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아직도 정답을 찾고 있을까

나의 일상

by 싸이진

학교에서의 문제는 대부분 사지선다였다.

문제 아래에는 네 개의 보기가 있었고 그중 하나는 분명 정답이었다.

시험지를 받으면 먼저 문제를 읽기보다 정답처럼 보이는 선택지를 찾았다.

비슷해 보이는 문장들 사이에서 조금 더 맞는 것 같은 답을 고르고,

확신이 없으면 두 개 사이에서 오래 고민했다.

결과는 단순했다.

정답을 많이 고르면 잘하는 학생이었고, 틀리면 부족한 학생이었다.

문제는 늘 있었지만 그 문제의 끝에는 항상 정답이 있었다.

우리는 그 정답을 얼마나 잘 찾아내는지로 평가받았다.


보기조차 없는 문제들

그런데 사회는 조금 달랐다.

문제는 여전히 있었다. 오히려 더 많아졌다.

어떤 기획이 맞는지, 이 기능을 먼저 만드는 게 맞는지, 디자인을 단순하게 가져갈지 조금 더 설명적으로 풀지. 회의실에서 여러 의견이 오갈 때마다 어딘가에 정답이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답안지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는 이 방향이 맞다고 말했고, 다른 누군가는 반대 방향이 더 낫다고 말했다.

학교에서는 보기 네 개 중 하나를 고르면 됐지만 여기서는 보기조차 없는 문제가 대부분이었다.


틀린 답이 아니라 선택

그래서 적응하기 힘들었다.

어딘가에 정답이 있는데 내가 아직 찾지 못한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많은 자료를 찾아보고, 비슷한 사례를 모아보고, 이미 누군가 검증한 방법을 찾으려고 했다.

그렇게 한참을 돌고 나서야 조금 다른 사실을 알게 됐다.

지금의 문제들은 틀린 답이 존재하는 문제라기보다 그저 선택에 가까웠다.

어떤 선택도 완벽하지 않았고, 하나를 고르면 다른 가능성을 포기하게 됐다.

그래서 대부분의 일은 정답을 고르는 과정이라기보다 하나의 방향을 먼저 정하고, 그 방향이 맞을 수 있도록 해결하는 방법에 더 가까웠다.

조금 돌아가기도 하고 다시 되돌아가기도 하면서 문제는 그렇게 풀려갔다.


정답 없이 풀어가는 문제

그럼에도 여전히 정답을 찾으려고 한다.

머릿속 어딘가에는 여전히 정답이 하나 존재한다고 믿는 습관이 남아 있다.

회의에서 의견을 말하기 전에 이게 정말 맞는지 한 번 더 생각하고, 확신이 없으면 말을 아끼기도 한다.

틀리지 않는 선택을 하고 싶고 가능하면 검증된 방법을 따르고 싶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 선택한 방향은 정답도 아니지만 오답도 아니다.

그러니 잘하고 못하고를 맞고 틀리고로 결정하는 것이 아닌 어떤 방향이든 시작하고,

생각보다 잘 풀리지 않으면 조금 고쳐보고, 다른 길이 보이면 그쪽으로 방향을 틀어보면 된다.

학교에서는 정답을 찾는 법을 배웠다.

하지만 세상은 정답 없이 문제를 풀어가는 법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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