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하나, 마음 하나

by 박계장

낯을 가리는 편은 아니지만, 정이 붙기까지는 시간이 제법 걸린다. 나에게 먼저 호의를 보이는 사람이라도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할 때가 많다. 그래서인지 성격이 까다롭다는 말을 종종 듣고, 스스로도 그런 나를 인정하며 살아왔다. 가끔은 그런 내가 관계에 서툰 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관계가 어려웠던 건 아니다. 굳이 애쓰지 않아도 가까워진 사람들이 있었다. 처음부터 말이 잘 통했던 것도 아니고, 성격이 꼭 맞았던 것도 아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함께 있어도 힘이 들지 않는 사람이 있다. 어느 결에서 나와 닮아 있었던 사람, 혹은 내가 닮고 싶은 사람.


어릴 적 친구가 그랬다. 국민학교부터 함께였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마음이 통했다. 이십대, 술자리가 길어지면 그의 집에서 묵는 일이 자연스러웠다. 원양어선 기관장으로 집을 자주 비우시던 아버지 덕분에 출입이 자유로웠고, 아침이면 친구 어머니가 끓여주신 해장국 한 그릇에 속을 풀었다. 서로의 집을 드나드는 일이 전혀 낯설지 않던 시절이었다.


결혼 후, 신혼집도 같은 동네에 마련하게 되면서 관계는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작년, 그가 평택으로 직장을 옮긴 뒤로는 자주 보긴 어렵지만, 굳이 연락하지 않아도 마음은 이어져 있다. 그런 사람은, 오랜만에 만나도 어색하지 않다.


업무를 통해 알게 된 사람 중에도 어느새 마음을 열게 된 이가 있다. 그의 말에는 늘 진심이 묻어 있었고, 사람을 대하는 태도엔 조심스러운 배려가 있었다. 그게 직업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어느 순간 그에게 마음을 내주고 있었다. 집도 가까웠고, 서로 시간이 허락되면 부담없이 만나 소주 한 잔 기울일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출근한 뒤, 커피 한 잔을 나누는 후배도 있다. 성격은 나와 다르다. 외향적이고, 말도 먼저 잘 건네는 사람이다. 예전 같았으면 거리를 뒀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는 이상하게 부담스럽지 않았다. 선 넘지 않으면서도 스스럼없이 다가왔고, 아침이면 "커피 한 잔 하시죠"라는 메신저가 도착한다. 그와의 아침 커피는 하루를 시작하는 의식이 되었다.


돌이켜보니, 내게 편안함을 준건 어떤 말이나 의도적인 행동이 아니었다. 그저 자연스럽게 곁에 있어 준 그들의 존재 자체였다. 서로 다가가려 애쓰지 않았는데도 어느새 내 삶에 자리 잡은 사람들. 이런 인연이 내 마음속에 가장 오래 남는다.


함께 일했던 동료, 언젠가 말없이 손을 내밀어 준 사람, 마주칠 때마다 눈웃음으로 인사를 건네던 사람. 그런 사람들이 지금도 내 삶에 남아 있다.


새로운 인연을 애써 만들기보다는 이미 곁에 있는 이들과의 시간을 더 깊이 가꾸고 싶다. 서로의 온기가 느껴지는 관계, 그게 지금의 나에겐 가장 큰 위로다.


예전보다 조금 덜 따지고, 가끔 먼저 웃을 줄 아는 내가 되었다면 그건 자연스럽게 곁을 내어 준 그들 덕분이다. 그들이 말로 설명하진 않았지만, 행동과 태도로 보여준 지혜다. 몇 명이 곁에 있느냐보다, 어떤 사람이 내 옆에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걸, 말보다 마음이 오래 남는다는 걸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결국, 마음이 머문 자리가 삶을 더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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