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온 시간에 대하여
스물일곱에 장가를 갔다. 아니, 이제는 스물여섯이라고 해야 하나. 만 나이 계산이 법제화된 뒤로 나이를 말할 때마다 잠시 머뭇거리게 된다. 태어나면서 한 살을 먹고, 해가 바뀌면 나이를 하나씩 보태던 계산법이 몸에 배어 있어서다. 한 줄의 법조문이 바뀌었을 뿐인데, 평생 써온 숫자마저 어색해진다.
결혼 이듬해 딸이 태어났다. 아내는 나보다 한 살이 많았다. 당시만 해도 결혼하면 곧 아이를 낳는 것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최근 신문에서 30년 전 초산 평균 나이가 26세였다는 기사를 읽었다. 그 시절 기준으로는 아내가 다소 늦은 편이었던 셈이다. 뒤늦게 생각해 보니, 그런 사회적 시선이 아내에게는 은근한 압박이었을지도 모른다.
출산휴가는 두 달이 전부였다. 지금처럼 90일 출산휴가에 1년 육아휴직이 보장되던 시절이 아니었다. 남편이 휴가를 내려하면 "네가 애 낳았냐?"는 핀잔부터 돌아왔다.
아내는 보건소 방문보건팀에서 일했다. 임신한 몸으로 승합차에 올라 강서구 시골 마을을 돌았다. 배가 부른 채로 차에 오르내리고, 덜컹거리는 차를 오래 타는 것이 태아에게 해롭지 않을까 걱정돼 내근직으로 옮겨 달라 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순번이라 어쩔 수 없다”는 말뿐이었다. 방문보건 업무는 언제나 기피 대상이었고, 임신했다고 해서 예외가 되지는 않았다.
휴가가 끝나자 아이를 부모님 댁에 맡겼다. 처가에서는 미리 어렵다고 하셨고, 본가에서 흔쾌히 받아주셨다. 아이는 주중 내내 강서구 본가에서 지내고, 우리는 금요일 저녁마다 데려왔다. 작은 몸을 품에 안으면 체온과 분유 냄새가 온몸에 스며드는 듯했다. 하지만 일요일 밤, 다시 아이를 맡기고 돌아오는 길은 늘 무거웠다. 집 안에는 희미한 분유 냄새가 남았고 공허함이 며칠간 우리를 따라다녔다.
이런 생활은 둘째가 태어난 뒤에도 이어졌다. 어머니는 거의 십 년 가까운 세월 동안 우리 아이들을 돌봐 주셨다. 아내는 첫아이를 임신했을 때 동료들의 몰인정한 태도, 그리고 안정된 일터에서 아이들을 돌보고 싶었던 마음이 커서였는지 1년여간의 수험생활 끝에 둘째가 유치원에 들어갈 무렵 임용고시를 통과하고 초등학교 보건교사로 전직했다.
우리는 둘째가 유치원에 들어가고, 아내의 근무 환경이 안정되면서 더 이상 부모님께 아이들을 맡기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우리 아이들의 빈자리를 여동생의 아이들로 채우셨야만 했다. 어머니의 손주 돌봄은 그렇게 또 십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우리 아이들이 어릴 때는 할머니 곁에서 그렇게도 떨어지지 않으려 하더니, 크고 나서는 연락조차 뜸한 듯하다. 품에 자식이라더니 어머니에게는 품에 손주였을 것이다.
어떤 시절을 떠올리면 영화처럼 장면들이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강렬한 한 장면이 사진처럼 떠오른다.
아내의 임신 시절을 떠올리면 언제나 가장 먼저 그 장면이 스친다. 둘째를 품었을 무렵, IMF의 파고가 공직사회까지 밀려왔다. 구조조정과 감원이라는, 공직사회와는 어울리지 않을 법한 말들이 관가에 떠돌던 시절이었다. 불안한 공기를 온몸으로 느낀 아내는 자격증이라도 하나 더 있어야 한다며 정신전문간호사 연수에 나섰다. 주말마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내려다보던 모습이 아직도 또렷하다. 불러온 배를 나의 낡은 사파리 점퍼로 가린 채, 두 손을 윗주머니에 찔러 넣고 버스를 기다리던 아내. 내가 손을 흔들면 웃으며 손을 들어 보이던 그 순간이 오래 남아 있다.
첫째의 어린 시절에 대한 인상 깊은 한 장면은 지금은 스물여덟 인 그 애가 세 살 무렵, 김수로왕릉에 놀러 온 여고생들이 아장아장 걷는 그 아이를 둘러싸고 귀엽다며 어쩔 줄 몰라하던 오후의 기억이다. 둘째가 대여섯 살 무렵, 작은 손이 내 손을 꼭 쥐고 백양산을 함께 한 걸음씩 오르던 순간도 따뜻한 느낌의 한 장면이다.
이렇듯 삶은 이어지는 시간의 흐름이라기보다, 선명한 장면들의 집합일지도 모른다. 수없이 많은 날들이 흘러갔지만, 결국 우리를 붙잡는 것은 몇몇 장면의 기억이다. 그 기억은 다시 삶을 돌아보게 하고, 앞으로의 길을 비추기도 한다. 그래서 하루하루를 대충 흘려보내지 말고, 언젠가 떠올렸을 때 부끄럽지 않은 장면으로 남기려 애써야 한다. 우리의 인생은 결국 기억의 모자이크로 완성되는 하나의 큰 그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