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어지는 결정, 사라지는 기회
금요일 늦은 밤, 경찰은 정신질환이 의심되는 청년의 난동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했다. 언행은 거칠었지만 직접적인 위해는 없어 형사처벌 대상은 아니었다. 그러나 정신의료기관 입원이 필요한 상태인지 판단하기 위해 광역정신건강복지센터에 연락을 취했다.
센터 위기개입팀은 24시간 전화상담을 하며, 필요 시 정신건강전문요원이 현장에 출동한다. 이날도 경찰의 요청에 따라 전문요원이 출동했고, 응급입원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그러나 병상이 없었다.
심야 시간에 응급입원이 가능한 병원이 없었던 것이다. 심야에도 의료진이 대기하는 시립정신병원이 있으나 보호실에 여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경찰과 전문요원은 입원이 가능한 병원을 찾지 못하고 환자와 함께 날이 새기를 기다렸다.
다음 날 아침, 경찰청 생활질서계에서 항의 전화가 걸려왔다. "이런 일은 시청에서 해결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경찰이 정신병원 입원 문제에만 매달릴 수는 없습니다."
그 항의는 낯설지 않았다. 2021년, 정신건강팀 실무자로 근무하던 시절, 월요일 아침은 종종 이런 전화로 시작되곤 했다. 당시 부산시는 시립정신병원을 포함한 두 곳에서 야간·휴일 응급입원을 위한 보호실 6개를 운영하고 있었지만, 수요를 감당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이런 혼란은 새로운 일이 아니었다. 2018년 겨울, 서울의 병원 진료실에서 정신과 의사가 환자에게 피살되었고, 이듬해 진주에서는 조현병 환자가 아파트에 불을 지른 뒤 대피하던 이웃을 흉기로 공격해 다섯 명이 사망하고 열세 명이 다쳤다.
두 사건은 정신질환자의 인권과 사회적 안전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을 것인지에 대한 논의를 공론화시켰고, 이후 「정신건강복지법」 개정과 제도 정비로 이어졌다.
정신질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강제입원은 경찰 개입이 가능해지면서 간소화되었고, 대신 인권 보호를 위한 심사 절차도 강화하였다. 병원에는 의료진의 안전을 위한 비상벨과 CCTV 설치, 안전 인력 배치가 의무화되었다. 그러나 정작 입원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아무리 잘 만들어진 제도도 현장에서 작동하지 않는다.
전환점은 2023년 12월이었다. 부산에 「정신응급합동대응센터」가 설치되면서 상황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광역정신건강복지센터를 중심으로 경찰관 6명과 정신건강전문요원 14명이 교대로 근무하며 현장 대응 체계가 가동되었다. 동시에 응급 입원을 위한 공공병상도 3개소 12병상으로 확대되었다.
부산은 다른 지역에 비해 정신의료기관 수는 많은 편이다. 그러나 야간이나 휴일에 의료진이 상주하는 기관은 거의 없다. 응급 상황에 실제로 대응 가능한 병원이 매우 제한적이었던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부산시는 정신응급 공공병상을 지정하고, 해당 병원에 야간·휴일 진료가 가능하도록 의료인력의 인건비를 지원했다. 그 결과 야간과 휴일에도 안정적인 입원이 가능해졌고, 현장의 혼란도 현저히 줄어들었다.
2025년 1월, 정신건강팀장으로 돌아와 보니, 실무자로 일하던 시절 반복되던 월요일 아침의 긴장감은 이제 과거의 일이 되었다.
그러나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청소년 정신응급 대응은 여전히 어려움이 많다. 성인보다 위험 관리가 까다롭고 에너지 소모와 법적 부담 크다는 이유로 병원들은 청소년의 입원에 소극적이다. 야간이나 휴일에는 그 경향이 더 두드러진다.
다행스럽게도 부산시는 김해의 청소년 전문 정신의료기관과 협약을 맺고 병상 2개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입원까지 이어지는 과정은 여전히 복잡하다. 보호자의 동의, 병원의 수용 여건, 시간대와 인력 상황까지 여러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더 복잡한 문제는 판단의 충돌이다. 자살 시도자가 발생한 현장에서 경찰은 "위급상황은 아니다"라고 판단했고, 센터의 전문요원은 "즉각적인 입원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결국 응급입원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보건소에서 행정입원을 준비하던 중 당사자는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경찰이 응급입원에 신중한 이유는 절차 때문이 아니라, 정신질환자 대응에 대한 비전문성과 그로 인한 법적 책임 부담 때문이다. 보건소에서 진행하는 행정입원은 경찰관 주도의 응급입원 보다 절차가 복잡하고 시간도 더 오래 걸려, 상황이 지연되기 쉽다.
현장의 판단은 환자의 상태, 위험 수준, 가족 동반 여부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야 하며, 그 판단은 정신건강 전문요원의 의견이 존중 되어야 한다.
정신응급 대응체계는 과거보다 분명 나아졌다. 하지만 여전히 부족한 영역이 남아 있다. 청소년 응급 대응, 판단 주체 간 입장 차이, 긴박한 상황에서의 신속한 결정 등은 제도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판단이 어려울수록 책임지려는 사람은 줄고, 대응은 더뎌진다. 제도가 있어도, 실제로 움직이게 만드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틈을 조금씩 줄여 나가는 것이다.
완벽한 체계는 없다. 하지만 완전하지 않다고 해서 멈춰설 수는 없다. 그 노력이 단 한 사람의 삶을 지킬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일을 계속할 이유는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