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겁게 떠나고 조용히 돌아오는 것들
열대야로 밤새 뒤척인 아침이면 언제쯤 이 더위가 물러날까 생각한다. 살아오며 숱한 여름을 지나왔건만, 해마다 이 더위는 낯설고 새삼스럽다. 아마도 그것은 지난 여름의 불볕을 매번 잊기 때문은 아닐까.
올해 여름은 유난히 견디기 힘들었다. 덥다고 밤새 에어컨을 틀 수도 없었다. 전기요금도 걱정이었지만, 무엇보다 에어컨 돌아가는 소음이 깊은 잠을 방해했다. 몇 시간만 작동하게 설정한 에어컨은 한밤중 꺼지고, 깊은 새벽, 더위에 깨면 문이란 문은 다 열어젖히고 다시 눕는 일이 반복되었다.
그 밤, 베란다 너머로 매미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주위가 고요할수록 울음은 더욱 쏟아졌고, 나는 더위에 뒤척이고 있었지만, 매미들은 지치지 않고 울고 있었다.
계절이 바뀌면 우리는 그런 밤을 또 잊는다. 그리고 다음 여름이 오면, 마치 처음 겪는 듯 그 고통을 새롭게 살아낸다. 만약 우리가 지난 여름의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면, 지레 겁을 먹고 무너져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니 망각은 실수가 아니라, 자연이 우리에게 허락한 배려일 것이다. 잊어야 견딜 수 있고, 잊었기에 또 한 번 여름을 버텨내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매미 소리가 달라졌다는 걸 느꼈다. 처음엔 미묘한 변화였다. 여전히 웅성거렸지만, 예전처럼 귀를 가득 채우진 않았다. 며칠이 지나자 울음에 빈틈이 생겼고, 그 틈으로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와 바람 소리가 스며들기 시작했다.
초저녁 베란다에 나갔을 때, 매미 소리는 확연히 줄어 있었다. 그 사이사이로 작은 생물의 기척이 들렸다. 예전 같으면 매미 소리에 묻혀 사라졌을 법한 소리들이었다.
어제 밤, 술을 마시고 베란다 문을 열어둔 채 잠들었다가 익숙하던 매미의 울음이 사라졌다는 걸 깨달았다. 한 달 가까이 이어졌던 소음이 어느 순간 자취를 감춘 것이다. 처음엔 그 침묵이 어색했다. 그때, 낮고 얇은 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귀뚜라미였다.
매미가 울던 자리에 귀뚜라미가 들어섰을 뿐인데, 그 소리 하나로 계절이 바뀌었음을 온몸으로 실감했다.
그토록 간절했던 매미의 울음이 멈추었다. 매미의 울음은 떼지어 들려왔다. 와글와글한 울음은 달아오른 콘크리트 위로 쏟아지고, 한낮의 열기처럼 귀를 짓눌렀다. 그 소리는 여름의 심장 소리 같았다. 모두가 함께 울고, 모두가 함께 사라졌다.
귀뚜라미의 울음은 다르다. 밤의 틈에서 홀로 울고, 멈췄다 다시 시작한다. 한 사람에게만 들리는 목소리처럼 낮고 차분하다. 매미가 여름을 밀어붙이는 소리라면, 귀뚜라미는 계절을 물러나게 하는 소리다. 울음의 결이 바뀌었을 뿐인데, 계절이 달라졌다.
출근길에 경비원들이 낙엽을 쓸고 있었다. 아직 늦여름인데도, 나무 아래 마른 잎사귀들이 제법 수북했다. 자연은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햇볕 쏟아지는 한철, 뜨거운 울음으로 여름을 흔들던 시간이 조용히 저물고 있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