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을 하고 싶어서 처음 시작한 것은 필라테스다. 세 번 정도 하니까 운동 효과는 확실히 있는 것 같지만 재미는 좀 덜했다. 그래서 전부터 올림픽 보면서 저거 재밌을 것 같다 했던 게 펜싱이었다는 걸 떠올렸다. 처음에는 취미로 시작했다.
학원에 갔을 때 생각보다 어린 친구들이 많았고 나는 그들에 비해 나이가 많아 조금 위축됐다. 그도 그럴 것이, 준비운동을 하는데 모두 발이 재빠르고 동작을 잘 따라 해서 나는 어쩔 수 없이 눈치가 보였다. 그래서 난 자유 게임 시간이 더 좋았다. 당연히 처음에는 점수도 따지 못했고 기술이랄 것도 없이 그냥 펜싱 칼을 쥐고 팔을 앞으로 뻗기에 바빴다.
그러다 3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갑자기 탄력을 받아 실력이 일취월장했다. 주로 점수를 가져가는 쪽은 상대였는데 이제는 나만 점수를 가져가게 되는 상황이 왔다. 그래서 입문반에서 갑자기 일반 반으로 가게 되었다. 그런데 놀라운 건 일반 반에서도 내가 점수를 다 가져가게 되는 상황이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뭐지? 하는 표정으로 날 쳐다보는 날이 많아졌다.
관장님은 대회를 나가보라고 제안하셨다. 난 일단 도전해 보자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대회 접수를 했다. 대회 당일 놀랍게도 난 첫 출전에 일반부 여자 펜싱 에페 금메달을 땄다. 나도 놀랐지만, 코치님들이 더 놀라서 나를 막 껴안고 방방 뛰었다. 기념사진을 찍고 돌아왔는데 연락이 왔다. 다음 대회도 나가자고. 올해 있는 대회는 다 나갈 기세로 몰아붙이셔서 당황했지만 승낙했다.
대회에 계속 나가면서 금메달 수집가가 되었다. 그러다가 진천선수촌 관계자의 눈에 띄어서 국가대표 선수 제안을 받았다. 솔직히 말하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체육 전공자가 아니다. 나는 나이도 많다. 펜싱을 취미로 하던 사람이다. 누가 봐도 말이 안 되는 상황에 입성하게 된 선수촌에서 다행스럽게도 훈련 방식이 내게 크게 체력적으로 힘들지 않았다.
그 후 세계 선수권을 나가서 금메달을 땄다. 연달아 아시안게임을 나가서 금메달을 땄다. 그리고 내가 목표하던 LA 올림픽을 나갔다. 경기가 시작됐다. 솔직히 정말 큰 대회라 평소보다 긴장은 했지만, 다행히 대진 운이 좋아서 결승전까지 왔다. 결승전 상대는 랭킹 1위 프랑스 선수. 나와 랭킹 차이가 크게 나서 압박감이 있었다. 하지만 펜싱은 수싸움이고 운도 있다고 생각하기에 나는 당당히 맞서 싸웠다.
동시 타가 가능한 에페인데 처음에는 상대 선수가 2점 앞서있었다. 우리 쪽에서 흐름을 끊고자 잠깐 작전 타임을 갖고 대기를 하는데 갑자기 내 눈에 상대 선수의 약점이 보였다. 프레? 알레! 경기를 시작하자마자 난 그 약점을 노렸고 연달아 2점을 따라잡아 동점이 되었다. 그리고 약 1분 뒤 놀랍게도 나는 역전을 하며 LA 올림픽 펜싱 에페 여자 개인전 금메달리스트가 되었다. 수많은 관중의 함성에 전율이 느껴졌다. 감독님이 나를 껴안으며 정말 자랑스럽다고 이야기해 줬다. 하지만 난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3일 뒤에 있을 단체전이 있기에 평정심을 찾으며 다시 훈련했다. 이번엔 협력이 필요하므로 맏언니로서 잘 이끌어야 했다.
3일 뒤 단체전이 시작됐다. 평상시보다 실력 발휘를 못 하는 후배들에게 괜찮다고는 했지만, 속으로는 울고 있었다. 단체전도 금메달을 꼭 따서 후배들과 같이 영광을 누리고 싶은데 하며 지켜보던 중에 내 차례가 돌아왔다.
난 바로 집중했고 연달아 5점을 따라잡으며 역전했다. 다행히 후배들도 나의 모습에 힘을 받아 점수를 채워주었고, 마지막 내 차례 때 또다시 5점을 연속으로 채우며 금메달리스트가 되었다. 경기가 끝나고 바로 마스크를 벗자, 후배 세 명이 달려와 나를 껴안으며 언니 덕분이라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감독님도 대단하다고 수고했다고 말했다.
이게 진짜 현실인지 뭔지 약간 멍해지는 느낌이 들었는데 그래도 기분이 좋았다. 비로소 마음 놓고 웃었다. 난 웃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눈에서는 눈물이 자꾸 흘러내렸다. 지난날의 보상을 받는 것 같아서 기쁨의 눈물이 자꾸 흘러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