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생활을 하며 수많은 사업계획, 보고서를 작성해 왔다. 그중 유독 기억에 오래 남는 사업계획 작성 관련 일화가 있다. 단지 내용 때문이 아니라, 그 문서를 둘러싼 상황과 감정, 그리고 그 일을 통해 내가 배운 것 때문이다.
어느 날, 우리 부서의 '중요 정책 추진 방안'을 마련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꽤나 큰 과제였다. 단순히 몇 가지 실적을 정리하는 수준이 아니라, 향후 시가 나아갈 방향을 담아야 하는 전략 문서였다. 처음에는 부담스러웠지만, 이 기회를 통해 뭔가 의미 있는 기획을 해보자는 마음이 들었다. 선진 사례들을 찾고, 관련 지표를 정리하며, 전문가들에게 조언을 구하고, 늦은 밤까지 책상 앞에 앉아 문서를 다듬었다. 그렇게 정성을 들여 만든 계획서를 팀장과 과장의 결재를 받아 국장에게 올렸다. 마음 한편엔 작은 기대도 있었다. "고생했다." 한마디를.
하지만 국장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팀장과 함께 들어간 대면 보고 자리에서의 조목조목 비난이었다.
"이래 갖고 우찌 들고 가겠노? 수준이 이래가 되겄나? 어잉."
"근거는 이게 뭐꼬, 어디서 긁어왔노. 그냥 자료를 모은 거네. SWOT 분석은 했나?"
처음에는 멍했다. 내리꽂히는 말들 앞에서 입이 떨어지지 않았고, 머릿속은 하얗게 비워진 듯했다. 고개를 숙인 채 침묵했다. 업무와 관련해 수용이 되는 상사의 지적은 부끄러운 마음이 먼저 든다. 자존심이 상하더라도 그것은 내 한계를 마주하는 성장의 과정이라 여기며 수긍하게 된다.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불을 밝혀가며 정성들인 보고서였다. 꼼꼼하게 모은 통계와 사례들, 전문가 의견까지. 그 모든 노력이 한순간에 '수준 미달'로 매도되는 과정에서 나를 덮친 감정은 선을 넘은 무례한 질책에 대한 억울함과 반발심이었다. 보고서에 완벽한 정답은 없다. 그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애쓸 뿐이다. 상사라면 부족한 부분을 짚어주되, 함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에서 흘러나온 것은 날카로운 비판뿐, 어떤 건설적인 대안도 찾아볼 수 없었다. "더 나은 안을 만들라"는 주문만 반복될 뿐, 정작 어떤 길로 가야 할지는 한 마디도 없었다. 그렇게 반려와 질책만이 끝없이 이어졌다.
더욱 납득하기 어려웠던 것은, 그 자리에 함께 앉아 있던 팀장을 포함한 중간 결재자들에 대한 그의 태도였다. 그가 내게 던진 말은 곧, 그들 역시 형편없는 보고서에 사인을 하고 동조한 셈이라는 의미가 되었다. 자신의 부하직원들이라 해도, 최소한의 예의와 책임 있는 태도는 지켜야 하는 법이다. 결재한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보고서를 평가절하하는 것은, 단지 실무자를 질책하는 차원을 넘어 결재라인 전체를 부정하는 행위인 것이다.
팀장, 과장과 머리를 맞대고 보고서를 다시 고쳐 올렸지만 결과는 같았다. "참신하지 않다. 혁신적이지 않다.", "실현 가능성이 없다."는 막연한 말만 반복되었다. 결국 중간 결재자들의 분위기 마저 변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격려하던 팀장도,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던 과장도 이제는 외려 내게 짜증을 내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렇게 나는 혼자가 되었다. 매번 반려되는 보고서, 방향 없이 떠도는 수정 작업, 정작 무엇을 원하는지도 알 수 없는 상사의 말들 속에서 나는 점점 지쳐갔다. 결국 그 보고서는 국장의 결재없이 보고되었고 보고가 지연된 것에 대한 가벼운 지책이 있었지만 별다른 피드백도, 향후 거창한 사업추진도 없이 유야무야 되었다. 그럴 것을, 그런 것을 가지고 그 난리였다.
그 시기를 지나며 나는 내 안에서 작게 금이 가는 소리를 들었다. 자존감은 서서히 무너졌고, 일에 대한 의욕은 희미해졌다. 퇴근길 버스 창에 비친 내 얼굴은 어딘가 낯설기까지 했다. 나는 그때 비로소 깨달았다. 상사의 무책임한 태도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은, 조직이 그런 무책임을 방관하거나 묵인하는 구조라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 어둠 속에서도 하나의 물음이 자꾸 나를 따라다녔다. 내가 그 자리에 서게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반대로 상상해 보았다. 내가 팀장이 되고, 과장이 되고, 언젠가 국장이 되는 날이 온다면 그때 나는 어떤 상사가 되어야 할까. 결재란 단지 싸인을 하는 행위가 아니라, 하나의 판단이자 책임이며, 조직의 방향을 함께 고민하는 행위여야 한다.
공문서 한 장, 결재안 하나가 누군가의 하루를 바꾸고, 때로는 인생의 물줄기를 바꿀 수도 있다. 실무자가 책상 앞에서 고민하고 정성 들여 만든 한 줄의 문장이, 누군가에겐 절실한 희망이고 간절한 바람일 수 있다. 그런 마음을 품고 일하는 이의 노력을 꺾기보다는, 그 진심에 힘을 실어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리더가 해야 할 일이다.
