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지막이 일어난 아침. 윤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침대에서 일어나 이부자리를 정리한다. 곧바로 욕실로 가 샤워한다. 홈웨어 원피스를 입고 욕실 밖으로 나와서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린다. 빨래 바구니에 벗어놓은 옷은 세탁기에 넣고 돌린다. 아침 겸 점심으로 두부가 많이 들어간 된장찌개에 밥을 먹고 후식으로 냉동 블루베리와 비타민을 챙긴다. 그러고는 컴퓨터 책상 앞으로 가 의자에 앉아서 메일을 확인한다. 새로운 제안이나 기존에 글에 대한 수정 등 급한 건은 바로 답장하고 달력에 표시한 일정표를 보며 약속을 정한다.
오늘은 외부 약속이 있는 날이다. 하늘색 블라우스와 검은색 슬랙스 바지를 입고 강아지 모양의 마크가 있는 작은 가방을 들고 외출한다. 오후에 비 소식이 있으니, 우산도 챙긴다.
강남역 근처 작업실에서 출판사 대표님과 만나서 신작 계약 건에 대해 조율하고 만족스럽게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어느새 밖은 어둑해져 있고 흐려진 하늘에서 이내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윤은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빨리한다. 금세 빗줄기가 굵어지고 검은색 슬랙스 바지 밑단이 땅바닥에서 튀어 오르는 물방울들로 인해 젖어 들어간다. 축축하고 무거워진 바지에 찝찝함이 있지만 기분이 상할 정도는 아니다. ‘집에 도착하면 바로 옷 벗어 던지고 욕실로 가서 씻어야지!’
뜨거운 물로 씻고 나오니 어느새 저녁 시간이다. TV를 보며 잡곡밥에 두부 부침과 계란 프라이를 먹는다. 밥을 다 먹고 후식으로 방울토마토를 먹는다. 다 먹고 나서 설거지하고 오전에 돌려놨던 세탁기에서 빨래를 꺼내 빨래를 넌다. 미지근한 물 한 잔을 들고 책상에 앉아 이번 달 베스트셀러를 읽는다. 눈으로 보는 것도 좋아하지만 더 몰입이 잘되도록 소리 내서 읽는 편이다. 윤은 책을 읽으며 다른 세계로 들어가 있는 듯한 기분을 느끼는 게 좋다. 다른 듯하지만, 항상 비슷하게 반복되는 이 일상에 평화로움이 묻어있다. 흐뭇한 미소가 입에 걸린다.
윤은 오늘도 한 발자국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