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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남공원의 반공일(半空日)

흑백의 시대를 견디게 한 회색빛 위로

by 박계장

이따금 계절이 뒷걸음질 치는 날이 있다. 며칠간 이어진 이상 고온이 무색하게 제법 날 선 겨울바람이 옷깃을 파고들었다. 전북 완주에서 열 달을 동고동락했던 동기 열한 명이 부산을 찾았다. 기장 용궁사에서 시작해 아난티 호텔로 이어지는 해안 산책로. 파도 소리가 굵어질 때마다 지난한 세월을 섞어 뱉는 중년들의 말소리가 흩어졌다 모이기를 반복했다.


갯바위 너머 검푸른 물결 사이로 검은 고무옷이 불쑥 솟구쳤다. 해녀였다. 밖에서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차고 깊을 물속으로 그는 미끄러지듯 사라졌다. 한참 동안 수면 위에는 아무런 파동이 없었다. 바위 틈 전복 하나를 찾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바닥을 더듬어 삶을 건져 올리는 중인지 알 수 없는 긴 잠행. 마침내 그가 수면을 뚫고 올라와 “호오이-” 하고 거친 숨비소리를 토해냈을 때, 비릿한 바다 내음이 30년의 시간을 단숨에 건너뛰어 코끝을 찔렀다. 1990년대 초반, 부산 서구 암남공원의 자갈밭 냄새였다.


그 시절 서구청 위생과 사무실에는 늘 매캐한 담배 연기와 팽팽한 긴장이 엉겨 있었다. ‘범죄와의 전쟁’ 선포로 자정이면 모든 유흥업소가 셔터를 내려야 했던, 국가가 국민의 취기마저 통제하던 시절이었다. 사무실 풍경은 기형적이었다. 한쪽에는 넥타이를 매고 펜을 굴리는 행정직들이, 다른 한쪽에는 거친 단속 현장을 제압할 점퍼 차림의 무도(武道) 특채 요원들이 앉아 있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원칙은 희미했다. 시간이 갈수록 무도 실력과는 무관한, 알음알음 인맥을 타고 들어온 이들이 슬그머니 그 자리를 채우기 시작했다. 어느 구에서는 구청장 부속실의 상용직 여직원이 야간 대학 식품영양과 졸업장 하나를 명분 삼아 하루아침에 별정 8급 공무원으로 둔갑해 내려오기도 했다. 유단자와 비전문가, 정규직과 낙하산이 뒤엉킨 그곳은 행정 조직이라기보다 기묘한 잡탕에 가까웠다. 펜과 주먹, 그리고 ‘빽’이 한 공간에서 서로 다른 공기를 들이마셨다. 갓 임용된 스물두 살의 나는 그 이질적인 공기 속에서 늘 어깨가 굳어 있었다.


당시 선배였던 김 주무관의 손에는 교통경찰이 쓸 법한 묵직한 플라스틱 받침대가 들려 있었다. 그 위에는 뒷면에 시커먼 먹지가 붙은 위생단속 확인서가 철제 집게에 물려 있었다. 볼펜으로 꾹꾹 눌러 쓰면 뒷장까지 선명하게 검은 자국이 배겨 나오는 그 문서는, 수정이 불가능한 일종의 선고문이었다. 관용 봉고차에서 그 서류판을 옆구리에 끼고 내리면 상인들은 썰물처럼 흩어졌다. 우리는 쫓고 그들은 달아났다. 먹지처럼 시커먼 감정들이 매일 가슴에 눌러박히던 나날이었다.


숨통이 트이는 건 토요일 오후 1시였다. 오전 근무만 하는 ‘반공일(半空日)’. 반은 비어 있다는 그 이름처럼, 우리는 그제야 관(官)의 무게를 반쯤 내려놓을 수 있었다. 업무가 끝나면 우리는 관용차 키를 반납하고 청사 앞에서 택시를 잡았다.


“기사 양반, 송도 암남공원 입구로 가입시더.”