특히 결재의 순간은 리더십의 진면목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단순히 '승인'과 '반려'를 구분짓는 것이 아니라, 실무자에게 방향을 제시하고, 필요하다면 조정하고, 때로는 보호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실무자가 준비한 안을 보며 "이게 뭐냐"고 말하는 대신, "이 부분은 이런 방향도 고려하자"라고 말해주는 사람. 그게 리더일 것이다.
공직생활 중 내가 겪은 최악의 상사를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대안도 없고 방향 제시도 없이 비난만 일삼던 그 국장을 든다. 그가 퇴직하고 내가 사무관으로 승진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가 축하 전화를 한 적이 있다. 그의 반가워하는 목소리, 마치 과거의 일들이 전혀 없었던 것처럼 너스레를 떠는 태도가 낯설게만 느껴졌다.
"축하한데이. 앞으로 승승장구 하거레이.“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그의 말에 나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그는 모든 것을 잊었거나, 혹은 자신의 행동이 지극히 정당했다고 믿고 있을지도 모른다. 마치 자신은 그저 공직자로서의 책임을 다했을 뿐이라는 듯, 내가 감정이 상했다면 그건 오히려 내 인성의 문제라는 듯, 당당하게 말을 이어가는 그의 목소리에서 나는 그때의 그 차갑던 순간들을 다시 마주하고 있었다.
손에 든 수화기가 묵직하게 느껴졌다. 나는 담담히 "감사합니다"라는 형식적인 인사만을 건넸다. 전화를 끊자마자 창문을 열어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겨울바람이 뺨을 스쳤다. 이상하게도 화가 나지는 않았다. 다만 마음 한구석에 품었던 작은 다짐이 더욱 단단해지는 것을 느꼈다. 언젠가 내가 결재권자가 된다면, 결코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 실무자의 마음을 짓누르지 않고, 그 노력을 제대로 들여다보고 함께 방향을 찾는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이었다.
그와의 통화가 끝나고 조금 시간이 흘렀을 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 국장은 왜 그랬을까? 왜 매번 그 결재안에 대해 반려하고, 비아냥대듯 말하며, 대안도 없이 실무자를 몰아세웠을까?
가만히 떠올려보니, 그는 책임을 지고 싶지 않았던 사람 같았다. 결재란 결국 자신의 이름을 걸고 판단을 내리는 일인데, 혹시라도 최종 보고에서 문제가 생기면 자신이 곤란해질까 봐 계속 반려하며 시간을 끌었던 건 아닐까. 실무진에게 책임을 넘기기 위한 방어 본능이 작동한 건지도 모르겠다.
'내가 그랬잖아. 애초에 너희가 이상한 안건을 올린 거라고.' 그렇게 말할 여지를 남겨두기 위해, 일부러 결정하지 않고 거리 두기를 택했는지도 모른다.
그 방식이 옳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어쩌면 그는 그 나름대로 버티고 있었던 건 아닐까 싶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태도가 정당해지는 건 아니지만, 그 나름대로도 버티고 있었던 것 같다. 상황을 통제하려는 습관, 그리고 어쩌면 내색 못한 불안감. 나보다 높은 자리에 있었지만, 마음속에선 나와 다를 바 없는 불안과 책임의 무게를 지고 있었던 사람일 수도 있다.
그를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이해하려고 한 그 시도만으로도 나는 조금 더 자유로워졌다. 억울함이 조금씩 가라앉았고, 대신 내가 지켜야 할 자세가 더 또렷해졌다. 이제 내 곁에서 보고서의 내용을 설명하는 직원들을 바라본다. 그들의 눈빛에서 내가 초년 시절 가졌던 것과 같은 열정과 두려움, 기대와 불안이 오롯이 비친다. 보고서에 부족한 점이 있을 때면, 나는 "이런 방향으로 접근해 보면 어떨까요?"라고 조용히 제안한다. 때로는 직접 초안을 작성해 보이기도 한다. 완벽한 결과물을 일방적으로 요구하기보다는,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으며 함께 완성도를 높여가는 과정을 중요시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조금씩 성장해가는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나에게는 보람이다.
공직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다. 조직은 문서로 움직이지만, 사람은 마음으로 움직인다. 세월이 흘러 나 역시 결재를 하는 자리에 섰지만, 그때 받은 상처는 여전히 마음속에 남아 있다. 그래서 더 조심하려 한다. 내 말 한마디로 누군가의 자존심이 상하지 않도록, 누군가의 열정이 꺾이지 않도록. 때로는 앞서 끌기보다 곁에서 함께 걷고, 가르치기보다 스스로 깨닫게 돕는 리더가 되어야 겠다고 다짐해 본다..
그리고 무엇보다,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지 않는 용기를 잃지 않으려 한다. 실무자의 노력을 헛되이 만드는 결재권자의 무책임함, 조직 안에 만연한 침묵과 방관, 상식이 뒤집힌 결정 앞에서 외면하는 시선들. 그런 순간들을 ‘못 본 척’하지 않는 것. 그 용기가 공직을 조금 더 사람답게 만드는 시작이 된다고 믿는다.
그것이 그 시절, 내가 받은 상처에서 얻은 가장 단단한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