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부산, 묵은 인연을 다시 깁다.
지하철 3호선 승강장은 유난히 깊다. 에스컬레이터가 한참을 내려가 토해낸 자리는 서늘했다. 스크린도어가 열리자 터널 깊은 곳에 고여 있던 묵은 먼지와 비릿한 쇠 냄새가 끼쳐왔다. 퇴근길 객차 안, 사람들은 저마다의 피로를 외투처럼 껴입고 앉아 있다. 습관처럼 휴대전화 화면을 켠다. 단체 대화방의 숫자 ‘5’. 며칠째 미동도 없는 그 숫자가 돌처럼 단단하다. 누군가 던진 안부 인사 위로 침묵만 얇게 내려앉았다. 교육원 시절, 사소한 농담에도 와르르 무너지듯 웃어대던 문장들은 다 어디로 증발했을까. 액정 위를 부유하는 정적을 보며 생각한다. 인연의 부피가 줄어들고 있다.
목적지가 처음부터 부산은 아니었다. 본래는 완주였다. 전북에서 가축 방역을 맡은 동기가 주선하기로 한 자리였다. 그러나 겨울바람을 타고 온 불청객, 조류독감이 발목을 잡았다. 바이러스와의 사투에 묶인 그에게 여행은 사치였다. 모임은 물거품이 될 뻔했다. 방향키를 튼 건 오후의 커피 한 잔이었다. “지난여름에 광안리에서 후배가 운영하는 요트를 탔는데,,,.” 합석했던 친구의 무심한 한마디가 틈을 파고들었다. 내게는 일상인 바다 풍경이, 뭍사람들에겐 밤의 환상일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럼 이번엔 부산에서 모임을 주선합시다. 지난번 수원에서 대접 받은 빚도 갚을 겸, 우리가 판을 한번 깔아보는게 어때요?.” 내가 맞은 편에 앉은 동기에게 말을 건넸고 그가 흔쾌히 동의해 완주에서 멈출 뻔한 수레바퀴가 우연과 호의를 맞물고 다시 삐그덕, 굴러가기 시작했다.
2025년 12월 20일, 부산역 2층 대합실. 프로필 사진 속 납작한 얼굴들이 입체화하여 걸어왔다. 악수를 건네는 손바닥의 까슬한 감촉, 겨울코트에서 풍기는 섬유 유연제 냄새. 화면 속 말줄임표로만 존재하던 이들이 실체를 입자, 관계의 소멸을 걱정하던 내 불안은 맥없이 흩어졌다. 예정된 국밥집 줄이 길어 택한 옆 가게의 수육 백반. 고기는 다소 퍽퍽했고 국물은 밍밍했다. 그러나 상관없었다. 중요한 건 미각이 아니었다. 오랜만에 같은 속도로 숟가락을 들고 놓는 행위, 식탁 위로 달그락거리는 식기 소리와 섞이는 웃음소리의 리듬이었다. 그것만으로도 밥맛은 충분했다.
해운대행 1003번 버스는 거대한 찜통이었다. 차창 밖은 겨울인데 안은 한여름처럼 후끈거렸다. 빽빽한 승객들 틈에서 누군가 가방을 앞으로 돌려 메고, 누군가는 말없이 손잡이 한쪽을 내어주었다. 덜컹거리는 차체에 몸을 맡긴 채 주고받는 사소한 눈짓들. 우리는 아직 타인의 불편을 살필 줄 아는 염치를 가지고 있었다.
친구의 주선으로 오른 요트 위. 해운대 앞바다는 검고 깊었다. 엔진 소리와 함께 배가 물살을 가르자, 검은 수면 위로 하얀 포말이 부서졌다. 와인 잔이 부딪칠 때마다 청아한 파열음이 났다. 이윽고 밤하늘에 불꽃이 터졌다.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붉고 푸른 빛의 알갱이들이 어지럽게 쏟아져 내렸다. 바다 한가운데서 올려다본 광안대교는 모래사장에서 보던 풍경과 달랐다. 거대한 교각은 압도적인 질량으로 다가왔고, 그 위를 달리는 자동차의 불빛들은 핏줄처럼 붉게 이어졌다. 소음과 빛이 뒤섞인 그 비현실적인 공간에서 우리는 잠시 말을 잃었다.
