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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황] 트렁크 속, 연장들.

녹.

by 무지개호랑이


화면 캡처 2025-03-02 080710.png 먼지 묻은 연장들.

오랜만에 차 트렁크를 열었다. 평범한 사람들이 보기 드문 물건들이 많다. 망치, 펜치, 니퍼, 드라이버, 전동드릴 등 다양한 연장. 나는 이 물건들을 정말 좋아하고 아꼈다. 왜냐하면 내 돈줄이었으니까.


나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집에서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이 소식을 들은 막내 삼촌은 자기 일을 도와주기를 원했다. 나의 첫 롤모델이자 항상 고마운 막내 삼촌의 부탁을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그렇게 나의 사회생활은 몰탈 40kg짜리 여섯 포대를 옮기는 것으로 시작했다.


KakaoTalk_20250302_080359168_08.jpg 첫 주택 신축 현장 (준공 후 사진)

막내 삼촌은 건설 회사를 퇴사하시고, 주택 건설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를 차리셨다. 특히, 목조 주택을 좋아하셨다. 그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내 생각에는 나무로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에 재미를 느끼시는 것 같았다. 왜냐하면 나무를 자르고 붙이며 새로운 것을 만드실 때마다 어린아이처럼 기뻐하셨으니까.


회사에 힘이 되고자, 목조주택 교육을 하는 직업전문학교를 다녔다. 평일에는 현장 관리자로 일을 하고, 주말에는 직업전문학교를 다니며 몇 개월을 내 성장에만 몰두했다. 솔직히 많이 힘들었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뻘 되시는 분들을 관리한다는 것이 힘들었고, 건축 관련 지식이 부족해서 힘들었고, 무엇보다 내가 못 해서 작업자들에게 욕먹는 상황들이 힘들었다. 자존심 세고 어디 가서 칭찬만 들었던 나에게 현장은 괴리감이 컸기 때문이다.

KakaoTalk_20250302_080359168_02.jpg 가장 기억에 남는 인테리어 현장 (마감 후 사진)

시간이 지나 일머리를 알게 되었다. 요령이 생기고, 꼼수도 늘었다. 그리고 인테리어까지 사업이 확장됐다. 막내 삼촌은 주택 현장으로 출근하고, 나는 인테리어 현장으로 출근했다. 주택이 지어지는 과정을 봐왔던 나는 인테리어를 쉽게 생각했다. 하지만 큰 오산이었다. 작은 오차들이 큰 변수를 만들었다. 완벽함을 위해 신경 썼던 일들이 무기력하게 느끼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나는 주말에 캐드와 스케치업 학원에 다녔다. 더 이상 부족한 나 자신 때문에 상처받기 싫었으니까.


몇 개월 동안 주말 없이 현장 관리와 시공을 번갈아 가며 일에 미쳐 살았다. 현장에서 먹고 자고 생활하고 싶을 정도로. 하지만 그러지는 못했다. 부모님이 걱정하실 테니. 일을 하며 책임감이 주는 부담은 몸을 깨웠고, 완벽함을 위한 공부는 마음을 채웠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기 위한 행동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치밀어 오르는 분노는 내 몸과 마음을 불태웠다. 한참 뒤에 알았다. 이게 번아웃이라는 것을. 막내 삼촌께서 잠시 쉬라는 말씀에 나는 수긍했다.


KakaoTalk_20241216_150934366_01.jpg "돈 벌어야지"

1년 후, 다시 현장에 복귀했다. 전에는 현장 관리자, 목공 시공자로 일을 했다면 결이 완전히 달랐다. 프리랜서로 그리고 내선 전기공으로 바뀌었다. 이번에도 막내 삼촌의 권유였다. 하지만 달랐다. 내 길을 찾기 위한 돈벌이로 생각했다. 과거의 현장 경험 덕분에 몸값은 빠르게 올랐다. 일당백(만)은 아니지만 일당이십(만)은 찍었다. 여러 유혹도 많았다. 나를 직원으로 쓰기 위해 꿀 발린 말, 당장 들어오는 돈. 냉정하게 생각하기 위해 나에게 질문을 계속 던졌다. 내 꿈을 위해서 똑같은 후회를 할 수는 없으니까.


지금의 나는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 해왔던 일이랑 거리가 멀다. 그렇다고 헛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나를 알게 되는 시간이었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해주었고, 세상을 넓게 보는 시야를 주었으니 정말 고마운 순간들이었다.


이제는 트렁크를 오랫동안 열지 않으려고 한다. 추억에 얽매여 보내는 시간이 아깝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연장들이 주황색으로 녹슬지언정. 나는 꿈을 향해서 해야 할 것이 많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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