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주에서 수원까지, 함께 걸어온 시간에 대하여
2024년 1월 말, 나는 전라북도 완주로 향했다. 지방자치인재개발원에서 10개월간 이어지는 중견리더과정 교육을 받기 위해서였다. 전국의 시·도와 시·군·구에서 모인 5급 사무관들이 함께하는 이 과정은, 공직 입문 후 대체로 30년 가까운 세월을 지나온 이들에게는 중견간부로서의 역량을 다시 다듬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부산을 출발해 남해고속도로를 달리고, 대전통영고속도로를 거쳐 호남고속도로로 갈아탔다. 전주를 지나 완주로 접어들수록 풍경은 점점 더 낮아지고 넓어졌다. 겨울 들녘, 추수의 흔적마저 사라진 빈 논이 끝없이 펼쳐지고, 바람에 쓸린 겨울풀들이 논두렁에 힘없이 드러누워 있었다. 메마른 흙바닥 위로 겨울 햇살이 스며들고 있었다. 차창 밖으로 스치는 풍경을 바라보며, 오래전 임용을 앞두고 친구와 함께 떠났던 경주로의 겨울 여행이 문득 떠올랐다.
코로나19로 인해 5급 승진과정 조차 비대면으로 마쳤던 터라, 완주에서의 집합교육은 오랜만에 느끼는 설렘이었다. 오랜 시간 공직에 몸담으며 잊고 지냈던 긴장과 기대가 다시 살아나는 듯했다.
교육생들은 아침마다 1시간씩 외국어 회화 수업을 들어야 했다. 중국어, 일본어, 영어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고, 나는 초급 일본어 회화를 골랐다. 오랜만에 교재를 펼치고 천천히 발음을 따라 읽는 일은, 오래전 학생 시절의 감각을 다시 깨우는 일이었다. 짧은 인사말을 더듬거리며 따라 하던 첫 수업 시간, 교실 안에는 어색한 웃음이 번지기도 했다.
이어지는 오전 강의는 지명도 있는 강사들이 쏟아내는 이야기 속에서 전문성을 조금씩 넓혀갔다. 오후가 되면 분임 활동이나 체육, 예능 프로그램이 기다리고 있었다. 강의실을 옮겨 다니며 다양한 수업에 참여하는 하루는, 마치 대학생이 된 듯한 기분을 불러일으켰다.
전국에서 모인 127명의 교육생은 여러 개의 분임으로 나뉘었고, 나는 스물한 명으로 구성된 4분임에 속했다. 살아온 지역도 다르고, 맡아온 일도 달랐지만, 긴 세월 공직에 몸담아온 경험만큼은 서로 닮아 있었다. 누군가는 서른 해를 넘겼고, 누군가는 그 언저리에 있었다. 긴 시간의 무게는 누구에게나 익숙한 것이었고, 그것이 우리 사이에 자연스레 묵직한 공감대를 만들어주었다.
함께 주어진 과제를 해결하고, 손에 쥔 맥주잔으로 밤을 지새우며 우리는 조금씩 서로의 삶에 스며들었다. 울릉도의 거센 바람을 함께 맞았고, 제주도의 드넓은 바다를 함께 바라보았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골목길을 걷던 그 시간들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 뒤에도 오래도록 마음을 묶어두었다.
교육을 수료한 뒤에도 우리는 그 인연을 흘려보내지 않기로 했다. 1년에 두 번, 각자의 지역을 돌아가며 다시 만나기로 약속했다. 그 첫 번째 모임은 초여름, 수원에서 열렸다.
수원 출신 동기생이 자신의 지역에서 첫 모임을 주선하고 싶다고 했다. 교육 기간 내내 누구보다 활기차고 열정적이던 그녀였다. 우리는 그 마음을 알기에, 기꺼이 하루 휴가를 내고 수원으로 향했다.
금요일 오전, 수원시청에 도착했다. 청사는 본청과 별관으로 나뉘어 있었고, 광장과 녹지 공간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본청은 14층 높이의 현대적 건물로, 수원시 인구 120만에 걸맞은 위용을 지니고 있었다.
