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등 노란 불처럼 짧은 봄.
일정이 없는 날이면 천안천 산책로를 따라 러닝을 하거나 걷는다. 지금은 취준생이라는 탈을 쓴 백수여서 자주 나간다. 3월 말까지만 해도 앙상한 나뭇가지들이었는데, 4월이 되더니 기다렸다는 듯 하얀 것들이 달려 있었다. 벚나무는 눈 끔뻑하니 분홍빛 꽃잎을 열었고, 다시 끔뻑하니 꽃잎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꽃잎을 맞는 사람들은 벚나무가 건네는 바통을 이어받고 환하게 웃음꽃을 피우고 있는다.
봄바람을 맞으며 뛰면 다양한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엄마 손을 잡고 걷는 작은 아이, 웃음소리 가득한 커플, 벤치에 앉아 맑은 하늘을 바라보는 중년 부부, 벚꽃을 가운데 두고 사진을 찍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모두 입꼬리가 떨어지는 벚꽃을 맞이하듯 올라가 있다. 그런 모습을 보고 뛰고 있는 나는 한 발자국 내디딜 때마다 떨어지는 벚꽃처럼 가볍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가볍게 만들었는지 생각해 보면 봄인지, 벚꽃인지, 사람들인지 모르겠지만 한 가지라도 빠지면 가벼운 러닝이 되지 않았을 것 같다.
한편의 벚꽃 스토리가 지나면 개나리가 맞이하고 있다. 산책로 중간중간 있는 개나리는 떨어지는 벚꽃만큼이나 인기가 많다. 특히, 동물들에게 말이다. 주인과 함께 산책하는 강아지들이 개나리를 비집고 들어가면, 개나리 가지 사이에 쉬고 있던 참새들은 헐레벌떡 도망가는 모습이 보인다. 누군가 짜놓은 각본처럼 움직이는 장면들이 러닝하다가 지친 나를 다시 뛰게 만든다.
뜨문뜨문 등장하는 민들레 꽃들도 한 번 봐달라고 존재를 뽐낸다. 누군가 초록색 풀밭에 레몬 사탕 떨어뜨려 놓은 듯 툭하고 튀어나온 모습이 귀엽다. 바람이 불어 가녀린 노란 꽃잎들이 사들사들 흔들리면, 서로를 붙잡고 떨어지지 않으려 한다. 그 모습을 보면 잠깐 해이해졌던 내 마음도 다시금 바로잡는다.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서 지치고 집에서 쉬기 바쁘다. 내 주변 사람들도 그렇다. 이해한다. 나도 그럴 때가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오랫동안 쉬다 보면 음식이 상하듯 사람도 몸과 마음이 쉬게 된다. 때로는 새로운 공기를 마시고, 이쁜 색깔을 보며, 땅에 내 발이 닿아 살아있음을 느끼는 순간들이 진짜 쉬는 것이 아니겠냐는 생각이 든다.
봄은 짧다. 지금이 쉬기 제일 좋은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