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옆에 남긴 메모
: 없는 돈으로 이윤을 만든다는 충격
은행은 늘 안전한 장소처럼 느껴졌다. 번 돈을 잠시 맡겨두는 곳, 필요할 때 다시 찾아올 수 있는 보관소 같은 이미지였다.
그런데 ‘부분지급준비제도’라는 말을 처음 제대로 이해했을 때, 내 믿음이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했다.
은행은 예금된 돈 전부를 금고에 넣어두지 않는다.
일부만 남기고, 나머지는 다시 누군가에게 빌려준다.
그렇게 대출이 만들어지고, 또 다른 예금이 생긴다. 장부 위에서는 돈이 늘어난다.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던 돈이, 신용이라는 이름으로 생성된다.
은행은 돈을 ‘보관’하는 곳이 아니라, 돈이 흐르도록 설계된 구조였다.
그래서 생각하게 되었다. 은행은 플랫폼과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예금자와 대출자를 연결하고, 그 연결 자체에서 수익을 얻는다.
배달의 민족, 쿠팡과 같이 “플랫폼이 돈을 번다”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은행 = 안전한 보관소’라는 인식보다는 ‘돈이 움직이는 통로’라는 이미지가 남았다.
인플레이션은 늘 생활이 팍팍해지는 이유로만 느껴졌다.
월급은 그대로인데 물가가 오르고, 체감상 손해를 보는 상태.
하지만 인플레이션은 물가의 문제가 아니라, 돈 자체의 구매력이 줄어드는 현상이었다.
같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줄어든다는 점에서, 초점은 물건이 아니라 돈에 있었다.
자본주의 구조에서는 돈의 총량이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다.
신용을 기반으로 새로운 돈이 만들어지고, 경제가 커질수록 그 속도는 빨라진다.
AI와 자동화로 생산성이 높아질수록 더 빨라지지는 않을까.
생산은 쉬워지는데, 그렇다면 더 많은돈은 돈의 가치는 계속 더 떨어지게 하는 건 아닐까.
그래서 질문이 남는다. 앞으로 가치가 보존되는 건 정말 돈일까, 아니면 다른 가치의 무언가일까.
주식과 채권은 늘 투자 대상이었다.
공부해야 하고, 분석해야 하며, 잘 선택하면 보상이 따르는 대상. 그래서 소비와는 다른 영역에 놓여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금융 상품 역시 시장에 놓인 상품이었다.
다만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선택되고 소비된다.
우리는 이해한 만큼이 아니라, 접근 가능한 범위 안에서 그것들을 고른다.
어쩌면 우리는 금융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소비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광고 문구나 분위기, 주변의 선택에 영향을 받아 결정한다는 점에서, 다른 소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담스미스의 국부론,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 케인스의 자본론, 하이에크 신자유주의 같은 경제 이론들은 그냥 교과서 속 외워야할 추상적인 개념들로만 보였다.
하지만 하나씩 들여다보면, 대부분은 위기와 혼란 속에서 등장했다.
대공황, 불황, 실업 같은 현실적인 문제 앞에서 나온 응답이었다.
그래서 자본주의가 지금의 모습이 된 이유도, 어떤 완벽한 설계 때문이라기보다 인간의 욕망과 불안, 기대가 누적된 결과처럼 느껴진다.
자본주의는 언제나 개개인의 욕망에 반응하며 여기까지 흘러왔다.
그리고 그 욕망은 결코 동일하지 않다.
각자의 환경과 경험, 기본적인 성향이 겹쳐지며 만들어진다.
자본주의가 종종 흔들리고 예측하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사람들의 욕망에 계속 반응하며 형태를 바꿔온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자본주의에서도 결국 가장 중요한 건 제도나 돈이 아니라, 그 안에서 반응하고 선택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