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이 아니어도 나로서 살아가기

속도를 줄이고, 삶의 방향을 다시 묻다.

by 박계장

퇴직까지 5년 7개월이 남았다. 공로연수 1년을 제외하면 실제로 일할 수 있는 시간은 그보다 짧다. 누군가는 “아직 많이 남았네”라고 말하지만, 내게는 그렇지 않다. 하루가 훌쩍 지나가고, 계절도 머뭇거림 없이 바뀐다. 그러다 보면 남은 시간 또한 순식간에 흘러갈 것만 같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지?’라는 물음이 요즘 자주 떠오른다. 이제는 정년퇴직이 먼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요즘은 나와 비슷한 나이의 동료들과 퇴직 이후의 삶에 대해 자주 이야기한다. 어떤 사람은 다시 일할 준비를 하고, 어떤 사람은 여행이나 여가를 생각한다. 각자의 계획은 다르지만, 뚜렷하게 말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모두 고민은 하고 있지만,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모습은 비슷하다. 앞으로의 시간이 아직은 낯설고, 그래서 더 신중하게 다가가게 된다.


어제 퇴근길에 시청 근처의 가성비가 좋다는 한 횟집에서 가까운 동료들과 소주잔을 기울이며 하루를 정리하고 적당히 달아오른 기분으로 지하철역을 향해 걷던 중, 몇 해 전 퇴직한 선배 한 분과 우연히 마주쳤다. 길가 허름한 실내포차 안쪽 테이블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 모습을 내가 먼저 발견했다. 문이 덜 닫혀 있어 안쪽이 훤히 보였고, 나를 본 그가 손을 들어 반갑게 불렀다.


예상치 못한 만남이었다. 그와는 재직 시절에도 자주 어울렸고, 퇴직 후에도 간간이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다. 나는 가볍게 인사만 하고 지나치려 했지만, 그의 강권에 못 이겨 결국 합석했다.


같이 있던 일행은 올해 여든넷이라고 했다. 믿기 어려울 만큼 정정한 모습이었다. 허리도 꼿꼿했고, 이미 소주 몇 병이 비워진 채였다. 나는 저 나이에 저렇게 웃으며 술을 마실 수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선배는 지금 복지시설의 기관장으로 일하고 있다. 퇴직 후에도 매달 500만 원가량의 급여에 더해 300만 원 정도의 연금이 있으니, 경제적으로는 퇴직 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수준일 것이다. 나는 그가 부러웠다. 자리를 잡은 듯 보이는 그 모습이, 언젠가의 내 미래이길 바라는 마음이 들었다.


아침이면 출근하자마자 시청 행정포털의 언론모니터 게시판을 연다. 공보담당관실에서 정리한 시정 관련 기사들을 빠르게 훑어보는 것이 일과의 시작이다. 오늘은 별다른 이슈가 없었다.
그런데 한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최근 발표된 조사에 따르면, 지역에 따라 건강수명이 최대 10년 가까이 차이가 난다고 한다. 경기도 과천은 74세, 부산 영도는 64세로 나타났는데, 같은 나라 안에서도 얼마나 다른 삶을 살아가는지를 보여주는 숫자다. 우리는 같은 시간을 살고 있다고 믿지만, 그 시간이 누구에게는 짧고, 누구에게는 다르게 흐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15층에 근무하는 친구와 아침 커피를 마셨다. 커피 향이 퍼지는 틈에, 조간신문에서 본 기사를 이야기했다.

“결국, 부산에 살면 퇴직하고 4년쯤 지나면 몸이 따라주지 않을 수도 있다는 얘기 아니겠어.” 우리는 웃으며 말했지만, 그 말의 여운은 생각보다 오래 남았다.


요즘은 누구나 100세 시대를 말한다. 하지만 과연 그 시간이 모두 의미 있는 시간일까. 건강하지 못한 백세라면, 길어진 삶은 선물이 아니라 짐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퇴직 후에도 다시 일을 시작하는 것이 옳은 걸까. 아니면 여유가 있을 때, 하고 싶은 일을 미루지 않고 해 보는 것이 더 나은 길일까.


부모님을 보면, 그 답이 조금은 보인다. 일상은 유지하시지만, 무릎이 좋지 않아 오르막길이나 장거리 외출은 어렵다. 혈압약과 당뇨약을 챙기며 하루를 시작하신다. 몇 해 전, 부모님을 모시고 일본으로 여행을 간 적이 있다. 걷는 일정이 많아서, 부모님은 제대로 따라오시지 못했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것이 내 미래의 예고편처럼 느껴진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흐르지만, 그 시간을 어떻게 채우느냐는 각자의 몫이다. 정답은 없지만, 하나는 분명하다. 앞으로의 시간은 ‘해야 할 일’보다 ‘하고 싶은 일’로 채워야 한다는 것.

젊은 시절은 늘 다음을 위한 준비였다. 지금까지의 삶도 그 준비의 연장선에 있다. 그러나 퇴직 이후의 시간만큼은 달라야 한다. 그냥 흘러가는 시간을 바라볼 수는 없다. 내가 걸어갈 속도와 방향을, 이제는 내가 정해야 한다.


어떤 삶이 옳은지는 여전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그 선택은, 내 의지에서 비롯되어야 한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다시 일터로 나가게 될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경제활동은 아니더라도,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일을 찾을지도 모른다. 혹은 아무런 목적 없이, 그저 부지런히 걷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 어느 길이든, 그것이 나의 선택이라면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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