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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친절이 건네는 큰 위로

by 박계장

찬물이 잇몸에 스미는 순간, 이보다 더 시린 건 마음이었고, 입안의 통증보다 오래 남은 건 사람에 대한 불신이었다.


작년, 10개월간 나는 업무에서 잠시 물러나 다른 지역에서 교육을 받으며 생활했다. 익숙한 일상에서 비켜선 시간은 예고 없이 찾아왔고, 낯선 환경은 처음엔 불편했지만 곧 내 삶에 느린 호흡을 불어넣었다.


이른 아침에 숙소 근처 마을 길을 걷다 보면, 계절마다 다른 냄새와 빛이 스며들었다. 풀잎이 짙어지고 낙엽이 쌓이는 동안, 잊고 지냈던 감각들이 천천히 깨어났다.


저녁이면 채소와 된장으로 찌개를 끓였다. 일주일에 네 시간씩 배우는 하모니카를 불다 음이 엇나가면 스스로도 웃음이 났다. 그러다 불쑥 떠오른 옛 기억에 손을 멈추곤 했다. 그 느릿한 생활은 내 안에 잔잔한 힘을 채워 주었다.


그 즈음 치과에 갈 일이 생겼다. 찬물만 마셔도 이가 시렸지만, 직전에 단골 치과에서 검진을 받은 터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시림이 가시지 않자 혹시 그때 검진에서 놓친 게 있던 건 아닐까 걱정이 밀려왔다. 시내의 한 치과를 찾으니, 엑스레이와 구강 사진을 여러 번 찍은 뒤 치아 12곳에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치료비는 240만 원이지만 봄맞이 행사로 200만 원까지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선뜻 믿기진 않았지만, 치료를 미루다 더 큰 문제가 생길까 두려웠고, 돈이 없어 치료를 못 받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지도 않았다. 결국 치료에 들어갔다.


두 달 동안 치근활택술과 레진 시술 등 다양한 치료를 받았다. 잇몸 속 뿌리를 매끄럽게 다듬는 과정에서 치과 조명 아래 벌린 입은 전장 같았다. 금속이 스칠 때마다 고통이 번졌고,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레진 치료까지 마쳤지만 시림은 가시지 않았다. 마음 한쪽에서는 과잉 진료가 아니었을까 하는 의심이 고개를 들었고, 의료 소송까지 떠올렸다.


그러나 시술 중의 한 장면이 그 생각을 멈추게 했다. 외마디 신음을 삼키던 내 손등을 조심스레 토닥이던 손, “조금만 참으세요. 거의 다 됐어요.” 딸 또래였을 그 치과위생사의 목소리와 손길이 뜻밖의 위로가 되어 마음속 깊이 스며들었다. 그 순간 이후로 불만과 의심은 서서히 가라앉았다. 병원은 무상으로 추가 치료를 해주었고, 여름이 오기 전 시림은 사라졌다.


얼마 전, 구운 돼지고기를 먹다가 오돌뼈를 잘못 씹어 이가 반절이나 깨져 나갔고, 곧바로 신경 치료와 보철 시술을 받아야 했다. 남은 복지포인트 60만 원이 털렸다. 순간, 혹시 그때의 치료 때문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스쳤지만, 치과위생사의 위로가 떠올라 더 묻지 않기로 했다. 환자의 불안을 달래려는 그 치과위생사의 태도는, 불만을 자연스럽게 가라앉혔다.


예전, 구청에서 인허가 업무를 할 때를 떠올린다. 그때는 규정과 절차만 설명하며 원칙을 지키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만약 그 시절에 치과위생사의 위로를 먼저 경험했더라면, 민원인의 답답함이 느껴질 때 잠시 말을 멈추고 그 마음부터 헤아렸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그래도 이렇게 챙겨주셔서 고맙습니다' 하고 돌아서는 모습을 더 자주 볼 수 있었을 텐데.


내 손등을 토닥이던 그 작은 손길처럼, 마음을 먼저 어루만지는 것이 지닌 힘을 그때는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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