그 밤, 동기 중 첫 서기관 승진자가 나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축하한다.” 건네는 말은 간결했으나, 목구멍으로 넘기는 와인의 맛은 복잡했다. 진심 어린 축하의 단맛 끝에, 혀끝에 남는 묘한 떫은맛. 내게 남은 시간은 얼마일까. 가늠해보는 내 마음 한구석에 여전히 부러움이 일렁였다. 아직 내 안에 태울 것이 남아 있다는 증거일 테니, 그 쌉싸름함조차 나쁘지 않았다. 수영에서 한우 양구이, 전골은 소주병을 꽤나 비우게 했다.
일행 중 대부분이 양구이를 평생에 처음 먹는 다고 해서 좁다고만 알았던 우리나라가 결코 작지 않다는 생각을 새삼 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이튿날 찾은 용궁사는 바다를 등진 채 위태롭게 매달려 있었다. 내 시선은 정병(淨甁)을 거꾸로 쥔 관세음보살상에 머물렀다. 보통은 바로 들고 있을 병을, 내용물을 한방울도 남기지 않겠다는 듯 주둥이를 아래로 하여 쥐고 있었다. 중생의 번뇌를 씻어줄 감로수라 했다. 쥐고 채우는 것에만 골몰해 온 내 손과 달리, 그는 맑은 물을 아낌없이 허공으로 흘려보내고 있었다. 텅 빈 병을 쥔 석상의 얼굴이 무심한 듯 서늘했다.
해안 산책로를 걷다 바다 위에 뜬 섬 같은 형상을 보았다. 대마도였다. 50킬로미터 밖의 땅이 저토록 선명할 수 있을까. 빛의 굴절이 빚어낸 착시인 줄 알면서도 눈을 뗄 수 없었다. 어쩌면 멀어진 우리가 다시 마주 앉아 웃고 있는 이 시간도 신기루일지 모른다. 하지만 허상이면 어떠랴. 지금 내 눈앞에 섬이 있고, 곁에 당신들의 숨소리가 있는데. 점심으로 택한 아나고회는 눈가루처럼 포슬포슬했다. 부산 방식대로 숟가락으로 회를 듬뿍 떠서 깻잎 위에 얹고, 붉은 초장을 끼얹었다. “회를 숟가락으로 퍼먹다니.” 동기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낯선 식감에 탄성을 내뱉으며, 우리는 여행의 마지막 허기를 채웠다.
일행들이 하나 둘, 떠나고 나와 승진을 앞둔 동기, 단둘만 남았다. 부산역 맞은편 차이나타운의 우즈베키스탄 식당. 붉은 홍등이 켜진 거리는 이질적이었다. 독한 보드카 대신 소주잔을 채웠다. 승진의 들뜸도, 여행의 흥분도 가라앉은 식탁. 나이 들어감의 쓸쓸함, 먼저 떠난 선배들의 뒷모습, 죽음 너머의 세계에 대한 낮은 물음들이 안주 대신 오갔다. 빈 병이 늘어갈수록 말수도 줄었다. 그 침묵은 단체 대화방의 그것과는 질감이 달랐다. 헐거워진 매듭을 다시 단단히 조인 뒤에 찾아오는, 묵직한 안도감이었다.
식당 앞에서 헤어졌다. 칠곡행 기차를 타러 가는 그의 뒷모습이 인파 속으로 섞여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았다. 찻길 건너 역 광장에는 해가 지며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막 땅거미가 내려앉은 거리의 서늘한 바람이 술기운 오른 뺨을 스쳤다.
다시 지하철 1호선. 일요일 저녁, 덜컹거리는 열차의 진동에 맞춰 몸이 나른하게 흔들렸다. 객차 천장의 형광등 불빛이 눈 시리게 쏟아지고, 맞은편 손잡이들은 시계추처럼 멍하니 왔다 갔다 한다. 내일이면 다시 일상이다. 단체방의 숫자는 또다시 오랫동안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읽지 않음’의 고요가 길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 그 숫자에 연연하지 않는다. 답답해지는 라운드티를 살짝 잡아당겨 느슨하게 해본다. 목을 죄던 긴장이 탁, 하고 풀린다. 가슴 깊숙이 숨이 들어오는 듯 하다. 객차 안이 연신 비틀거린다. 1박 2일의 긴 여정이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