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1시 넘어 퇴근한 아들이 자동차공업사에 있는 차를 마지막으로 보고 왔다고 “엄마도 마지막으로 보고 오세요 “ 한다. ”난 안 볼래. 보면 눈물이 날 것 같아서 안 보련다”... 말하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남들은 그까짓 차를 폐차하는데 뭘 그리 의미를 부여할까! 하겠지만, 우리 가족에겐 큰 의미의 반려자동차(?)였다. 가족에겐 23년을 함께한 세월과 흔적이 있으니까.
아들이 초등 5학년때 마음먹고 구입한 큰(?) 차였다. 30대 후반이었던 우리에겐 싼ㅇ페는 크고 아주 좋은 차였다. 이 큰 차는 우리 가족의 일부로써 발이 되어주었고 지방을 오가는 운송 수단도 되었다. 아들이 커서는 수원에 있는 학교를 오갔고, 취업해서는 대전도 오가며 수많은 길을 달렸고, 운영하는 사무실의 인쇄물들을 납품도 하고, 지방도 멀다 않고 많은 거래처를 다녔다. 45만 킬로 넘게 수고한 애마이다.
23년 동안 함께 한 애마였던 자동차를 떠나보내는 건, 단순히 오래된 물건을 정리하는 일이 아니었다. 그 차는 가족의 일원이었고, 수많은 희로애락을 함께한 존재였다. 처음 그 차를 샀을 때의 설렘부터 가족여행을 떠나던 날의 웃음소리, 비 오는 날 차 안에서 나눴던 대화들, 밤늦게 피곤한 몸을 싣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까지, 모든 순간에 그 차가 우리 가족과 함께 있었다. 시간이 흐르며 차는 낡고 힘들어했지만, 언제나 우리 곁을 지켰다. 때로는 말썽을 부려도, 고쳐 쓰고 또 달렸고 다시 고치고 반복하다가 이젠 도저히 부품을 구할 수 없어 이별을 택했다. 그렇게 23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싼ㅇ페는 가족의 발이자 반려가 되어 주었다.
하지만 이제는 보내야 할 시간이 왔다. 더 이상 달릴 수 없다는 걸 알기에,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마음은 쉽게 놓아주지 못했다. 떠나보내는 날, 남편도 힘들어했고, 아들은 마지막 사진을 찍었고, 차를 어루만지며 “잘 가라 “고 인사했다. 한 대의 자동차가 아니라, 함께한 시간과 추억을 떠나보내는 듯한 슬픔이 밀려왔다."고마웠어"라는 말을 속삭인다. 그리고는 마음속으로 너와 함께한 23년을 절대 잊지 않을 거라고...
그렇게 우리는 한 가족 같은 자동차와 이별을 했다. 슬프고 아쉽지만, 고마운 기억으로 오래오래 간직할 것이다. 남들에겐 별로 비싼 차도 아니고 큰 의미가 없겠지만 우리에겐 아주 고마운 애마였다.
보내는 날 밤에 비까지 내렸다. 차가 울고 있었다. 싼ㅇ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