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이 가르쳐 준 삶의 태도
이른 아침, 손톱을 깎았다. 며칠 전에 정리한 듯한데 벌써 끝이 자라 있었다. 딱딱한 손톱이 또각 또각 잘려 나갔다. 욕실에서 거울을 보니 3주 정도 지났을 뿐인데 머리카락이 군데군데 삐죽 솟고 새로 자란 머리카락의 뿌리는 흰빛이 드러났다. 살아 있는 한 멈추지 않고 자라나는 것들이다. 손톱과 머리카락은 존재의 증거이자, 언젠가 멈출 날이 올 것임을 예고하는 징표 같다.
사람은 살아간다고 말해야 할까, 아니면 조금씩 소멸해 간다고 말해야 할까. 끝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데도, 젊은 시절의 나는 그것을 내 일이 아닌 듯 외면하며 살았다. 장례식은 부모님 세대가 다니는 곳이라 여겼고, 나와 친구들의 대화는 언제나 앞날에 관한 것이었다. 첫 직장, 결혼, 내 집 마련, 아이의 이름. 우리의 목록 어디에도 '마지막'은 들어 있지 않았다.
그러나 세월은 그런 생각을 바꿔 놓았다. 부모 세대의 장례에 참여했고, 함께 웃던 동료의 빈소에 향을 올렸으며, 오랜 벗의 부음을 받았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결국 더 많은 이별을 경험한다는 뜻이었다. 처음 몇 번은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고, 문득문득 빈 자리가 눈에 들어와 고개를 돌려야 했다. 하지만 횟수가 늘어날수록 나는 조금씩 달라졌다. 삶이란 끝을 향해 있다는 단순한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언젠가는 나 역시 그 길에 설 것이라는 자각이 자리 잡았다.
지난 여름, 유난히 무덥던 8월에 선배 한 분이 세상을 떠났다. 밖은 아스팔트 위로 열기가 쏟아졌지만, 빈소는 에어컨 바람에 차갑게 식어 있었다. 장례식장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 바깥의 열기가 더 선명하게 다가왔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두 세계가 공존하는 듯했다.
빈소 안으로 들어서자 조용한 공기가 나를 감쌌다. 에어컨 바람이 일정하게 돌고 있었고, 가끔 조문객들이 작은 목소리로 인사를 나누는 소리가 들렸다. 흰 국화로 둘러싸인 영정 속 선배의 얼굴은 수척했지만 눈빛은 온화했다. 마치 모든 것을 받아들인 듯 평온해 보였다.
나는 영정 앞에 무릎을 꿇고 절을 올렸다. 머리를 숙이는 순간 옅은 국화 향이 코끝을 스쳤고, 촛불이 흔들리는 소리가 작게 들렸다. 고개를 들어 선배를 바라보니, 문득 오래전에 세상을 떠난 외할머니와 할머니, 할아버지, 고모와 고모부, 사촌들의 얼굴이 연달아 겹쳐 떠올랐다. 어느새 이쪽보다 저쪽에서 나를 기다리는 이들이 더 많아진 것만 같았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닫힐 때마다 조문객들이 들고 나갔다. 그들의 발소리는 복도에서 멀어졌다가 다시 가까워졌다. 빈소에서 무엇을 생각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 순간, 살아 있음과 멈춤이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숨을 쉬는 나와 이미 숨을 거둔 선배가 같은 공간 안에 나란히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가까운 이들의 부재를 경험하면서 나는 끝이라는 것을 더 이상 추상적으로만 바라볼 수 없게 되었다. 떠난 이들이 남긴 말투와 버릇, 익숙한 표정은 내 기억 속에서 여전히 살아 움직인다. 오랜만에 만난 아들들의 술타령에 몸쓰리가 난다던 할머니, 새벽에 라디오 드라마를 들으며 영어사전을 찢어 담배를 말아 태우던 할아버지, 카랑 카랑한 목소리의 고모. 그들의 흔적은 관계의 빈자리를 채워 주었고, 나로 하여금 삶이 이어진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했다. 그래서 언젠가 나도 그들과 같은 자리에 설 것이란 사실이 두렵기만 한 것이 아니라, 공동의 숙명으로 받아들여졌다.
많은 이별을 겪는 나이가 되자, 일상의 풍경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아무렇지 않게 지나쳤던 아침 햇살이 창가를 비추는 장면, 바람에 섞여 들어오는 풀 냄새, 누군가의 짧은 웃음과 안부 인사가 오래 마음에 남았다. 끝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지금의 순간이 더욱 귀하게 다가왔다.
물론 두려움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밤중에 문득 잠이 깨어 천장을 바라보며 막막함을 느낄 때가 있다. 하지만 그런 순간에도 이상한 평온이 함께 찾아온다. 오래 쓰던 컵이 깨지고, 단골 가게가 문을 닫고, 오랜 친구가 먼 곳으로 떠나는 일상 속의 작은 이별들이 우리를 단련시킨다. 그런 경험들이 쌓이며 언젠가 다가올 더 큰 이별 앞에서도 조금은 담담해질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이별을 떠올리면 삶의 태도는 달라진다. '언젠가' 대신 '오늘'을 선택하게 되고, '언제 한 번'이라는 말 대신 지금을 고른다. 막연한 기대보다 손에 닿는 현실이 더 소중해진다. 오래 미뤄 두었던 전화 한 통, 마음에 남았던 사과 한마디, 짧은 안부 인사가 하루의 공기를 바꿔 놓는다.
나는 종종 내가 두 세계의 경계에 서 있음을 느낀다. 한쪽에서는 새 생명의 울음이 터지고, 다른 쪽에서는 누군가를 배웅하는 발걸음이 들린다. 그 사이에서 우리는 먹고, 웃고, 일하고, 잠든다. 손톱은 자라고 머리카락은 길어지다가 언젠가는 멈춘다. 하지만 그 사실이 삶을 어둡게 만들지는 않는다. 오히려 멈춤이 있기에 지금의 움직임이 더 빛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