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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십칠도씨 Sep 13. 2022

One day more

첫 출근 전날의 새벽

2022/09


또다시 폭풍 같은 시간이 흘러갔다.

전혀 생각지 못했던 최종 합격 통보를 받았다.

내 전공을 생각했을 때 생소하게 느껴지는 산업군이기 때문에 더욱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동시에 내가 동경해오던 분야이기도 했다. 삶이 인간을 인도하는 방식은 참 신비롭다고 느꼈다.     


취준을 시작하던 날에 내가 한 결심은, 딱 100개까지만 지원서를 넣어보겠다는 거였다.

마지막 백 번째 회사마저도 떨어지면 시원하게 접고 부모님의 말씀대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할 것이라는 각오로 하나하나 카운트를 시작했다.

그 흔한 인턴 경력이나 상경 복수 전공, 혹은 직무 관련 경험마저 전무한 인문계 졸업생이기 때문에 쉽게 취업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봄과 여름 사이 많이도 떨어지고 떨어졌다.

내가 어디에도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느낌은 고통스러웠지만 아직 백 번째 회사까지 갈 길이 멀기에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탈락에도 어느 정도 초연해질 때쯤, 스물두 번째 도전에서 처음으로 최종 합격이라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단 하나의 회사가 나를 인정해줬음에 고맙기도 했지만, 왜 나를 뽑았을지 의문스럽기도 했고 예상보다 취준 생활이 짧게 끝나 이상하게도 허탈한 느낌이 들었다.

최종 합격을 알리는 전화를 받았을 때 전혀 기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 이후는 취준할 때만큼이나 바빴다. 입사 전까지 얼마 남지 않은 기간 동안 처음으로 채용검진이라는 것을 받아보았고, 되는대로 자라나게 내버려 두었던 머리를 짧게 다듬고, 아디다스 추리닝과 면접용 정장만을 오가다가 출근용 옷도 사보고, 마지막 자유시간을 즐기러 짧은 여행도 다녀왔다.


시간은 흘러 첫 출근을 앞둔 마지막 새벽이다.

하루 종일 머릿속에 계속 떠오르던 노래가 이 글의 제목인 <One Day More>이다.

혁명 전날의 긴장감, 그리고 여러 등장인물의 교차되는 상황과 감정이 절절하게 공감됐다.

나에게도 첫 출근이라는 것이 혁명만큼이나 커다란 일로 느껴진다. 또한 기대감과 걱정, 두려움, 설렘이 하나로 섞여 울렁거린다.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가 내일부터 펼쳐질 것이다. 그 세계가 호의적이든 적대적이든 나는 그 안에서 살아남고 적응하고 나아가야 한다.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에게 하루만 더 주어졌으면!

새로운 세상으로 넘어가는 일이, 첫 날갯짓을 위해 깜깜한 절벽 끝으로 발걸음을 내딛는 것처럼 두렵다.

     

아주 오래전에 <미생>이라는 드라마가 큰 인기를 끌었다.

입시 공부에 바빴을 때라 보지는 못했지만 대략적인 내용을 알고 있다.

바둑만 잘하는 ‘장그래’가 낙하산으로 대기업에 인턴으로 입사하게 되지만, 회사일과 관련 없어 보이던 그의 경험과 역량이 그를 ‘완생’으로 성장시킨다. 얼핏 <슬럼독 밀리어네어>가 떠오르기도 한다. 화려한 퀴즈쇼와 관련 없어 보이는 처절한 슬럼가 속 삶의 경험이 결국은 돌고 돌아 문제의 해답에 닿고 주인공의 우승으로 이끈다는 점에서.

나의 경험도 그럴 수 있을까?

대학에서 배운 본질적이나 실리적이지 못한 지식들, 깊고 넓게 살려고 노력했던 시간에서 얻었던 교훈들이 회사생활에도 도움이 될까?

나도 그곳에서 ‘완생’이 될 수 있을까?     


The time is now, the day is here.

Tomorrow we'll discover what our God in Heaven has in st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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