우리는 어느 국장실 회의용 탁자에 둘러앉았다. 투명한 유리판 아래에는 수원시의 조직도가 깔려 있었다. 복잡하게 얽힌 선과 이름들을 따라가다 보니, 광역시의 네다섯 개 구청을 합쳐 놓은 듯한 규모가 드러났다. 숫자만으로는 다 담기지 않는 도시의 크기와 무게가, 그 한 장의 종이에 고스란히 펼쳐져 있었다.
수원시청에서는 방문을 환영하는 뜻으로 작은 선물을 준비해 두었다. 종이가방 안에는 수원시 마스코트인 청개구리 ‘푸른이’ 캐릭터가 그려진 머그컵과 정성스럽게 뜬 니트 플라워, 친환경 비누와 수세미가 담겨 있었다. 하나하나 고르고 손길을 더한 듯한 구성이었다. 단순한 기념품을 넘어선 환대의 마음이 느껴졌다.
경기도 광주의 동기생 한 명은 모임에 참석한 모두에게 주방에서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는 채소 세척 바구니를 하나씩 건넸다. 수원에서 근무하는 친구를 통해 이 선물을 준비했다고 했다. 실용적이면서도 소박한 선물 덕분에 모임의 분위기는 한층 더 따뜻해졌다.
그렇게 격한 환대를 받은 우리는 곧바로 '가보정'으로 향했다. 수원에서 손꼽히는 음식점이었다. 점심 한정 특선메뉴라지만 가격은 만만치 않았고, 커다란 왕갈비가 푸짐하게 차려졌다. 적지 않은 금액이었지만, 수원을 찾아준 동기생들에게 환영의 뜻이라며, 모임을 주선한 수원 출신 동기생이 자비로 대접을 했다. 그의 넉넉한 마음에 모두가 감동했다. 긴 여정 끝에 큰 보상을 받은 기분이었다.
가보정에서 왕갈비로 식사를 마친 뒤, 우리는 수원화성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정조대왕의 효심과 정치적 이상이 깃든 그곳은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도 흐트러짐 없는 자태를 간직하고 있었다. 높게 쌓인 성곽은 자연스레 시선을 끌었고, 쉽게 지나칠 수 없는 존재감을 지니고 있었다. 걸음을 옮길수록 닳아 반들거린 돌길과 견고하게 이어진 담장이 눈에 들어왔다.
성곽을 따라 걷다 보면 돌의 크기와 생김새에 따라 다듬어진 돌을 층층이 맞춰 올린 곳도 있었고, 자연석의 형태를 살려 틈을 최소화하며 쌓은 구간도 있었다. 각기 다른 모양의 돌들이 맞물려 이어진 성벽은 다듬어진 질서와 자연스러운 조화를 함께 보여주었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성벽을 따라 걷다 보면, 저절로 발걸음이 느려지고 시선은 자연스레 발밑으로 떨어졌다.
수원화성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세계문화유산은 원형 보존이 원칙이지만, 수원화성은 복원된 유산임에도 등재되었다. 이는 정조대왕 시절 축성 과정을 상세히 기록한 『화성성역의궤』 덕분이었다. 이 기록에 따라 구조와 재료, 건축방식까지 충실하게 복원되었고, 유네스코는 이를 근거로 원형성과 진정성이 유지된 것으로 인정했다.
한편, 수원화성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많은 부분이 파손되었고, 현재도 자료와 발굴조사를 바탕으로 복원과 정비가 계속되고 있다. 복원은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축성 당시의 모습을 최대한 정확하게 재현하려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성곽 위에 오르면 수원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멀리서는 현대식 건물들이 빼곡했지만, 성벽에 서 있는 순간만큼은 시간이 느슨하게 흘렀다. 단단히 다져진 돌과 그 위를 따라 흐르는 햇살, 그리고 발밑으로 이어진 오래된 흔적들. 수원화성은 단순한 유산이 아니라,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며 시간을 견디고 있는 하나의 기억 같았다.
