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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십칠도씨 Apr 02. 2023

김애란 <달려라 아비>

가족 로망스의 해체: 딸과 아버지 사이에서 (2)

아버지를 호명하는 두 소설

   「남자의 자리」와 「달려라 아비」, 두 작품에서는 아버지를 향한 복잡한 감정을 들여다보려는 딸의 시도가 나타난다. 아버지들은 각자의 이유로 딸과 소통하지 못하며, 딸은 나름의 방식으로 불통에 대응한다. 전자는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이야기더라도 최대한 객관적으로 진술하려는 태도를 보이고, 후자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버지를 나름의 상상으로 만들어내어 이해하려고 한다. 두 작품의 공통점은 딸이 바라본 아버지의 모습을 담았다는 소재의 측면에서 그칠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서 동시대의 한국 문학과 세계 문학이 공유하는 의식을 찾아낼 수 있다면 나름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남자의 자리」에서 딸이 마주한 대상이 ‘발가벗은 아버지’였다면, 「달려라 아비」 ‘농담처럼 우스워진 아버지’를 보여준다. 딸은 아버지를 “새로운 나를 정초하기 위한 ‘부재’의 방식으로 존재하는 유동적 실체”로 받아들여, 자연적 기원을 부정하고 스스로를 존재의 기원으로 상정한다. 쉼 없이 뛰고 있는 가상의 아버지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묘사된다. 그에겐 아버지의 권위라는 것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내겐 아버지를 상상할 때마다 항상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그것은 아버지가 어딘가를 향해 열심히 뜀박질하고 있는 모습이다. 아버지는 분홍색 야광 반바지에 여위고 털 많은 다리를 가지고 있다. 허리를 꼿꼿이 편 채 무릎을 높이 들고 뛰는 아버지의 모습은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규칙을 엄수하는 관리의 얼굴처럼 어딘가 우스꽝스러워 보인다.”(10)


-아버지 서사가 공유하는 문제의식

   작품은 전통적 가족 관계 안에서 자주 갈등을 빚는 아버지와 딸의 관계를 조명함으로써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한다. 이들의 갈등은 가부장제의 지배자(연장자-남성)와 피지배자(연소자-여성)의 구도로 나누었다고 볼 수도 있다. 권력관계의 차이로 인해 딸은 아버지 세계의 모순을 가장 강하게 경험하고 고발할 수 있는 당사자가 되기 때문이다.

   그들은 프로이트적 가족 로망스 안의 엘릭트라 콤플렉스에서 벗어나 모녀가 여성 간의 유대로 맺어진다. 이는 「남자의 자리」에서도 잠시 언급되긴 하지만, 「달려라 아비」에서 더욱 특징적으로 나타난다. 아버지 없이 딸을 키우는 어머니를 그려내는 과거 문학이 답습하던 신파적인 이미지를 탈피한다. 그들은 서로의 처지를 연민하지 않으며(“어머니가 내게 물려준 가장 큰 유산은 자신을 연민하지 않는 법이었다.”(16)), “구원도 이해도 아니나 입석표처럼 당당한 관계”를 맺는다. 어머니가 마음 아파할까 봐 일부러 어른스러운 딸이 되지 않으려 하는 속 깊은 화자를 보면 자매애가 느껴지기까지 한다. 딸과 어머니의 대화는 성적인 농담으로 가득 차있다. 수평적인 그들의 대화는 부재하는 아버지를 회화화시키고 아버지 세계의 권위를 지워낸다.

"어머니는 농담으로 나를 키웠다. 어머니는 우울에 빠진 내 뒷덜미를, 재치의 두 손가락을 이용해 가뿐히 잡아 올리곤 했다. 그 재치라는 것이 가끔은 무지하게 상스럽게도 했는데 아버지에 대해 물을 때 그랬다. ... 어머니는 “내가 느이 아버지 얘기 몇 번이나 해준 거 알아 몰라?”라고 물었다. 나는 주눅이 들어 “알지......”라고 대답했다. 그러면 어머니는 시큰둥하게 “알지는 털 없는 자지가 알지고”라고 대꾸한 뒤 혼자서 마구 웃어댔다. 그때부터 나는 무언가를 ‘안다’라고 말하는 것은 음란한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15-16)


딸과 아버지가 대립하는 이유

   「남자의 자리」의 딸과 아버지가 대립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비투스의 문제이다. 아버지가 속한 노동자 계층과 딸이 속한 중산층 사이의 간극, 그리고 아버지가 교육을 통해 계층이동에 성공한 딸에 대해 느끼는 복잡한 감정이 병기된다.

