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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십칠도씨 Jul 25. 2022

저를 소개합니다.

글 '싸는' 사람

먹으면 똥을 싸야 하듯이, 살아가며 글을 싸야만 하는 사람도 있다.


표현이 약간 저속하긴 하지만 내가 글을 쓰는 동기를 이보다 더 정확히 표현할 수 없을 것 같다. 첫 글이니만큼 멋들어지게 쓰고 싶었는데 초면부터 똥 얘기라니, 나도 양반은 못 되지 싶다. 그렇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여기에 올리는 글은 그만큼 진솔하고 내밀한 것이다. 이 사실은 쓰는 이에게도 읽는 이에게도 부담이 될 수 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내 곁에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거다. 자신의 인생을 주제로 글을 쓰는 작가로서는 다행인 일이다. 공개된 장소에 글을 올리기까지 긴 고민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가도, 아무도 나에 대해 몰랐으면 좋겠다는 모순된 마음이 번갈아 다. 자전적인 글을 쓰는 사람들이 겪게 되는 가장 큰 도전일 것이다. 그래서 내 브런치는 첩첩산중에서 혼자 외치는 메아리다. 아마 수신도 발신도 나 하나뿐일 것이라 생각하지만 우연히 건너편 산을 오르던 누군가가 내 외침을 들을 수도 있겠지. 지나가며 미소를 짓게 된다면 그걸로도 감사할 일이다. 여기에 '나'는 없다. '내 글'이 있을 뿐. 글을 읽는 모든 이들에게 내 존재는 미지이며, 이 베일이 우리 사이에 적당한 거리를 주어 마음 놓고 즐길 수 있길 바란다.


삶의 부산물을 처리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운동 같은 취미활동일 수도 있겠고, 식도락, 음주, 흡연 등 비교적 단기간에 효과를 얻을 수 있는 방법들이 많은 사랑을 받는다. 그게 나에게는 글쓰기였다. 작가가 되어 대중에게 사랑받고 유명세를 얻는 꿈이 없던 것도 아니지만, 그런 문제는 어떻게 되든 좋았다. 가장 중요했던 건 글을 써야 내가 살 수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오랫동안 내 안에 쌓인 것들을 쏟아내는 방법을 절실히 탐색했지만 번번이 좌절되었다. 그 실패의 역사를 기록하면서 점점 이 행위 자체가 내게 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따금씩 글에서 멀어져 살다가도, 가장 고통스러울 때 가장 먼저 찾게 되는 건 글쓰기라는 배설 행위였다. 그래서 아무에게도 읽히지 않는 글들을 오랫동안 써왔다. 가끔 남에게 들려주고픈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어도, 날것의 나를 드러내는 글이 보여주거나 자랑할만한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 글들은 한 문장으로 끝나기도 했지만 50페이지가 넘어가는 장문이 되기도 했다. 수많은 문장과 감정과 기억이 몇 년 간 곳곳에 흩어져 잠들어 있었다.


그럼 그들을 왜 이제 공개하는가. 그동안의 긴 부끄럼의 시간을 돌이켜보면 별것도 아닌 계기였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그간의 수업 자료를 정리하면서였다. 시켜서 쓴 글 외에도 자발적으로 열심히 써온 글들이 외장하드 구석구석에 숨어 있었다. 읽어보니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흥미로워 종종 찾고 싶었는데, 매번 외장하드를 연결하기 귀찮았다. 그러다 떠올린 게 브런치였다. 인터넷만 연결되면 바로 나만의 글을 쓰고 읽을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가입을 해야지, 해야지 하다가도 왠지 어려워 보이는 외양에 쉽사리 건드리지 못했다. 가입하고도 한참을 묵혀만 두다가 어떤 계기로 예전에 써놓은 글을 조금씩 옮기기 시작했다. 수업 기록 말고도 핸드폰 메모장, 이면지 귀퉁이에 쓴 쪽지까지 20대의 내가 써온 다양한 글들을. 저장된 글은 작가가 되어야만 발행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서랍에만 두기 아까워 신청을 하면서도 정말 될 줄은 몰랐다. 브런치에는 양질의 정보가 많다. 전문지식을 지닌 교육자나 현업에 대해 생생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직장인도 있고, 특이한 인생 이력을 지닌 사람들도 보인다. 그래서 가끔씩 검색으로 블로그 글이 아닌 브런치 글을 읽게 될 때면 나와는 거리가 먼 플랫폼이라고 생각을 했다. 내 글은 지극히 사적이며 전문적이지도 않고 실용성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가로 승인되었다는 소식도 처음에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작가 신청란에 제출한 바는 다음과 같다.

< 작가 소개 >

20대가 시작되던 날, 어디서 들은 말인지는 모르지만 20대에 이뤄야 할 목표가 세 가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공부, 여행, 사랑이었죠. 이 세 개를 열심히 하며 살아간다면 다시 오지 않을 소중한 시기를 아깝지 않게 쓰는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습니다.

지금 20대의 후반부를 지나고 있는 시점에 젊은 날의 기록을 다시 펼쳐 봅니다. 평범한 젊음 속 공부와 여행과 사랑은, 성공하다가 실패로 좌절하기도 했고 슬픔 뒤 기쁨이 따르기도 했습니다. 다듬어지지 않아 부끄러운 원석들이 많지만 누군가에겐 흥미로울 수도 있는 이야기를 써가고 싶습니다.

< 브런치 활동 계획 >

1. 국어국문학과에서 배웠던 것

2. 배낭여행기 (해외, 국내)

3. 책/영화 분석글

4. 20대가 겪는 여러 가지 경험


여기에 기록되는 것들은 27살의 현재뿐만 아니라, 고등학생과 다를 바 없던 스물 하나부터 시작해 세상에 부딪히고 좌절하는 20대 전체의 이야기이다. 연도가 앞으로 갈수록 눈뜨고 보기 힘들 정도로 부끄러운 글이 많다. 이해를 돕기 위해 약간의 수정이 들어갈 수는 있겠지만 웬만하면 원본을 옮기고 싶다. 부끄러움은 성장의 증거이기도 하니까.

20대의 기록이라는, 밑도 끝도 없이 광범위한 소개에서 가능성을 보고 기회를 준 브런치팀에 감사드린다. 내 글에서 무엇이 보인 건지 아직은 알 수 없지만 이 메아리가 누군가에게 닿아 어떤 움직임이 되어줄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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