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선물 같은 아침
"나이가 들어가면서 가장 줄어드는 것이 뭘까?"
"수명이요."
맞은편에 앉은 후배가 잠시의 주저함도 없이 대답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사는 만큼 줄어드는 것도 수명이 맞다. 하지만 나는 다른 답을 떠올리고 있었다. 몇 달 전 내가 『좋은생각』에 투고해 실린 글이 있다. 제목은 반가움이 그리운 시절. 나이가 들수록 나를 진심으로 반겨주는 순간이 줄어든다는 내용이었다. 퇴근 후 현관문을 열면 달려와 온몸으로 기쁨을 표현하는 강아지 덕분에 웃는다는 친구의 얘기를 썼다. 사람보다 짐승이 더 반겨주는 나이, 씁쓸하면서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야기였다.
월요일 아침,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하며 동료들과 시청 근처에서 커피를 마시기로 했다. 요즘 자주 찾는 그곳은 점포 안에는 자리가 없었지만, 1층 일부가 비워지고 기둥으로 지탱되는 필로티 구조 덕분에 앞쪽에 작은 공간이 생겨 있었다. 그곳에는 긴 의자 몇 개가 놓여 있어, 사람들은 마치 야외 테라스처럼 커피를 즐길 수 있었다. 윗층이 지붕처럼 드리워져 햇살도 들지 않았다. 한여름의 열기가 한풀 꺾인 9월 중순 아침,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친구와 내가 먼저 도착했고, 뒤늦게 나보다 열 살가량 어린 후배가 나타났다. 그와 함께 온 두 명의 여직원은 후배와도 열다섯 살쯤 차이가 났다. 별것도 아닌 말에도 젊은 여직원들이 까르르 웃어댔다. 사춘기 소녀들은 나뭇잎이 굴러가는 것만 보아도 웃는다던데, 꼭 그런 아이들 같았다. 젊음의 웃음에는 이유가 없다. 나뭇잎이 굴러가도, 커피잔에 거품이 일어도, 그저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 웃을 수 있는 나이다. 그것은 세월이 허락하는 짧은 특권이다.
길지 않은 대화였지만 몇 번이나 웃었다. 직장 동료의 이렇게 크고 맑은 웃음을 본 것이 참 오랜만이다. 별것 아닌 말에도 웃음을 터뜨리는 모습에서, 그들의 일터가 아직은 짐이 되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어깨를 짓누르는 부담이나 날 선 긴장감에 매이지 않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녀들의 웃음소리가 세상 만사가 시큰둥하고 별것 아닌 듯 여겨지던 내 마음을 밝히는 듯했다. 마치 오랫동안 드리워져 있던 커튼이 걷히고 창으로 햇살이 스며들 듯, 세상이 환해지는 느낌이었다. 저들은 알까. 그 반짝이는 젊음과 아무렇지 않게 터져 나오는 웃음이 얼마나 눈부신 것인지, 세월을 건너온 이들에게는 다시 돌아갈 수 없기에 더 아쉽고, 한편으로는 부러운 것이라는 사실을.
언제부턴가 내 웃음은 조금씩 줄어들었다. 버거운 업무와 팍팍한 삶이 마음의 여유를 잠식했고, 세월이 흐르면서 작은 일에도 쉽게 웃던 마음은 점점 무뎌져 갔다. 어느새 표정까지 굳어 있는 날이 많아졌고, 웃음은 자연스레 희미해졌다.
그날 젊은 동료들의 웃음은 달랐다. 별것 아닌 말에도 터져 나오는 웃음을 숨기지 않았고, 그 맑고 솔직한 소리가 주위를 환히 밝혔다. 나이가 들어 줄어드는 것이 수명만이겠는가. 웃음 또한 세월과 함께 줄어드는 법이다. 그래서 그들의 웃음이 더욱 눈부셔 보였는지도 모른다.
커피를 마시고 헤어진 뒤에도 그 웃음소리가 오래 남았다.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에도, 책상에 앉아 있을 때에도 귓가에 맴돌았다. 마치 작은 방울들이 마음속에서 굴러다니며 맑은 소리를 내는 듯했다. 그 웃음은 내 안에서 잊고 있던 반가움을 불러냈다.
한 주의 시작이다. 계획에도 없던, 기대하지도 않던 선물이었다. 때로는 이런 우연한 만남이 하루를, 아니 한 주를 버틸 힘이 되기도 한다.
나이가 들수록 줄어드는 것이 수명이라면, 늘어나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어쩌면 그것은 이런 작은 선물을 찾아내는 감각일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선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마음. 그런 마음이 있는 한, 반가움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오늘도 누군가 웃고 있을 것이다. 나뭇잎이 굴러가는 것을 보며, 커피가 식어가는 것을 보며. 그 웃음소리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하루를 버틸 힘이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