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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감동 한 끼

밥상 위의 온기가 지속 가능한 정책이 되기 까지

by 박계장

내 자리 옆 파티션은 시선은 가려도 웃음까지 막지는 못한다. 파티션 너머에서 "고생했다", "잘 끝났다" 하는 말들과 웃음소리가 겹쳐 들려왔다. 모니터 속 결재 문서를 읽고 있지만 귀는 자꾸 그쪽으로 기울었다. 대화 내용은 잘 들리지 않았지만, 오늘이 누군가에게는 무사히 끝난 어떤 날이라는 안도감만은 분명하게 전해졌다.


그 웃음의 여운은 다음 날 점심까지 이어졌다. 국장님을 따라 우리 일행은 거제시장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곳은 화려한 먹거리가 넘쳐나는 서울의 여느 시장들과는 사뭇 다르다. 시선을 끄는 화려함 대신, 투박한 칼국수와 수제비 냄새가 먼저 사람을 붙잡는 곳이다. 우리는 조리대 앞, '다찌'라 불리는 긴 테이블에 일렬로 앉았다. 자리가 좁아지니 말수는 줄고, 대신 소리와 냄새가 또렷해졌다.


테이블 앞 낮은 가림막이 도마 위를 살짝 가렸다. 칼끝이 닿는 장면은 보이지 않았지만, 가림막 위로 오가는 주인장의 어깨와 팔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툭툭. 무심한 듯 정확한 칼질 소리가 일정한 박자로 이어졌다. 우리는 그 소리를 반찬 삼아 국물이 끓기를 기다렸다.


김이 먼저 올라왔다. 이윽고 수제비 여섯 그릇이 가림막 위로 밀려 나왔다. 주인장이 일일이 놓을 수 없으니, 그릇은 자연스레 손에서 손으로 이어졌다. 주인장의 손에서 내 손으로, 다시 옆자리의 국장님과 과장님을 거쳐 끝자리의 팀장에게로 뜨끈한 무게가 건너갔다. 손끝에 남은 뜨거운 기운이 가시기도 전에 김밥 세 줄이 따라붙었다. 뜨거운 국물만으로는 어딘가 허전하고, 김밥 한 줄이 있어야 비로소 한 끼가 완성되는 골목. 우리는 어깨를 맞댄 채 숟가락과 젓가락을 부지런히 움직였다. 국물이 혀를 데우고, 김밥의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뒤따라 올라왔다.


식사를 마치고 늘 가던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겼다. 문을 여니 볶은 원두 냄새가 훅 끼쳐 왔고, 정오를 조금 넘긴 햇빛이 통창을 맑게 밝혔다. 우리는 보통 2층 창가에 앉지만, 그날은 먼저 온 손님들로 붐벼 1층 창가에 자리를 잡고 숨을 골랐다.


국장님은 앙증맞은 에스프레소 잔을 엄지와 검지로 조심스레 쥐었다. 수제비 그릇을 비운 직후라 그런지, 작은 잔을 쥔 손이 유난히 투박하고 커 보였다. 국장님은 한 모금 머금더니 웃으며 말했다.


"내가 낸 아이디어지만, 참 좋은 사업이야."


국장님이 말한 사업은 어제 있었던 '부산 감동 한 끼' 행사였다. 이름이 묘해서 나는 잠깐 생각했다. 부산이 감동했다는 뜻인지, 부산이 주는 감동적인 한 끼라는 뜻인지. 국장님은 잔을 내려놓고 천천히 말을 이었다.


"의인들을 시민평가단으로 모셨거든, 음식 맛도 맛이지만 부산시가 이렇게까지 자신들을 대접한다는 거, 거기에 더 감동하더라고. 학생들은 또 어떻고. 얼마나 대견하던지. 자기들이 만든 음식으로 누군가를 기쁘게 한다는 자부심이 얼굴에 그대로 다 드러나더라니까."


국장님은 조리 전공 대학생들이 직접 기획하고 만든 요리를 지역의 숨은 영웅들에게 평가받는 자리였다고 설명했다. 평가라기 보다 의인들에게 한끼 대접하는 시간이었다고 하는게 더 맞는 말일 듯 하다. 지역에서 헌혈을 오래 이어 오신 분, 응급 구조 현장을 지켜 온 분, 그리고 장기기증 유가족이 같은 식탁에 앉았다고 했다. 국장님은 잠시 멈칫하더니 힘주어 말했다.


"셰프들이 학생들 가르치는 모습도 참 보기 좋았지만, 애들이 여기서도 꿈을 펼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어가는 게 진짜 보람이었어. 우리가 차린 건 밥 한 끼지만, 그게 결국 도시가 당신들을 기억하고 있다는 깍듯한 인사가 되는 거잖아. 그게 진짜 예우지."


나는 빈 잔을 만지작거리며 그 말을 곱씹었다. 셰프와 학생, 그리고 의인들이 어우러진 그 밥상은, 국장님 말씀대로 도시가 건넬 수 있는 가장 따뜻한 예우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 따뜻함 뒤편에는 언제나 차가운 계산서가 기다리고 있다. 공무원에게 '의미 있는 사업'이라는 확신은 종종 뼈아픈 현실과 부딪히곤 한다. 국장님도 그걸 모르지 않았다. 씁쓸하게 웃으며 내년 본예산에 이를 반영하지 못한 아쉬움을 토로했으니까. 추경을 해서라도 기필코 살려보겠다는 국장님의 말은 단순한 다짐이 아니라 절박한 좌표처럼 들렸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그리고 거기가 얼마나 좁은 문인지가 함께 적힌 좌표였다.


올해의 현실은 나에게는 더 노골적이었다. 지금은 12월 말, 예산 편성은 이미 끝났다. 부산시는 내년을 '부산시 전체가 참여하는 생명존중 원년'으로 만들겠다고 공표하였지만, 그 선언에 걸맞은 예산을 이번 본예산에 단 한 푼도 담지 못했다. 사업계획은 예산이 닫힌 뒤에야 형태를 갖추었고, 필요한 돈은 결국 내년 봄, 추경에서 다시 찾아야 한다. 추경의 문 앞에는 늘 경쟁자가 줄을 선다.


부산의 자살률을 실질적으로 떨어뜨리겠다는 말은 입에 올리기 쉽다. 회의에서 그 말을 하면 모두 고개를 끄덕이고, 문서에 그 말을 쓰면 문장이 그럴듯해진다. 그러나 그 말을 골목과 가정과 응급실까지 옮기려면 사람과 시간과 돈이 필요하다. 돈이 없으면 사람을 붙잡기 어렵고, 사람이 없으면 시간은 흩어진다. 흩어진 시간은 위기의 순간에 아무도 도착하지 못하게 만든다.


물론 이런 고민들도 책상 앞에 앉으면 금세 피로감으로 바뀔지 모른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파티션 너머의 웃음소리가 듣기 좋았고, 그게 계속되었으면 하는 마음은 진심인걸. '감동 한 끼'가 끊이지 않아야 정책이 되듯, 내 일도 끈질기게 매달려야 변화가 생긴다. 거창한 정의구현보다는, 당장 내년 봄에 누군가의 삶이 식지 않도록 추경 요구서나 꼼꼼히 채워 넣어야겠다. 그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온기 배달'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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