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기억 하나가 문을 열었다
얼마 전, 유튜브에서 기장의 어느 전복죽집을 보았다. 기본 대기 시간이 한 시간은 된다고 했다. 추석 연휴, 부모님과 여동생과 함께 이른 오전에 길을 나섰다.
10시 반에 도착했을 때 이미 43팀이 앞에 있었다. 예상 대기 시간은 한 시간 반. 개점 시간에 맞춰 가면 바로 먹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그 계산은 틀렸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한 사람들이 많았다.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바닷길을 걸었다. 해안을 따라 대형 베이커리 카페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수평선이 길게 펼쳐졌다. 구름이 낮게 깔린 하늘 사이로 잠시 햇빛이 비치면 바다 표면이 번쩍였다. 바람에는 짠 냄새가 섞여 있었고, 파도 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카페마다 풍경이 달랐다. 주차장이 벌써 가득한 곳도 있었고, 아직 평일 오후처럼 한산한 곳도 있었다. 이렇게 많은 대형 카페들이 과연 수지가 맞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몇 해 전 뉴스에서 본 이야기가 떠올랐다. 자산가들이 절세를 위해 제과업으로 등록한 대형 카페를 가업으로 물려준다는 내용이었다. 경치 좋은 땅을 사서 카페를 짓고, 세금은 줄이고, 땅값이 오르길 기다리는 식이었다. 법의 틈새를 이용한, 그들만의 부의 대물림이었다.
바다가 보이는 이 자리는 누군가에게는 풍경이 아니라 자산이었다.
바닷가로 내려가는 길은 가파르고, 바닷물이 들어왔다 나가는 자갈밭이어서 내려 갈 수는 없었다. 우리는 차 두 대가 겨우 지날 만한 좁은 차도 옆을 따라 걸었다.
한 시간쯤 흘러 다시 식당으로 돌아왔다. 우리 앞에는 아직 23팀이 남아 있었다. 포기할까 망설였지만, 여기까지 온 길과 이미 흘러간 시간을 생각하니 돌아서기 어려웠다. 부모님과 함께 온 자리이기도 했다. 결국 우리는 한 시간 정도를 더 기다린 끝에 식당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전복죽 한 그릇에 2만 5천 원. 전복이 넉넉히 들어간다지만, 다소 비싸게 느껴졌다. 그러나 관광지 음식값이 다 그렇듯, 맛이 있다면 그만한 값은 한다고 여겼다.
식구들은 만족스러워했다. 전복이 풍성했고 담백했다. 나는 그보다는 훨씬 저렴하지만 감칠맛이 도는 연하리의 전복죽이 떠올랐다. 그곳의 무엇이 맛을 끌어내는지—조미료인지, 육수의 비법인지—알 수는 없지만 내 입에는 그 맛이 더 익숙해서인지 모르겠다.
돌아오는 길에 여동생이 옛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막내가 태어나던 날 기억나?”
나는 병원에서 태어난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그러나 여동생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용호동 단칸방에서 엄마가 낳았어. 그날 정말 무서웠어.”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이 멍해졌다. 내가 알고 있던 기억이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말에 따르면 막내뿐 아니라 우리 사남매 모두 집에서 태어났고, 아버지가 직접 받으셨다고 했다.
나는 막내와 열 살 차이다. 그런데도 그 장면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반면 세 살 어린 여동생은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기억이란, 아마도 어떤 강렬한 한순간이 마음속에 깊이 박혀 남는 것인 듯 하다. 여동생은 그날의 현장에 있었고, 나는 없었다. 그것이 기억의 차이를 만들었을 것이다.
아이를 의료진의 도움 없이 가족의 손으로 받아냈다니, 지금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 어머니는 담담히 말했다.
“그때는 다 그랬다. 병원에 가는 건 큰일 겪는 사람들 얘기지.”
그 시절에는 임신을 하면 조산원에 몇 번 들러 아이의 상태만 확인하고, 진통이 오면 집에서 낳았다고 한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내가 태어나던 무렵, 한 해 출생아가 백만 명이 넘던 시절은 이미 지나갔다. 지금은 연간 출생아 수가 24만 명 남짓이니, 아이 하나하나가 귀한 시대다. 만약 지금 누군가가 집에서 아이를 낳았다면 뉴스에 실릴지도 모른다.
창밖으로 바다가 흐르고, 어머니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의료진도 장비도 없이, 시어머니와 남편의 도움을 받아 우리 사남매 모두를 집에서 낳으셨다는 말.
작은 방에서 진통을 버티며 아이의 울음을 들었을 것이다. 그때의 공기, 사람들의 숨결, 아버지의 떨린 손까지도 눈앞에 그려지는 듯했다. 그 시절에는 그런 출산이 특별하지도 않았다는 게 오히려 놀라웠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말없이 창밖을 보았다. 흐린 하늘 아래, 바다는 잔물결만 일렁였고, 구름 사이로 잠시 빛이 비쳤다가 이내 사라졌다.
그 물결 속에서 오래전 어머니의 시간이 천천히 겹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