과거에서 미래로 이어지는 직선과 같은 형태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 과거, 현재, 미래를 한 번에 인식하는 헵타포드의 사고방식을 습득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일까 소설의 후반부로 갈수록 루이즈의 미래, 현재, 과거가 뒤섞이며 딸과의 미래에 대한 그녀의 독백이 잦아진다. 그리고는 급기야 캠프 안에서 게리와 회의를 하는 루이즈의 사고와 딸과 함께 숙제를 하는 미래의 루이즈의 사고가 '논 제로섬 게임'이라는 단어로 서로 이어지기에 이른다.


 연구가 깊어질수록 루이즈와 게리의 사이도 깊어진다. 어느새 그들은 연인 사이로 발전하게 되고 독자들은 루이즈의 독백에 등장하는 남편이 사실은 게리였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 즈음부터 그녀는 삶을 살아가는 것을 일종의 연극과 비슷한 무엇으로 인지하기 시작한다. 게리와 함께 저녁을 해 먹기 위해 들른 마트 주방용품 코너, 루이즈는 샐러드볼 하나를 집어 들며 미래에 이 샐러드볼이 어린 딸의 머리 위로 떨어져 병원에서 머리를 꿰매는 소란이 벌어짐을 예지한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그 자리에 곱게 샐러드볼을 내려놓을테지만 그녀는 '본능적으로 주저 없이' 그것을 장바구니에 담는, 정해진 미래에 부합하는 행동을 수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고 그녀가 모종의 힘에게 조종을 받아 자유의지가 사라진 꼭두각시가 된 것은 아니다. 비극의 주인공을 연기하는 배우가 그 극을 수행하기 위해 '자율적'으로 정해진 대사와 행동을 수행하듯, 루이즈와 같이 미래의 벌어질 모든 일이 담긴 '세월의 책'을 읽고 미래를 알게 된 사람들은 자율적으로 자신의 삶이라는 연극을 지상 위에 구현하기 위한 연기를 하게 되는 것이다. 설사 그 연기가 모두가 대사를 알고 있을 정도로 뻔하거나 혹은 자신에게 심장을 쥐어뜯는 고통을 주는 연기일지라도 말이다.


"엄마가 한 얘기는 진짜 얘기하고 달라."
"벌써 무슨 얘긴지 알고 있는데 왜 나더러 읽어달라는 거야?"
"얘기를 듣고 싶으니까!" (220p)


 결말, 외계인과 인간들 간의 정보를 교환하는 '선물교환식'에서 헵타포드는 일본에서 갓 완료된 연구결과의 복제품, 그러니까 이미 인간들이 알고 있던 지식만을 선물이랍시고 풀어놓고는 우리는 이제 그만 떠난다며 지구궤도에서 홀연히 사라진다. 급작스런 그들의 퇴장에 혼란스러워하는 군인들과는 다르게 헵타포드들의 퇴장뿐 아니라 선물교환식에서 있었던 대화마저 연극의 대본을 미리 엿본 마냥 모두 알고 있었던 루이즈는 담담하기 그지없다.


 다시 시점이 바뀌어 이 이야기가 시작된 루이즈와 게리가 함께 보름달을 보며 서있는 파티오, 자신의 인생을 바꿔놓은 헵타포드와의 작업들과 오늘 밤 딸을 잉태할 것이라는 사실, 그리고 게리도 딸도 언젠가 그녀를 떠나갈 것임을 알며 깊은 생각에 잠긴 루이즈에게 게리가 다가와 묻는다.

"아이를 가지고 싶어?"

그러자 루이즈는 미소 지으며 대답한다.

 "응"




 영화 '컨택트'와 소설 '네 인생의 이야기'는 외계인과의 조우로 미래를 보는 능력을 가지게 되는 주인공이 겪는 사건이라는 기본적인 플롯을 제외하면 세세한 설정과 결말 그리고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다.(영화 줄거리 소개는 생략하겠다. 궁금하신 분은 구글에게 물어보면 친절히 설명되어 있으니 참고하시길)

굵직한 차이점만 몇 개 살펴보자.


