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 만렙 출신
드라이브나, 러닝을 하면 어린아이들이 선생님을 따라 일렬로 걷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작은 병아리들이 각자 다른 표정을 하며 걷는 모습이 참 귀엽게만 보인다. 나도 그런 때가 있었다. 남들보다 1년 더.
부모님의 맞벌이로 나는 5살에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 댁에 살게 되었다. 그렇게 작은 마을에 어울리는 작은 어린이가 살게 되었다. 어른들은 교육만큼은 제대로 가르치고자 유치원에 보냈다. 운 좋게도 걸어서 5분도 채 안 되는 거리에 유치원이 있었다. 마을 뒷산에 위치한 교회에서 운영하는 유치원. 동산 교회 유치원이었다. 당시 교회는 신자들이 많았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규모가 크고 멀리서도 십자가만큼은 잘 보였던 교회이기에 그러지 않나 싶다. 신자들이 많은 만큼 유치원에 어린이들도 많았다. 덕분에 유치원 생활은 재미있게 시간이 지나갔다. 때로는 이런 생각도 한다. 이렇게 척척 맞아떨어진 것이 예수님의 계획이었던 걸까?
동산 교회 유치원은 자연 그 자체였다. 봄이 되면 꿀벌들이 꽃가루를 주머니에 담는 모습을 보았고, 여름이면 갖가지 곤충들이 새로운 친구가 되었다. 가을이 되어 바람 불면 단풍나무 씨앗이 장난감이 되어 주었고, 겨울에는 교회에 가기 위해 올라야 하는 오르막길이 포댓자루 하나로 어린이 썰매장이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6살을 넘어 7살이 되었다.
시간이 지날 때마다 익숙했던 또래 아이들이 떠났다. 누구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누구는 이사를 하게 되어 다른 유치원으로 갔다. 빈자리가 생길 때마다 나보다 어린아이들이 들어오면서 자리를 채웠다. 새로운 얼굴을 보는 것만큼 달라진 것이 있다. 형, 누나라는 말 대신 형, 오빠라는 말을 많이 듣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변화마저 못 따라 오는 것이 있는데, 바로 적응이다. 나는 적응력만큼은 참 빨랐다. 눈치, 친화력, 활발함의 삼박자는 어제 처음 봤던 아이가 오늘은 얼굴만 봐도 웃는 친한 친구가 될 정도였다. 그렇게 7살 1회차는 순수하고 어린 적응력으로 보내었다.
유치원에 외할머니가 오셨다. 많이 놀랐다. 교회에 오시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왜냐하면 불자셨기 때문이었다. 속으로 "내가 오늘 잘 못했나?" 불안감이 안습했다. 나를 흘긋 보시고는 유치원 선생님에게 다가가셨다. 그러고는 몇 마디 나누고 나를 교회에 두고 집으로 가셨다. 불안함이 가시고 안도감이 들었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유치원이 끝나고 친구들과 손을 흔들며 내일 만나자고 인사를 했다. 그런데 다른 때와 달랐다. 자녀들을 데리러 오는 부모님이 많았다. 나는 이런 날도 있구나. 라며 이상함을 떨쳐냈다. 다음 날. 나와 어깨를 나란히 했던 친구들은 오지 않았다.
유치원에서 한 살 어렸던 아이들이 나를 부르는 명칭이 달라졌다. 형, 오빠에서 야, 너로 바뀌었다. 처음에는 어색했다. 뭐지? 내가 왜 얘네들이랑 같은 나이가 되었지? 유치원 선생님도 딱히 말씀이 없으셨다. 같이 함께 했던 친구들이 보고 싶었다. 그러다 문득 할머니가 떠올랐다. 그때 할머니가 무슨 말씀을 하셨길래 나를 유치원에 1년 더 묵게 했을까. 처음 할머니를 진심으로 미워했다.
이런 상황도 금방 적응해 버렸다. 참. 적응 빠르다. 7살 2회차는 상당히 순조로웠다. 달리기 1등. 신발 멀리 던지기 1등. 모든 부문에서 1등을 했다. 왜냐하면 이미 1년 동안 해왔던 것들이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보상으로 주는 사탕을 독식했다. 애들이 가지고 있는 장난감을 사탕으로 바꿔 먹었고, 내가 먹고 싶은 간식과 바꾸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할머니께 고마운 마음도 생기고는 했다.
시간이 또 흘러 1년이 지났다.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여러 아이를 만났다. 그중에 출생 연도가 1년 늦은 아이를 보았다. 처음에는 왜 한 살 어린애가 나랑 같은 학년이지? 생각했다. 학년을 거듭할수록 알게 되었다. 흔히 말하는 '빠른'이었다. 나도 1월에 태어났기에 원래 라면은 '빠른'이었다. 하지만 '빠른'의 삶을 살지 않았다. 유치원을 1년 더 다님으로써 출생 연도가 같은 아이들과 같이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출생 연도가 같지만, 나는 그중에서 일찍 태어난 아이다. 그래서인지 같은 학년 중에서 키가 큰 편에 속했고, 내기만 했다하면 많은 이득을 취했다. 빨리 태어난 만큼 신체나 지능이 남들보다 일찍 발현되는 듯했다. 한편으로 이때 공부에 재미를 붙였더라면 하는 후회도 조금 있다.
성인 되었을 당시. 엄마에게 여쭤보았다.
"엄마, 나 7살 두 번 했는데, 할머니가 그렇게 하라고 한 거지?"
"응, 네가 다른 애들이랑 뒤처지면 안 된다고 출생 연도 맞춘 거래."
그제서야 알게 되었다. 그때 왜 유치원에 오셨는지. 할머니의 의도는 명확했다. 남들보다 뒤처지지 말라고, 빨리 태어난 만큼 더 앞으로 나아가라고. 할머니는 나를 위해 큰 그림을 그렸던 것이다. 역시. 총명하신 우리 할머니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