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일상
어렸을 때 나는 학업 성취가 좋은 편이었고, 공부에도 제법 진심이었다. 그래서인지 나를 돌아볼 때도 과정이나 기분보다는 결과부터 떠올리는 습관이 먼저 생겼다. 점수로 정리된 하루, 등수로 설명되는 나.
공부를 잘했던 사람의 하루는 대부분 평가로 나뉘어 있었다.
시험 전과 시험 후, 성적이 나오기 전과 나온 뒤. 결과는 늘 숫자나 등수로 정리되었고, 그 숫자는 곧 나를 설명하는 말처럼 사용됐다. “이번엔 잘했네”, “생각보다 못 나왔네” 같은 말들이 반복되다 보니, 결과와 나 사이에 별다른 틈이 생기지 않았다. 잘하면 내가 괜찮은 사람이었고, 못하면 내가 부족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오래 살다 보면, 평가를 나라는 주체와 분리해서 바라보는 법을 배울 기회는 거의 없어진다.
실무에서 피드백을 받을 때도 비슷한 장면이 반복된다.
“이 부분은 다시 생각해 보면 좋겠어요”라는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에서는 이미 다른 문장이 재생된다.
내가 일을 못 한다는 뜻인가?
상대는 특정 산출물의 한 부분만 이야기했을 뿐인데, 그 말은 금세 나 전체로 번진다. 문서 한 장에 대한 코멘트가, 그 문서를 만든 나의 태도나 능력, 심지어 성격까지 설명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피드백이 정보가 아니라 판단처럼 들리는 순간이다.
학교에서의 평가는 대체로 끝을 향해 있었다. 시험은 결과를 남기고, 그 결과는 기록이 됐다.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한 통과 의례 같은 성격도 강했다.
반면 실무에서의 피드백은 대부분 진행 중에 등장한다. 더 나은 방향으로 가기 위한 조정에 가깝다.
그 차이를 알고 있으면서도, 어렸을 때부터 몸에 밴 나의 무의식은 쉽게 바뀌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여전히 피드백을 들으면, ‘지금 이 단계에서의 수정’이 아니라 ‘지금까지의 나에 대한 판정’처럼 받아들인다.
피드백을 들을 때의 내 반응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순간들이 있다. 설명을 덧붙이려다 말문이 막히거나,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속으로는 반박 문장을 준비하고 있다. 질문을 하기보다는 빨리 상황을 끝내고 싶어질 때도 있다.
그 반응들은 대부분 ‘이게 나에 대한 평가로 남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이해하려는 태도보다, 지키려는 태도가 먼저 나오는 순간이다.
완전히 분리하기는 어렵다. 다만 아주 조금의 거리를 두는 연습은 가능하다. 피드백을 들은 뒤 바로 나를 설명하는 문장을 만들지 않고, 그 말이 가리키는 대상이 정확히 무엇인지 다시 확인해 보는 정도다. 문장인지, 방식인지, 타이밍인지.
그 구분이 생기면, 피드백은 나를 흔드는 말에서 다뤄볼 수 있는 정보로 바뀐다. 여전히 불편하긴 하지만, 전부는 아니다. 그 차이가 생기면, 피드백을 듣자마자 말이 튀어나오기 전에 한 박자 숨을 고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