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세상에 온기를 더하며
8월의 주말 아침, 부산시청은 거대한 찜통처럼 고요하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휴일엔 중앙 냉방이 가동되지 않는다. 더위가 본격적으로 기승을 부리기 전, 서둘러 일을 마쳐야 한다는 생각에 발걸음을 재촉했다. 내년도 예산안, 그중에서도 가장 마음이 쓰이는 '자살률 저감 계획'을 다시 들여다봐야 했기 때문이다.
오전 7시 남짓. 사무실은 창밖으로 스며드는 햇살만 가득할 뿐 적막했다. 서류와 씨름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는데, 9시가 넘어서자 다른 팀 직원들이 하나둘 출근했다. 10시쯤 되었을까, 누군가 "아침 겸 점심으로 김밥 시킬 건데 같이 드시겠어요?"라고 물어왔다.
아침을 걸러 허기가 졌던 터라 "두 줄은 거뜬하다"며 호기롭게 주문했다. 하지만 막상 한 줄을 비우고 나니 더는 들어가지 않았다. 남은 김밥 한 줄이 책상 한구석에 덩그러니 놓였다. 시간은 어느덧 11시를 향했고, 사무실 공기는 점점 묵직하고 뜨거워져 갔다.
이제는 정말 일어나야 할 시간. 책상을 정리하려는데 은박지에 싸인 김밥이 눈에 밟혔다. 버리기엔 아깝고, 가져가자니 애매했다. 그때, 막 출근해 자리에 앉은 옆 팀 직원이 보였다. 일주일 전 구청에서 전입해 온 낯선 얼굴이었다.
순간 고민이 스쳤다. 남은 음식을 건네는 게 예의에 어긋나는 건 아닐까. '먹다 남은 걸 준다'고 오해하면 어쩌지. 그래도 버려지는 것보다는 낫겠다 싶어 용기를 냈다.
"저기, 혹시 식사 안 하셨으면 김밥 드실래요?"
다행히 그는 환하게 웃으며 "감사합니다"하고 받아 들었다.
서둘러 차를 몰고 집으로 향하던 11시 반, 휴대폰 알림이 울렸다. "주문하신 음료가 준비되었습니다." 아차 싶었다. 집에 가면서 마시려고 시청 근처 카페에 미리 주문해둔 커피였다. 예산안 생각에, 퇴근 생각에 빠져 가게를 그냥 지나쳐버린 것이다. 차를 돌리기엔 이미 너무 멀리 와버렸다.
신호 대기 중, 아까 김밥을 건넸던 그 직원이 떠올랐다. 커피까지 부탁하려니 염치없어 보일까 봐 잠시 망설여졌다. 에라 모르겠다, 통화 버튼을 눌렀다.
"제가 깜빡하고 커피를 안 찾아왔어요. 혹시 괜찮으시면 대신 찾아 드실래요?"
수화기 너머로 잠시 정적이 흐르나 싶더니, 이내 웃음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잘 마시겠습니다. 팀장님."
전화를 끊고 나서도 마음 한구석이 개운치 않았다. 무더운 날 밖으로 나가게 한 건 아닌지, 커피를 싫어하는 사람은 아닌지, 갓 전입 온 직원에게 상사가 부담을 준 건 아닌지... 별별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며칠 뒤, 팀장들과의 점심 자리에서 뜻밖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토요일에 우리 직원이 팀장님 덕분에 김밥도 먹고 커피도 마셔서 횡재한 기분이었다고 하더라고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혹시나 부담이 될까 망설였던 나의 호의가, 낯선 환경에 적응하느라 긴장했을 그에게는 뜻밖의 작은 선물이 되었다는 사실에 마음이 놓였다.
돌이켜보면 나는 왜 그토록 망설였을까. 왜 전화를 끊고 나서도 전전긍긍했을까. 아마도 '배려'라는 것이 내 뜻대로만 전달되지 않는다는 걸 너무 잘 알기 때문이었으리라. 내가 좋다고 생각한 것이 상대에게는 짐이 될 수도 있다는 조심스러움.
하지만 이번 일을 통해 알게 되었다. 완벽하게 상대를 헤아리지 못하더라도, 때로는 방식이 조금 서툴더라도, 다가가려는 마음 그 자체가 우리를 연결해준다는 것을.
나는 그저 남은 김밥이 아까웠고, 잊어버린 커피가 아쉬웠을 뿐이다. 하지만 그것이 누군가에게 건너가자, 8월의 무더운 사무실을 잠시나마 식혀주는 시원한 바람이 되었다.
물건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마음이 진짜 온기라는 것. 세상은 여전히 차갑지만, 이렇게 툭 하고 건네는 김밥 한 줄과 커피 한 잔으로 우리는 또 하루를 견디며 살아가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