이어진 일정은 광교에 있는 모구야미라는 카페였다. 유재석도 다녀갔다는 이곳은 무려 75센티미터 높이로 쌓은 파르페로 유명했다. 카페 안은 높은 천장과 자연광이 어우러져 여유로운 분위기를 자아냈고, 벽을 따라 늘어선 책장과 커다란 창문 너머로 펼쳐진 풍경은 여행의 피로를 덜어주기에 충분했다.
파르페는 생크림을 바탕으로 딸기와 과일을 층층이 덧대어 쌓은 것이었고, 그 특이한 모양만으로도 보는 재미가 있었다. 입맛에는 다소 맞지 않았지만, 이색적인 비주얼 덕분에 모두가 웃으며 사진을 남겼다. 짧은 머뭄이었지만, 그 여유로움이 여행길에 작은 휴식이 되었다.
통닭거리로 자리를 옮겼다. 오래전부터 조성된 이 거리는 이제 수원의 대표 명소가 되어 있었다. 간판마다 제각기 연륜을 자랑하는 통닭집들이 줄지어 있었고, 바삭한 튀김옷 안에 갓 튀겨낸 닭고기의 고소한 냄새가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동기생의 안내로 한 가게에 들러 지역 명물의 맛을 직접 경험해 보았다. 우리가 찾은 곳은 용성통닭이었다.
어디에나, 누가 정한 것인지 알 수 없는 3대, 5대 통닭집이 있다. 용성통닭은 수원의 3대 통닭집 중 한 나란다.
프랜차이즈 통닭집의 화려한 양념에 길들여진 입맛 탓인지, 이곳의 통닭은 예상과 달랐다. 자극적이지 않고, 슴슴하면서도 깔끔한 맛이었다. 한입 베어 물었을 때 진한 풍미 대신 은근하게 퍼지는 고소함이 입안을 채웠다. 튀김옷은 얇고 바삭했으며, 닭고기는 퍽퍽하지 않고 촉촉했다. 기름 냄새도 과하지 않아 오래 먹어도 쉽게 물리지 않았다. 부드러운 살코기 사이로 약간 퍽퍽한 부위가 섞여 있었지만, 오히려 투박한 식감이 오래된 스타일의 흔적처럼 느껴졌다.
눈에 띄게 강한 맛은 아니었지만, 씹을수록 드러나는 투박한 고소함과 소박한 정직함이 인상적이었다. 유행을 좇지 않고, 화려한 시대를 비켜가며 조용히 제자리를 지켜온 맛이었다.
용성통닭은 1978년부터 한 자리를 지켜왔다고 한다. 대단할 것도, 과시할 것도 없는 담백함이 오히려 긴 세월을 버틸 수 있었던 힘이었는지도 모른다. 순간의 유행이 아니라, 오랜 시간 쌓여온 신뢰였다. 입안에 남은 고소한 여운처럼 그 맛도 서서히, 그러나 분명하게 마음에 스며들었다.
해가 기울고 어스름이 내려앉으려는 때, 우리는 광교복합체육센터로 자리를 옮겼다. 금요일 저녁, 광교복합체육센터 안에는 하루를 마무리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수영장에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사람들이 물살을 가르고 있었다. 팔을 뻗어 물을 밀고, 발차기로 추진력을 얻으며 길게 미끄러졌다. 수영복이 물 위를 스치고 지나갈 때마다 잔잔한 파문이 일었다. 네모진 레인 사이사이로 출렁임이 번졌고, 그 위에 천장 조명이 번들거렸다. 레일 끝에선 숨을 고르며 다시 출발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간간이 보였다.
아이스링크장에는 유치원생 또래의 아이들이 아이스하키 훈련을 하고 있었다. 헬멧과 보호구를 착용한 아이들은 느릿느릿 스케이트를 밀어내며 얼음 위를 움직였다. 훈련용 장애물이 놓인 링크를 스틱을 쥔 채 그 사이를 조심스럽게 빠져나갔다. 퍽을 쫓아 스틱을 뻗고, 몸을 기울여 방향을 바꾸었다. 또 다른 아이들은 코치의 동작을 따라 정해진 움직임을 반복했다. 넘어지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곧 일어나 다시 얼음 위를 미끄러지듯 달렸다. 스케이트 자국이 얽히고 겹쳐 링크 위에 실금처럼 퍼져 있었다.
