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모두가 섬이다

고립 속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법

by 박계장

작년 봄, 완주에서 10개월간 장기교육을 받던 중이었다. 통증은 전날 낮부터 있었다. 처음에는 감기 기운이 도는 줄로만 알았다. 약간의 발열과 오한, 어지럼증이 간헐적으로 찾아왔지만 배가 아프지는 않았다. 오후 수업까지 이어갔고 분임원들과의 저녁 식사를 겸한 술자리에도 참석했지만 컨디션이 좋지 않다며 양해를 구하고 모임 중에 숙소로 돌아왔다.


감기약을 먹고 잠이 들었다가 새벽에 복통 때문에 깼다. 왼쪽 아랫배가 묵직하게 뭉치더니 이내 칼끝으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 자세를 바꿀 때마다 배속이 비틀렸고, 구역질도 올라왔다. 이마에는 식은땀이 맺히고, 장은 무언가를 쥐어짜듯 뒤틀렸다.


새벽 세 시가 지나자 통증은 절정에 달했다. 찌르는 듯한 통증이 순간 순간 몰려왔고, 식은땀이 등을 타고 흘렀다. 손으로 배를 눌러보니 특정 부위가 유난히 아팠다. 아무래도 심상치 않았다. 이불을 걷어내고 침대에서 내려왔다. 응급실로 갈 준비를 하며 옷과 소지품을 챙기는 사이, 통증이 조금 가라앉았다. 그렇게 새벽을 버티고 아침에 차를 몰아 병원으로 향했다. 진단은 대장게실염이었다. 3박 4일간 입원하며 금식했지만, 다행히 천공은 없어 수술은 피할 수 있었다.


이런 통증을 누가 대신해 줄 수 있을까. 가족이라 해도, 그 누구도 내 배속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이 낯선 통증을 대신 앓아줄 수는 없다. 약을 건네주고 등을 쓸어주는 손길은 고맙지만, 결국 숨을 고르고 통증과 함께 누워 있는 일은 나 혼자 해야 한다. 몸의 고통은 혼자 견뎌야 한다.


몇 달 전, 존경하던 선배가 세상을 떠났다. 며칠 동안은 그의 부재가 믿기지 않았다. 그러나 장례가 끝나자 삶은 다시 흘러가기 시작했다. 산 사람은 먹어야 하고, 일해야 하고, 또 웃어야 한다. 그와 각별한 인연이 있었지만, 나는 결국 남이었다. 그의 가족들도 다르지 않았다. 아들은 담배를 피우며 조문객들과 담소를 나눴고, 사람들은 술잔을 기울이며 자신들의 이야기를 꺼냈다. 슬픔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삶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이었다.


누군가의 죽음이 세상의 속도를 멈추게 할 수는 없다. 살아남은 자들은 밥을 먹고 웃으며 다시 삶으로 돌아간다. 그 사실이 처음엔 냉정하게 느껴졌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야 한다.


죽음뿐 아니라 살아 있는 관계에서도 우리는 결국 혼자다. 그 사실을 문득 깨달은 건, 지난여름 오랜 친구를 만났을 때였다.


경기도 평택에서 일하는 그는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함께 다닌 친구였다. 작은 주점에서 마주 앉아 술잔을 기울이며 직장 이야기, 가족 이야기, 건강 이야기를 나눴다. 에어컨의 찬공기가 간간이 목덜미를 스쳤고, 벽에 걸린 TV는 아무도 듣지 않는 얘기를 쏟아냈다. 말은 끊이지 않았지만 예전 처럼 편하지는 않았다. 한때는 말하지 않아도 통했는데, 이제는 서로의 처지를 살피며 말을 골라야 했다. 사는 환경도 다르고, 생각하는 방향도 달라져 있었다. 오랜 친구지만, 마음속에는 조용한 벽 하나가 생겨 있었다.


헤어질 때 악수를 했다. "다음에 또 보자." 그 말은 인사이자 약속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둘 다 알고 있었다. 다음이 언제일지, 그리고 그때도 이 거리는 쉽게 좁혀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아무리 오래된 친구라도 그는 내가 아니었다.


어느 시인은 "사람은 누구도 섬이 아니다"라고 했다. 서로 이어져 있고, 누군가의 고통은 결국 모두의 일이라는 뜻일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며 사람들은 그 말을 다르게 느끼기 시작했다. 도시가 커지고, 사람의 수가 늘어날수록 마음은 오히려 멀어졌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함께 살아가도, 결국 내 고통은 내가 감당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시대는 그 문장을 뒤집었다. "인간은 모두가 섬이다."


나이가 들수록 그 거리는 더 분명해진다. 젊을 때는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아야 한다고 믿었다. 함께 밥을 먹고 술을 나누며 웃음을 섞는 일이 삶의 중심이라 여겼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 알게 된다. 사람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간극이 있고, 그 간극을 억지로 메우려다 관계가 상처를 입는다는 것을.


새벽에 일어나 가끔 베란다 창문을 연다. 찬 공기가 얼굴을 스치고 지나간다. 어디선가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 도로를 질주하는 자동차 소리도 멀리서 들려온다. 건너편 아파트 창에 불이 켜진다. 누군가 깨어 있다.


저 불빛 안에도 잠 못 이루는 밤이 있을 것이다. 나는 그 사람을 모르고, 그 사람도 나를 모른다. 하지만 그 불빛을 보며 생각한다. 저 사람도 혼자겠구나. 저 사람도 자기만의 섬에서 밤을 견디고 있겠구나.


섬은 멀리 떨어져 있지만 서로의 불빛을 본다. 바다 위에서 등대가 서로를 향해 깜박이는 것처럼, 인간의 관계도 그렇게 이어진다. 닿지는 못하지만, 존재를 알아보는 빛이 있다.


서로의 고립을 인정하기 때문에 우리는 조심스레 다가가고, 말 한마디를 더 신중히 고른다. 상대의 외로움을 완전히 채울 수 없다는 걸 알기에, 그 옆을 지키는 일의 의미를 깨닫는다. 완전한 이해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 불가능을 견디며 옆에 서 있는 일. 그것이 사람이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최선일지도 모른다.

keyword
이전 16화커피 프림, 식은 통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