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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한 침묵 뒤에 숨겨진 무게

by 박계장

지난해 12월, 거리마다 징글벨 소리가 성급하게 울리던 무렵이었다. 연말 행사 장소를 물색하려 들른 대형 음식점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 그는 그곳의 총책임자였다. 잘 다려진 셔츠 깃처럼 말과 행동에 군더더기가 없었고, 일 처리는 매끄러웠다.


나는 예산 문제로 속을 끓이고 있었다. 행사비를 조금이라도 줄여야 했는데,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때 그가 먼저 정적을 깼다.


"저희가 먼저 제안하겠습니다. 전체 금액에서 10%를 덜어낸 금액으로 진행하면 어떻겠습니까?"


놀랍게도 내가 속으로 고심하던 액수와 정확히 일치했다. 나는 주머니 속 지갑을 만지작거리던 손을 멈췄다. 고수는 칼을 뽑기 전에 상대를 제압한다고 했던가. 그는 내가 난처함을 꺼내 보이기도 전에, 먼저 칼집에 손을 대고 배려라는 칼자루를 내밀었다. 힘이 느껴지는 단정한 사람, 말투에도 반듯함이 서려 있는 사람. 겉으로 보기에 그의 세상은 모든 것이 제자리에 놓여 있는, 완벽한 정물화 같았다.


며칠 뒤, 고단한 퇴근길 지하철이었다. 덜컹거리는 차창에 기대어 무심코 휴대전화를 열었다가 우연히 메신저에 뜬 그의 프로필 사진을 보게 되었다.


활시위를 팽팽하게 당기는 순간, 땀 맺힌 등산복 차림으로 오른 산길의 풍경이 이어졌다. 그러다 한 장의 사진에서 시선이 오래 머물렀다. 아내,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찍은 가족사진이었다. 프레임 밖으로 웃음소리가 들릴 듯 환한 빛깔이 스며 있는 장면이었다.


사진을 가만히 확대해 보았다. 아이들 중 한 명의 얼굴 오른쪽 절반에, 엎지른 와인처럼 붉은 반점이 도드라져 있었다. 하지만 밝은 회색 렌즈 너머 아이의 표정은 그 붉은 얼룩마저 꽃잎처럼 보이게 할 만큼 해맑았다.

내 눈을 사로잡은 건 아이가 아니라, 그 아이의 어깨를 감싸 쥔 그의 굵은 팔뚝이었다. 사진 속 그의 손길은 단순히 포즈를 취하는 것이 아니었다. 세상의 어떤 시선이나 편견도 뚫고 들어오지 못하게 하겠다는 듯, 견고하고 단단하게 아이를 지탱하고 있었다.


그 순간, 음식점에서 느꼈던 그의 '반듯함'이 다르게 읽혔다. 겉으로 보이는 완벽한 매너와 흐트러짐 없는 태도는, 어쩌면 이 특별한 삶을 지키기 위해 그가 쌓아 올린 유능한 성벽이었을지도 모른다. 가장 깊은 사정을 품기 위해, 그는 세상 밖에서 가장 단단한 갑옷을 입어야 했을 것이다.


그 붉은 반점을 가진 아이는 그에게 내려진 가장 무거운 짐인 동시에, 가장 따뜻한 선물이었으리라. 그 작은 존재가 그를 강한 아버지로, 빈틈없는 사회인으로, 그리고 기꺼이 희생하는 한 인간으로 단련시켰을 테니까.

흔들리는 지하철 안, 나는 휴대전화를 덮으며 창밖의 어둠을 응시했다. 문득 중년이라는 나이의 무게가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우리는 모두 '규칙과 질서'라는 사회적 의무를 수행하며, 딱딱하게 굳은 일상 속에서 인간의 온기를 잃지 않으려 발버둥 친다.


음식점에서 만난 그처럼, 말끔한 정장과 직함 아래 우리 모두는 보이지 않는 사연 하나쯤은 품고 살아간다. 누군가는 타인의 날 선 말을 묵묵히 삼켜내고, 누군가는 가족의 한숨을 남몰래 주워 담으며, 그렇게 오십을 앞둔 시간을 건너고 있다.


이제는 알 것 같다. 사람을 지탱하는 것은 눈에 보이는 화려한 성과나 실적이 아니라는 것을.


삶은 보이지 않는 것들로 더 가득 차 있다. 겉으로는 알 수 없는 저마다의 사정, 퇴근길 어깨를 짓누르는 책임감, 그리고 그 무게를 견디게 해주는 가족의 웃음 같은 것들 말이다.


그날 이후, 나는 누군가를 마주할 때면 그의 말보다 그 뒤에 숨겨진 마음의 결을 먼저 헤아리려 노력한다. 우리가 서로에게 보여주는 얼굴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니까. 지하철 출구를 나서며 옷깃을 여민다.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지만, 춥지 않다. 보이지 않는 무게가 나를, 그리고 우리를 단단하게 지탱하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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