 1. 게리의 설정 : 소설에서 '게리 도널드'라 불린 남자는 영화에서 '이안 도넬리'이라 불린다. 이안은 물리학자라기보다 루이즈의 유능한 파트너 정도로 묘사되지만 게리는 그보다 좀 더 물리학자다운 모습을 보여주며 결정적으로 페르마의 원리를 루이즈에게 소개함으로써 그녀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한 번에 인식하는 통시적인 시각을 가지게 하는데 일조한다.


2. 딸의 사망 : 영화에서는 루이즈의 딸이 난치병에 걸려 어린 나이에 사망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소설에서는 대학까지 졸업하고 금융업에 종사하다 취미로 암벽등반을 하던 중 실족사하는 것으로 묘사되어있는데 딸과의 이별을 대하는 루이즈의 태도 또한 사뭇 차이가 있다. 또한 영화에서는 딸의 요절을 예견했음에도 딸을 잉태하여 세상에 내어놓은 루이즈를 향해 잘못된 선택을 했다며 힐난한 이안이 그로 말미암아 그녀를 떠났음을 암시하는 장면이 있는데 소설에서는 정확한 이혼 사유가 밝혀지지 않는다.

 

 3. 외계인들의 설정 : 소설에서 플래퍼, 라즈베리로 불리는 외계인 듀오가 스크린에서는 애벗, 코스텔로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또한 수천 년 후 인류에게 받을 도움을 위해 지구에 왔다는 애벗과 코스텔로와는 다르게 플래퍼와 라즈베리는 소설의 마지막까지 그들이 지구에 나타난 이유를 밝히지 않는다.


4. 분열 : 소설에서는 묘사되지 않는 내용이지만 영화에서는 정체불명의 외계인의 등장에 긴장한 각국 정부가 위태위태한 공조를 이어가다 결국에는 군사적 행동을 취하는 등의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또한 일부 'TV를 너무 많이 본' 군인들이 상부의 명령 없이 외계인들을 공격하는 등 개판 오 분 전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위기상황을 맞아 비이성적인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잘 살려낸 장면으로 보인다.


5. 결말 : 소설은 외계인들의 '가야 할 때가 되었으니 간다'는 식의 허무한 퇴장으로 막을 내린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외계인들이 내놓은 메시지(무기를 주다)를 접하고 분열된 강대국들의 첨예한 갈등을 루이즈의 미래를 보는 능력으로 해결하는 이벤트가 있다. 소설과 같은 결말을 영화로 재현했다간 허무하다고 욕먹기 딱 좋으니 극적인 효과를 결말에 가미하기 위한 장치 이리라.



 

 서두에도 말했듯이 '네 인생의 이야기'는 운명에 관한 이야기이다. 자신의 운명을 알고 살아가는 한 여자와 요절의 운명을 타고난 그녀의 딸의 이야기. 딸이 단명할 줄 알면서도 그녀를 세상에 내어 놓고, 딸이 절벽을 오르다 사고를 당할 줄 알면서도 그녀를 붙잡지 않은 루이즈의 행동은 일견 무책임하고 냉정해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딸의 생애를 통틀어 회상하는 루이즈의 독백은 딸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으로 가득 차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딸을 사랑하되 그녀의 죽음에는 수수방관하는 이 모순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작가인 테드 창은 이와 같이 미래를 아는 것과 자율의지가 서로 모순된 관계임을 인정한다.


'세월의 책'은 절대 옳아야 한다. 그러나 이 책이 뭐라든지 그녀는 그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 어떻게 하면 이 두 가지 사실을 양립시킬 수 있을까? 양립할 수 없다, 가 통상적인 대답이다.... 존재 자체가 모순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210p)


 이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테드 창은 세월의 책을 읽은 미래를 아는 사람들은 그에 순응하는 삶을 살게 된다는 절충적인 대안을 제시한다. 미래를 아는 경험이 그 책을 읽은 사람으로 하여금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운명에 정해진 행동만을 수행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마치 모든 대본을 외고 무대 위에서 연극을 펼치는 배우들과 같이 말이다.

 그렇기에 세월의 책을 읽은 루이즈라는 배우는 사랑하는 딸의 마지막 길을 막을 수 없었던 게 아닐까.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과연 세월의 책이란 것이 존재하여 우리의 모든 일상이 정해진 이야기대로 흘러간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자유의지가 있는 우리는 그런 속박에 얽매어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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