목적지는 아이러니하게도 평소 우리의 순찰근무 지역이자 종종 단속을 나가던 그곳이었다. 군사보호구역 철조망이 쳐진 해안가, 갯바위 틈새에 위태롭게 자리 잡은 무허가 천막. 법대로라면 당장 철거 계고장을 붙여야 마땅할 그 불법의 현장이 우리의 비밀 아지트였다. 단속하는 자가 단속받아야 할 곳으로 숨어드는 모순. 어쩌면 우리는 법과 원칙이 닿지 않는 ‘치외법권’이 절실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갯바위를 타고 넘어가면, 해녀 할매는 단속을 피해 바다로 뛰어드는 대신 젖은 고무장갑을 낀 손을 흔들었다.


“김 주무님 오셨능교. 얼른 앉으이소.”


물기가 채 마르지 않은 고무옷 차림 그대로였다. 365일 자연산만 취급한다는 것을 몸으로 증명하려는 듯 할매는 좀처럼 작업복을 벗지 않았다. 우리는 서류 뭉치 대신 주머니에서 낡은 지갑을 꺼내 보였다.


“할매요, 오늘은 딱지 안 끊습니더. 얼른 한 사라 썰어주이소.”


주무관이 거친 자갈밭에 털썩 주저앉았다. 할매는 찌그러진 양은 ‘오봉’을 머리에 이고 다가왔다. 쟁반 위에는 멍게와 해삼, 오독오독 씹히는 고동이 가득했다. 우리는 그것이 새벽 자갈치 시장에서 떼어 온 물건임을 알았다. 진짜 자연산이라면 이 가격에 이만큼 담길 리 없다는 것도 알았다. 하지만 우리는 굳이 ‘자연산’이라 불러주며 젓가락을 들었다. 그것은 일종의 암묵적인 합의였다. 고단한 당신이나, 당신을 쫓아야 하는 우리나, 이 자갈밭 위에서만큼은 서로의 흠결을 모른 척해주자는 약속. 진짜와 가짜를 따지는 날 선 시선 대신, 적당히 속아 넘어가는 투박한 연대가 그곳에 있었다.


차가운 바닷바람을 맞으며 종이컵에 미지근한 소주를 따랐다. 목을 타고 넘어가는 액체는 알싸하고 달았다. 머리 위 군 경비 초소에는 적막이 흘렀고, 발아래에는 파도가 몽돌을 굴리는 소리만 요란했다. 김 주무관이 내 잔을 채우며 말했다.


“박 주사, 마시라. 평일엔 죽어라 쫓아댕기더라도, 주말엔 우리도 숨 좀 쉬어야 안 되겠나. 사람 사는 게 다 이런 기라.”


엄격한 법규와 먹지 서류를 관청 책상에 유예해 두고 온 시간. 파도는 끊임없이 밀려와 갯바위의 틈새를 메웠다가 빠져나갔다. 그 순간만큼은 내가 공무원인지, 그저 바다를 보러 온 청년인지 구분할 필요가 없었다. 흑백이 분명해야 하는 세상에서 도망쳐 나온 회색지대. 그 흐릿한 경계선 위에서 우리는 비로소 살아있는 표정을 지었다.


암남공원에는 이제 반듯한 공영주차장이 들어섰고, 공무원들은 점퍼 대신 말끔한 정장을 입고 태블릿 PC로 투명하게 행정을 처리한다. 모든 기록은 디지털로 남아 수정할 수도, 숨길 수도 없다. 세상은 ‘무균실’처럼 매끄럽고 합리적으로 변했다. 철조망 옆 바위 틈에서 실랑이하던 할매도, 그 갯바위에 앉아 소주를 털어 넣던 공무원들의 객기도 이제는 용납되지 않는 전설이 되었다.


깨끗해진 세상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가끔은 숨이 막힌다. 모든 것이 투명하게 들여다보이는 이 세상에는, 서로의 고단함을 묵인해주며 잠시 쉬어갈 그늘이 없다. 합법과 불법의 경계가 모호했지만, 사람 냄새가 섞여 진동하던 그 시절의 비릿한 공기가 사무치게 그리운 건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바다 저 멀리, 자맥질을 마친 해녀가 물 밖으로 고개를 내민다. 후우, 하고 내뱉는 그 길고 거친 숨비소리가 파도 소리에 섞여 흩어졌다. 마치 우리가 그 시절 자갈밭에 두고 온 날 것의 숨소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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