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다는 건 그런 일

by 박계장

마음이 어지러운 날이면 걷는다. 집을 나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하면 복잡하게 얽혔던 생각들이 리듬을 타고 서서히 정리된다. 몸이 움직이는 동안 마음도 따라 움직여 혼란스러운 감정들이 차분히 가라앉는 경험을 하게 된다.


지난달, 커피를 마시던 후배가 뜻밖의 제안을 했다. "연휴에 같이 한번 걷는 거 어떻습니까?" 그 말에 나는 흔쾌히 동의했고, 5월의 황금 연휴가 시작되던 첫날 우리는 수영역에서 만났다. 광안리 해변에서부터 오륙도까지 해안길을 따라 걷기로 계획했다. 그날은 비가 오락가락했고, 길은 촉촉이 젖어 있었다. 우리는 결국 수영역에서 광안리까지만 걷고 발걸음을 멈췄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도 걷기의 묘미라고 서로를 위로했다.


후배는 언젠가 아내와 함께 하와이를 걷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목적은 관광이나 휴양이 아니었다. 그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낯선 땅을 발로 밟으며 시간을 채우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이었다. 하와이는 단순한 휴양지를 넘어 걷기 좋은 길들이 많은 곳이기도 하다. 후배의 말을 들으며 문득 생각했다. 우리는 왜 이렇게 걷기를 갈망하는 것일까?


어쩌면 그 답은 우리 몸에 새겨진 오래된 기억 속에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종종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내 안에 깃든 인류의 오랜 여정을 느낀다. 구석기 시대부터 우리의 조상들은 식량을 찾아, 계절을 따라 끊임없이 걸었다. 수렵과 채집을 위해 하루에도 수십 킬로미터를 이동하며 생존했다. 두 발로 서서 걷는 행위는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분 짓는 가장 근본적인 특징 중 하나가 되었다. 현대 문명이 우리를 의자에 묶어두지만, 우리의 몸은 여전히 걷기를 기억하고 갈망한다.


걷기는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역사적으로 의식과 수행의 형태로 존재해왔다. 광안리 해변을 걸으며 내 생각이 정리되었듯, 고대부터 사람들은 걸으며 생각했다. 아리스토텔레스와 그의 제자들이 아테네의 리케이온 회랑을 거닐며 철학을 논했던 '페리파토스' 전통에서부터, 동양의 선승들이 걷는 명상을 통해 깨달음을 찾아가는 방식까지. 내가 걸을 때마다 생각이 명료해지는 것처럼, 루소는 "나는 걷는 동안에만 생각할 수 있다"고 고백했다. 그의 말에 깊이 공감하는 것은, 내 자신도 복잡한 일에 부딪힐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일어나 걷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니체가 "모든 위대한 사상은 걷는 동안 떠오른다"고 말했을 때, 그것은 단순한 관찰이 아닌 경험적 진실이었을 것이다. 월든 호숫가를 걸으며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고찰했던 소로에게 "하루에 최소한 4시간을 걷지 않으면 내 건강과 정신이 메마른다"는 말은 생존의 문제였다. 이런 철학자들의 말이 내게 와닿는 이유는, 그들이 추상적 이론을 펼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몸과 마음으로 경험한 진실을 말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2000년대 후반에 제주올레길이 생기면서 걷기가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이후 지리산 둘레길, 해파랑길, 남파랑길 같은 길들이 하나둘 만들어졌다. 나도 그때 친구들과 지리산 둘레길 일부를 걸었던 기억이 있다. 조용한 길을 함께 걸으면서 평소에는 하지 못했던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때 느꼈던 자유로움과 친구들과의 소중한 시간은 지금도 내 마음속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오랜 역사를 지닌 산티아고 순례길에는 말 없는 기도와 같은 시간이 켜켜이 쌓여 있다고 한다. 정년퇴직을 하고 돌아올 비행기표도 구하지 않은 채 혼자서 그곳을 다녀온 지인은 "걷는 동안 내 안의 소음이 잦아들고, 다시 나를 찾는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나도 언젠가는 그 길을 걷고 싶다는 바람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그보다 먼저, 내 발 아래 이 땅을 걸으려 한다. 멀리 있는 매력적인 길보다 지금 내 곁에 놓인 길부터 걸어보려 한다. 남파랑길과 해파랑길, 백두대간 트레일과 DMZ 평화의 길을 차근차근, 내 힘이 닿는 만큼 걸어서 이어가려 한다. 이 땅의 해안과 산, 강과 마을을 잇는 여정은 길고 험하지만, 나는 가보지 못한 곳, 지나쳤던 곳, 그리고 잊고 살았던 곳들과 다시 만나고 싶다. 이 땅을 걷다 보면, 이 나라가 내게 조금 더 또렷하게 다가오고 내가 딛고 선 자리를 마음으로도 다시 밟는 경험이 될 것이라 믿는다.


왜 현대인들은 편리함 속에서도 걷기를 선택하는 것일까? 차를 타면 빠르고, 앉아 있으면 편한데 왜 다리를 아프게 하면서까지 걷는 길을 선택하는 것일까? 내 경험으로는 걷는다는 것은, 단순히 몸을 옮기는 것이 아니라 속도를 잠시 내려놓는 행위이다. 나에게 걷기는 삶의 속도가 너무 빨라질 때마다 스스로를 다시 찾는 방법이다. 걸을 때만큼은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나에게 집중하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지라도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다. 삶이란 결국 자신을 발견하고 잃어버리기를 반복하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걷기는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인간적인 행위가 된다. 발바닥이 땅을 누를 때마다 나는 이 세계와 맺어진 관계를 확인하게 된다.


인류학자들은 걷기가 우리의 뇌 발달과 인지 능력 향상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주장한다. 직립보행으로 두 손이 자유로워지면서 도구를 만들고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이는 뇌의 진화를 촉진했다고 한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내가 걸으며 느끼는 생각의 명료함과 창의성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현대인들이 걷기를 통해 창의적 사고력이 향상되고 스트레스가 감소하는 경험을 하는 것은 우리 유전자에 새겨진 이 고대의 기억 때문인지도 모른다.


걷는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걷는 일이 아무 의미 없는 행위도 아니다. 내가 가장 절실하게 깨달은 것은, 걸으면 내 생각과 조금 떨어져서 볼 수 있다는 사실이다. 너무 가까이 있는 생각은 뜨겁고, 너무 오래 붙잡은 감정은 무겁다. 주식 투자로 큰 손해를 봤을 때, 관계가 끝났을 때,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혼란스러울 때마다 나는 걸었다. 걷는 동안 그 생각들이 조금씩 멀어지며 마음에 여백이 생기고, 그 여백이 나를 숨 쉬게 했다.


그래서 나는 걷는다. 누구와 함께 걸어도 좋고, 혼자 걸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그 후배와 오륙도까지 다시 걸을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 그날은 날씨가 맑았으면 좋겠고, 시간도 조금 더 여유롭게 가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선배의 건강 때문에 잠시 미뤘지만 고향 무주까지 걸어서 가겠다는 선배와의 동행도 기대된다.


인생이란 것도 결국 걷는 일과 다르지 않다. 가끔은 비를 맞고, 때로는 길을 잃고, 어떤 날은 발목을 삐기도 하지만 우리는 그래도 계속 걸어간다. 목적지보다 중요한 것은 걷는 그 순간의 발걸음이다. 그 발걸음이 나의 삶을 증명하는 기록으로 남는다. 우리의 몸과 마음은 여전히 걷기의 오래된 리듬을 기억하고 있다. 그 리듬 속에서 나는 내 자신을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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