하루의 끝은 광교호수공원의 프라이부르크 전망대였다. 과거 원천유원지의 기억을 간직한 광교호수와 신대호수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 전망대에 서니 잔잔한 물결과 둘러싼 숲, 그리고 멀리 보이는 도시의 스카이라인이 어우러져 근사한 풍경을 완성했다. 주변 아파트는 20억 원을 넘는다고 했지만, 그런 가치보다 이 풍경을 매일 볼 수 있다는 것이 더 부러웠다.
이른 아침, 나를 자신의 우주라 생각하는 강아지 한 마리와 함께 이 호숫길을 걷는 상상을 해 보았다. 강아지는 내 곁을 따라 걷다가 가끔 고개를 들어 나를 올려다보고, 그 순간 세상에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았다.
그날 밤, 우리는 시청 인근의 비즈니스 호텔에 묵었다. 일행 중 일부는 호텔에 짐을 풀고 잠시 숨을 고른 뒤, 다시 밖으로 나가 감자탕집으로 향했다.
나는 요즘 잠을 깊이 이루지 못해 몸이 쉽게 지친다. 부산에서 수원까지 이어진 긴 이동에 수원에서의 일정까지 겹치자, 일찍 잠자리에 들 수밖에 없었다. 피로가 겹쳐서였을까. 오랜만에 깊고 편안한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 날, 우리는 수원컨벤션센터로 향했다. 관계자의 설명을 들으며 수원이 얼마나 치밀하게 성장해 왔는지를 새삼 느꼈다. 컨벤션센터의 관계자는 방문기념품도 잊지 않았다. 이어 광교 SK뷰레이크 41층 스타벅스에 들렀다. 광교호수를 내려다보며 마신 커피 한 잔은 그 어느 때보다 특별했다. 탁 트인 전망과 햇살 가득한 도시는 커피 향과 어우러져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듯 하다.
마지막 일정은 수원의 일월수목원이었다. 5월의 끝자락, 수목원은 봄을 보내고 초여름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연둣빛을 벗고 짙어진 나뭇잎들이 햇살을 받아 반짝였고, 길게 이어진 산책로 옆으로는 초록이 가득했다. 철쭉은 거의 지고 있었지만, 수국과 작약이 막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햇살은 제법 강했지만, 그늘 아래로 불어오는 바람은 아직은 봄의 끝자락을 붙잡고 있었다.
도심에서 조금만 벗어났을 뿐인데, 나무들 사이로 스며드는 바람과 흙냄새가 분주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난 듯한 기분을 주었다. 걷는 동안, 마음 한구석이 천천히 가벼워졌다.
점심은 중국 요리로 마무리했다. 식사를 마친 우리는 연말에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며, 각자의 출발 시간에 맞춰 흩어졌다. 일부는 승용차로, 또 일부는 수원역으로 향했다.
수원역에 도착한 우리는 출발까지 시간이 남아, 수원역과 연결된 AK플라자를 둘러보며 마지막 이야기를 나누었다. 수원과 광주의 동기생은 끝까지 배웅을 했다.
가장 늦은 시간대의 기차를 예매한 나와 일행 한 명은, 배웅 나온 이들을 괜히 오래 머무르게 하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출발 한 시간도 더 전에 플랫폼으로 들어갔다. 끝까지 자리를 지켜준 그들의 배려가 고맙고,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졌다.
완주에서 맺은 인연을 소중히 여기며, 기꺼이 자신의 고장을 열어 보여주고, 동기들을 따뜻하게 맞아준 동기생에게 마음 깊이 고마움을 전한다.
함께한 시간만큼 서로 더 가까워졌다. 그 시간이 우리를 다시 만나게 하고, 이 인연을 오래 이어가게 해줄 것이다.
다음 만남은 완주에서 하기로 했다. 전북 동기생들이 자리를 마련해 주겠다고 했지만, 준비라는 말을 굳이 강조하고 싶지는 않다. 좋은 장소도, 특별한 무언가도 필요 없다.
우리가 바라는 건 그저, 다시 만나 웃고, 걷고,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