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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운전 스승님들.

운전 하나 만큼은 크게 인정받는 이유.

by 무지개호랑이




177cd55ba3cda1c0.jpeg 추억의 고(등어)순(살)튀(김)

고등학교 3학년, 같이 어울려 다니는 친구들 중에 한 명이 차를 끌고 등하교를 하기 시작했다. 학생 신분에 운전을 한다는 것이 놀랐지만, 운전면허가 있으니 문제 될 거라고 생각들지 않았다. 학교 점심 메뉴로 '고순튀'가 나오는 날이 종종있는데, 남자 고등학교에서의 '고순튀'는 재앙 중에 대재앙이었다. 맛도 없을 뿐더러 혈기왕성한 남자 고등학생들에게는 작은 생선 덩어리로는 배를 채우지 못 했기 때문이다.


0_Hyundai_Accent_(RB)_1 (1).jpg 그 당시 친구의 차 "엑센트"

고등학교 생활 만렙에 가까운 3학년들은 이 날이면 학교 밖으로 나가기 위해 월담을 하였고 근처 분식집에서 컵밥을 먹거나, 시장에서 닭강정을 사먹었다.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스케일이 조금 달랐다. 남들은 학교와 가까운 곳에서 한정된 메뉴로 해결했지만, 우리는 차를 타고 원하는 메뉴를 먹을 수 있었다. 물론 가성비 좋은 뼈해장국이 대부분이었지만 말이다. 친구놈이 운전을 잘한 건지, 운이 좋았던 건지는 몰라도 사고 한 번 없었고, 선생님에게도 걸리지 않았다. 덕분에 좋은 기억만 가지게 되었다. 이때 우리는 차가 가져다 주는 편리성을 크게 느꼈고, 나를 포함한 친구들이 이르다면 이른 나이에 운전면허를 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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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생이 되었고 서울에서 자취를 했다. 무난한(?) 대학 생활을 하면서 여자친구가 생겼다.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서울 곳곳을 다니며 데이트를 했다. 어느날 여자친구가 자신이 운전을 할 줄 안다며 서울이 아닌 다른 곳에가서 데이트 하자고 했다. 조금 걱정은 했지만, 가자고 했다. 그 데이트 이후로 내가 운전을 해야겠다고 필요성을 느꼈다. 대학 생활을 마치고 본가로 내려가 곧바로 운전 연습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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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운전 스승님은 엄마다. 간단히 소개하자면 운전 경력 14년 차, 무사고, 벌점 하나 없는 운전의 교과서 이시다. 도로에 적힌 숫자와 그림 그리고 신호등의 빛을 그대로 수행하는 엄마의 모습은 내 운전의 기초 토대가 되었다. 그리고 사촌 형들 모두가 놀라게 했던 엄마의 안정된 코너링을 전수 받고자 핸들링, 엑셀과 브레이크의 타이밍 하나하나 내 몸에 심었다. 그래서인지 내가 운전 하면 보조석에 앉은 사람들은 고개를 뒤로 젖히며 잠에 든다. 보조석 에티켓에 '잠들지 말 것'이 있던데, 나는 오히려 포상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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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두 번째 스승님은 해보기형이다. 운전대를 잡을 때 해야하는 정신무장과 마음가짐을 알려준 사촌형이다. 이 가르침은 내가 널리 알리고 싶은 마음에 누군가에게 운전을 가르칠 때면 꼭 하는 말이다.


"운전대를 잡는 순간 모든 감정을 내려 놓아야 한다."


이 말을 해보기형에게 들었을 때 당시 말로 표현 못할 떨림이 뇌와 심장에 깊이 파고 들어왔다. 분노가 운전대에 실리면 차는 무기나 흉기가 되어 나를 죽일 수도, 타인을 다치게 할 수 있는 것처럼 운전이라는 행위가 감정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이었다. 그래서 나는 운전대를 잡으면 전에 있던 감정과 운전 중에 생기는 감정을 창문 밖으로 빠르게 던지는 버릇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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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세 번째 스승님은 아빠다. 과거 형사일을 하셨던 아빠는 산전수전 다 겪은 운전 베테랑이다. 명절날 시골에 내려가던 중 차가 막혀 어느 마을 길로 우회했다. 하지만 복잡하고 꼬불꼬불한 길 위에서 차는 정처 없이 직진만 하며 해맸었다. 표지판 하나 없고 사람 한명없는 상황에 이러다 시골 못 가는 거 아니야? 하는 걱정이 표정에서 드러난 내 모습을 보고 아빠가 한마디 하셨다.


"어차피 도로는 다 이어져 있다. 걱정하지 마."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다시 큰길로 들어섰고, 도로 표지판에 우리가 가야 할 목적지 이름이 적혀 있었다. 아빠의 말씀에서 나오는 여유는 그대로 나에게 와닿았고, 나의 운전에도 묻어 나온다. 내가 주행 중에 길을 잘 못 들어가거나 해맬 때에 크게 당황하지 않고 가던 길을 이어서 쭉 간다. 그러다 보면 내가 모르던 길을 알게 되고 새로운 지름길을 발견하게 된다. 때로는 경치가 너무 이쁜 곳을 발견하고 잠시 머물러 가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길을 잘못 드는 순간조차 무섭지 않다. 오히려 새로운 길을 만나는 설렘으로 받아들인다. 아빠가 알려주신 지혜는, 도로를 떠나서 내 삶을 이끄는 나침반이 되었다.


이 스승님들 외에도 내가 타고 있던 차의 운전자들은 나에게 큰 경험과 교훈을 주셨다. 막내 외삼촌, 목수 팀장님, 이름 모를 택시 기사님... 이 많은 분들 덕분에 나는 지금까지 무사고로 무사히 운전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운전 실력에 친구들에게는 운전을 '잘'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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