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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은 골목을 기억한다

by 박계장

고등학교에 입학할 무렵까지, 나는 부산 용호동에서 살았다. 부산의 신발공장, 합판공장 그리고 교통부 조선방직으로 대표되는 섬유공장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모여 살던 곳이었다. 우리가 살던 곳은 행정구역상 용호3동이었고, 인근의 용호2동에는 오륙도를 내려다보는 바다 풍경이 기가 막힌 곳에 '용호농장'이 있었다.

어른들은 그곳을 '문촌'이라 불렀다.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나병을 뜻하는 사투리 '문디'에서 비롯된 말일 것이다. 일제강점기 시절, 나환자들이 강제로 격리되어 이 마을에 모여 살게 되었다고 한다. 사람들의 불안감과 차별이 그들을 자꾸만 바깥으로 내몰았고, 결국 바다 앞 언덕배기에 그들의 거처가 마련되었다.

그곳에 살던 사람들은 병이 완치된 음성 환자들이었다. 감염의 우려는 없었지만, 일그러진 육신이 사람들의 편견을 피할 수는 없었고, 스스로도 사람들 앞에 나서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게 용호농장은, 아니 문촌은, 조용히 바닷가 끝자락에 자리를 잡았다.


어린 시절, 나는 그 마을이 괜히 무서웠다. 어른들이 전하던 괴상한 이야기들 때문이었다. 나환자가 아이를 잡아다 약을 만든다는 터무니없는 소문이 돌았고, 어린 마음에는 그것이 사실처럼 들렸다. 그 무서움은 무지와 편견이 만든 감정이었음을 훗날이 되어서야 깨달았다.


집에서 높지 않은 산을 하나 넘어 이기대를 거쳐 용호농장 앞 바닷가로 수영을 하러 다녔다. 그곳 바닷가에서 언덕을 올려다보면 농장마을이 보였다. 산비탈을 따라 층층이 붙은 집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고, 회색 슬레이트 지붕 사이로, 집집마다 걸린 빨랫줄이 골목을 가로질렀다. 굴뚝에서는 가느다란 연기가 오르고, 지붕에 덧댄 녹슨 양철판이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였다. 오래된 것들이 햇살 아래에서 잠시 빛을 내는 풍경이었다. 좁은 골목 사이로는 비릿한 미역냄새가 묻은 바닷바람이 올라와 마을을 훑었다.


용호농장에서 쌍란과 오리알을 사서 우리 동네까지 들고와 파는 할머니가 있었다. 양은 바구니에 알을 조심스레 담고, 머리에 이고 이 마을 저 마을로 다녔다. 지금 생각하면 불편하고 힘들었을 법한데도, 할머니는 늘 말끔한 한복 차림이었다. 한 시간도 넘게 걸리는 길을 묵묵히 걸어와 집집마다 그것을 팔았다. 우리는 어려운 형편에 일반 계란보다 비싼 쌍란이나 오리알은 엄두도 내지 못했지만, 우리가 세 들어 살던 집 주인아주머니가 그 할머니의 단골이라 가끔 얻어먹을 수 있었다.


쌍란이 식탁에 오르는 날이면 마치 명절처럼 특별했다. 저녁때 부엌에서 들려오는 후라이팬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노른자 두 개가 나란히 담긴 쌍란 후라이 두세 개가 접시 위에 놓이는 모습은 마치 금메달을 두 개씩 딴 듯한 기분을 선사했다. 그렇게 맞이한 저녁 시간은 그날의 모든 피로를 잊게 했다. 흔치 않은 쌍란 후라이를 먹는 날은 다른 반찬이 변변치 않아도 밥이 잘 넘어갔다. 두 개의 노른자가 주는 풍요로움은 우리 삶의 작은 행운이었다.


요즘은 계란도 배달로 사 먹는다. 계란이 깨지지 않게 충격 방지 포장을 하고, 완충재로 틈을 메우지만, 그래도 가끔은 금이 가 있기도 하고 아예 깨진 채 배달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떠오른다. 머리에 양은 바구니를 이고 다니던 그 할머니의 조심성과 정성, 어떻게 그렇게 다니면서도 알 하나 깨지지 않게 했을까.

오리알은 계란보다 껍질이 단단하고 색도 조금 더 탁했지만, 특유의 깊은 맛이 있었다. 약간 비린 향이 섞여 호불호가 갈렸고, 어떤 이는 고개를 돌렸지만, 나는 그 고소함을 오래 기억하고 있다.

용호농장이 있던 자리는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그 위에는 고층 아파트 '오륙도 SK뷰'가 들어섰다. 그곳 어딘가에서 바다를 바라보면, 여전히 오륙도가 다섯 조각으로 흩어진 듯 떠 있을 것이다. 바람이 불면 물결이 천천히 밀려오고, 햇살은 수면 위에서 조용히 부서질 것이다.


언덕배기를 따라 다닥다닥 붙어 있던 집들과 좁은 골목, 슬레이트 지붕 아래에서 이어지던 하루의 풍경은 이제 사라지고 없다. 그 자리는 조용한 아파트 단지와 정돈된 길로 바뀌었지만, 간혹 나는 그들이 어디로 갔을지 궁금해진다. 편견과 소외 속에서도 자신들의 삶을 꿋꿋이 이어가던 그들은, 또 어디에서 새로운 터전을 마련했을까.


세상의 변화와 발전 속에서, 누군가의 삶은 지워지고 누군가의 삶은 새로 쓰여진다. 아파트가 들어선 자리에 살았던 이들의 손때 묻은 골목길과 작은 창문들, 바다를 향해 열린 작은 뒤뜰과 그 뒤뜰에서 말리던 미역과 김의 향기는 이제 기억 속에만 남아있다.


양은 바구니를 머리에 이고, 알 하나하나를 조심스럽게 담아 걸음을 옮기던 할머니. 그 손길에는 계란을 안전하게 전하려는 조심성과 성실함이 담겨 있었다. 알이 깨지지 않도록 살피며 담고, 먼 길을 걸어 배달하는 일은 그저 일상이었지만, 꾸준함과 정직함이 자연스럽게 배어 있었다.


나는 그 마을에 살던 이들이 어디에서든 따뜻한 보금자리를 찾았기를, 그들이 또 다른 바다가 보이는 언덕배기에서 평온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기를 바란다. 비록 사람들로부터 소외되고 거리를 두던 이들이었지만, 그들의 삶의 무게와 가치는 누구와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바람은 골목을 기억한다. 그리고 그 바람은 지금도 어딘가에서 그들의 빨랫줄 사이를 지나고, 좁은 창문 틈으로 스며들고, 낡은 지붕 위를 쓸고 지나가고 있을 것이다. 세상이 그들을 잊어도,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여전히 그들의 숨결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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