   반면 「달려라 아비」에서 갈등은 화자의 내면에 있다. “아버지는 항상 어딘가에 계셨지만 그곳이 여기는 아니었다”는 진술이 단적으로 보여주듯, 딸은 ‘비재’와 ‘부재’를 구분한다. 나를 증명하기 위한 아버지인 것이다. 이때의 소통은 일방적이고 일방향적이기 때문에 각자가 속한 세계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남자의 자리」에서 딸에게 아버지란 존재하지만 소통이 불가능한 상대인 것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자신을 버리고 달아난 아버지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대한 내면적 갈등과 성장이 다뤄진다.      


미래로 나아가기: 성장을 통한 화해 또는 통합

   두 딸은 점차로 다면적인 아버지의 모습을 수용하게 된다. 「남자의 자리」의 딸이 거리 좁히기와 애도로 아버지와의 화해를 시도했다면,「달려라 아비」에서는 “썬글라스”가  상징물이다. 자신을 버리고 달아난 아버지이지만 상상 속에서나마 작은 호의를 베푼 것이다. 더 잘 뛸 수 있다는 건 자신에게서 계속 멀어져 외부세계를 뛰는 것임에도, 그러한 아버지의 삶의 방식을 인정하겠다는 수용의 상징이다. 이는 과거의 문학에서 여성 캐릭터들이 택했던, 용서를 가장한 굴복 혹은 가부장제로의 복귀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여기서의 인정은 아버지의 잘못을 없는 것으로 치부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겠다는 다짐에 가깝다. 쉬지 않고 뛰어온 내면의 아버지와 더불어 그를 상상하느라 쉴 수 없었던 자신의 내면 그 자체를 애도하는 의식이라고도 볼 수 있다.

“나는 문득, 아버지가 그동안 언제나 눈부신 땡볕 아래서 뛰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 아버지는 내가 아버지를 상상했던 십수 년 내내, 쉬지 않고 달리는 동안 늘 눈이 아프고 부셨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밤 아버지의 얼굴에 썬글라스를 씌워드리기로 결심했다. … 아버지가 가만히 눈을 감는다. 마치 입맞춤을 기다리는 소년 같다. 그리하여 이제 나의 커다란 두 손이, 아버지의 얼굴에 썬글라스를 씌운다. 그것은 아버지에게 썩 잘 어울린다. 그리고 이젠, 아마 더 잘 뛰실 수 있을 것이다.”(28-29)     


새로운 가족의 상상

   한국문학뿐만 아니라 세계문학에서 아버지와 딸의 관계를 다룬 소설이 공통적으로 그 소통의 불가능성을 다뤘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물론 「남자의 자리」는 실재한 아버지를, 「달려라 아비」는 화자의 상상 속 가상의 아버지를 다뤘다는 차이점이 있다. 또한 전자에서 다루는 주요한 문제는 노동자 계층의 아버지와 계층상승으로 부르주아 계층이 된 딸의 사회문화적 갈등이라면, 후자는 딸의 출산도 보지 않고 도망간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의 부재에 대한 딸(과 어머니)의 대응을 다룬다. 그러나 큰 맥락에서 보면 두 소설이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개인이 아닌 상호작용하며 본원적 자아를 찾아가는 '한 여자'를 조명했다는 공통점을 찾아낼 수 있다. 아버지의 해체로 시작되는 가부장적 가족체제의 해체는, 모든 것이 해체되고 재구성되는 이 시대의 문학 트렌드를 반영하며 새로운 가족에의 상상을 제시한다.


2021/12


참고문헌

  서은경 (2018). 가족모티프의 측면에서 바라본 김애란 소설의 변모 과정. 돈암어문학, 68.

  우미영 (2006). 현대소설과 가족의 탈근대 -윤성희, 김애란, 강영숙의 소설을 중심으로-. 한국문예비평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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