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을 잇는 자리
내가 열두 살이던 해, 막내는 겨우 두 살이었다. 남구 용호동에서 감전동까지 가려면 버스를 한 번 갈아타야 했고, 그 길이 두 시간이 넘게 걸렸다. 어머니는 막내를 등에 업었고, 아버지는 여동생 둘의 손을 다잡았고 나는 그 뒤를 따라 걸었다.
초저녁에 집을 나서면 큰집에 도착할 때는 이미 저녁 아홉 시가 넘어 있었다. 할머니와 큰어머니가 부엌에서 마지막 음식들을 준비하고 있었고, 상 위에는 이미 몇 가지 나물과 전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부엌에서 흘러나오는 음식 냄새와 어른들 옷에 밴 담배 냄새, 그리고 이미 피워진 향의 냄새까지 뒤섞여 제삿날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제사가 끝나면 어른들은 오랜만에 만난 형제들과 술잔을 주고받으며 묵은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목소리가 점점 높아져 때로는 언성이 거칠어지기도 했다. 할머니는 술에 취해 다투는 아들들을 보며 "술이 몸서리 난다"고 화를 내셨다. 아이들은 사촌들과 함께 이 방 저 방을 돌아다니며 늦은 밤까지 떠들다가 바닥에 깔린 이불 위에서 뒤엉켜 잠들었다. 새벽이 밝아오면 어른들이 아이들을 하나씩 깨웠고, 우리는 졸린 눈을 비비며 이불을 걷어차고 몸을 움츠린 채 다시 집으로 향했다.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아이들은 창밖 풍경도 보지 못한 채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그 시절 제사는 우리 집안에서 변하지 않는 약속이었다. 할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아버지와 숙부는 조부모님의 제사와 명절 차례를 한 번도 거르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에는 큰아버지가 그 자리를 이어갔고, 이제는 장손인 사촌 동생이 그 일을 맡고 있다. 세월이 흘러도 제사의 주인은 바뀌었을 뿐, 자리를 지키는 마음은 그대로였다.
코로나19가 시작되면서 우리 집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몇 년간 제사에 참석하지 않았다가 2023년 추석부터 다시 모일 수 있게 되었지만, 몇 해의 단출한 제사에 익숙해진 탓인지 조부모님의 기제사만 함께 지내고 설과 추석은 각자 집에서 모시기로 정리되었다.
어린 시절 나는 조상들이 제사상 앞에 다녀간다고 믿었다. 현관문을 조금 열어두는 것도, 향을 피우는 것도 모두 그분들을 맞이하기 위해서라고 들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그 믿음은 옅어졌다. 한때 교회에 다닌 적도 있었지만,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의문은 오히려 더 커졌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매번 그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제사를 지내러 갔을까. 정말 조상님이 저세상에서 이승 밥을 얻어먹으러 온다고 믿어서였을까.
돌아보면 이유는 단순하다. 조상이 온다고 믿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가족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어머니는 해마다 수고를 아끼지 않았고, 아버지는 단 한 번도 빠지지 않았다. 제사상 앞에서 우리는 같은 음식을 나누고, 같은 이야기를 들으며 같은 기억을 쌓았다. 흩어진 삶 속에서 그 기억은 우리를 다시 한자리에 모이게 했다.
제사는 죽은 이를 위한 의식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들이 관계를 다지고 마음을 정리하는 시간이다. 형식은 시대에 따라 변할 수 있지만, 그 안에 담긴 마음만큼은 변하지 않는다.
나는 나의 제삿날을 자식들이 특별하게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상을 차리고 술잔을 올리지 않아도, 가족이 함께 모여 밥을 먹고 나를 추억하며 서로의 안부를 묻는 자리라면 그걸로 충분하다.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하는 마음에 정해진 방법은 없다.
내가 세상을 떠난 날이 꼭 특별할 필요는 없다. 가족이 따뜻한 국 한 그릇을 나누며 내 이야기를 한 번쯤 꺼내어 웃을 수 있다면 나는 그걸로 충분하다. 기억은 거창한 의식보다 오래 남고, 사랑은 복잡한 형식보다 깊게 흐른다. 그 마음이 있는 한, 죽음도 이별이 아니라 다른 방식의 만남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