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인간에게 준 마지막 선물 “치매”

... 그리고 아름다운 “죽음”

by 하늘마루

퇴근 후 현관문을 열면 제일 먼저 “엄마”하고 부르며 거실로 들어선다.

그러면 한치의 머뭇도 없이 엄마는...

“아가~ 어서 와~~”

나이가 60을 바라보고 있어도 딸에게 엄마는 늘 나는 “아가”였다.

남편은 곧잘 장모님 “아직도 무슨 아가라고 합니까”하며 눈을 흘기기도 하였다. 이제 하늘나라 가신지 3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현관문을 들어서면 엄마가 계셨던 방을 제일 먼저 보는 게 습관이 되었다.

집에 아무도 없으면 엄마방을 향해

“엄마아~~~”하고 불러보곤 한다.

난, 아직도 엄마를 마음에서 보내지 못하고 있다.

(60이 넘어도 아직 난 "엄마"라는 호칭이 좋다)


며칠 전 우연히 인터넷 기사를 보았다. “아름다운 죽음”에 대한 글을 읽고 기사에 나온 그 엄마와 따님의 용기와 행함에 눈물이 터짐과 동시에 “죽음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 보았다. 그 따님은 말기 암투병 중이시던 엄마의 지독한 육신의 고통을 옆에서 눈물겹게 지켜보며 엄마의 마지막 간절한 소망을 위해 디그니타스(Dignitas)*를 선택하고, 실행하는 과정과 엄마와 스위스에서의 아름다운 이별을 <오늘이 내일이면 좋겠다>이라는 책을 내기도 하였다. “고통”을 끝내고 싶다는 엄마의 바람대로 스스로 죽음의 버튼을 누르고 편하게 하늘나라로 여행을 가셨다. 아직 우리나라에선 생소한 “죽을 권리”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인터넷기사 속의 딸과 내 모습이 클로즈업되어 눈물 나도록 보고픈 엄마를 불러본다. 아직도 엄마 사진을 잘 보지 못하는 이유는 내 감정을 추스릴 자신이 없기에 엄마사진을 꺼내질 못한다.


친정엄마는 늘 책을 읽으시고 새벽기도를 하시던 분이셨다. 성당에서 하라는 기도는 늘 달력에 체크하며 숙제처럼 하시고 가족의 안녕과 복을 위해 가족들의 이름을 넣어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묵주를 돌리며 기도를 하셨다. 청결한 분이어서 늘 빨래, 청소에 힘을 쏫으시고 건강을 위해 동네 뒷산을 돌고, 성당을 한주도 거르지 않고 열심히 다니시고 부지런하셨던 분이 어느 날부터 기억력이 흐려지고 인지장애가 시작되고 결국엔 치매로 발전하기 시작하였었다. 그나마 엄마는 치매가 아주 약하게 시작되었을 때 하늘나라 가셨다.


치매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준 마지막 선물”이라는 말처럼 인생 살면서 겪은 모든 희로애락을 이 세상에 그만 놓아두고 그야말로 “아기처럼” 살다가 하늘로 오라는 선물이라는 것이다. 치매로 진전되면 그냥 아기가 된다. 항상 옆에서 누군가의 도움이 있어야 하고 입히고 씻기고 먹이고 마냥 아기를 대하듯 해야 한다. 몇 번이고 반복적인 질문을 하고 했던 이야기를 또 하고 또 한다. 치매가족은 겪어보지 못하면 보호자의 고통을 알 수 없고, 온 가족이 우울증에 걸릴 정도로 분위기가 우울하다.


친정엄마는 경도인지장애에서 치매로 들어서는 즈음에 불의의 사고(척추압박골절)로 입원해 치료받으시다 하늘나라로 가셨지만 시기가 코로나 바이러스로 엄중한 때(면회금지)라 제대로 가족들과 지내지도 못하고 혼자 외롭게 떠나셨다. 고열로 중환자실에서 30여 일 동안 사투를 벌이시고 고통스러워하던 모습이 생생하다. 중환자실을 오가며 마음의 준비를 했지만 영원한 이별은 참 힘든 것이었고, 엄마라는 단어는 나에게는 어머니이자 친구, 동지, 스승이었다. 내 몸의 일부가 떨어지는 느낌이었고 이루 말할 수 없이 슬펐다.


가족의 죽음을 경험하고 든 생각은 “죽음”이라는 단어가 어둠에서 밝음으로 들어내 자신의 생사여부를 본인이 결정하도록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물론 남용되지 않도록 엄격하게 법제화시키고, 생명경시가 되지 않도록 해야한다. 무조건 반대하는 것도 죽지못해 사는 고통스런 당사자의 죽을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기사에서 읽었던 글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죽음을 준비하고 복잡한 서류 챙기고 통증으로 힘든 몸으로 비행기를 타고 스위스에 도착해 그 어머니가 했던 말, “오늘이 내일이면 좋겠다”.



*디그니타스(Dignitas)는 죽을 권리를 호소하여 의사와 간호사에 의해 조력자살을 하는 스위스의 단체이다. 의사가 작성한 진료 기록을 스위스 법원이 허가한 경우에 대상자의 조력자살을 제공한다. 1998년 5월 17일, 루드비히 미넬리가 설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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