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하늘은 가끔 하늘보다는 천장처럼 느껴진다. 서울 안에서 진짜 하늘을 찾을 수 있는 곳이라면 한강 정도가 있을까. 그래도 나에겐 특별한 장소가 하나 더 있다. 아파트 옥상이다. 꼭대기 층인 우리 집 문을 열고 나와 일곱 개의 계단을 오르고 거꾸로 몸을 틀어 다시 열 개의 계단을 올라가면 초록 불빛이 비치는 EXIT 사인이 보인다. 녹슨 철문에는 소방 무슨 법이랬나 때문에 늘 개방해 놓을 수밖에 없다는 내용의 안내문이 붙어있다. 있으나 마나 한 잠금장치를 돌려 빼고 녹슬어 뻑뻑한 문을 힘주어 열면 하늘이 밀려온다. 이 곳이 내 특별한 방이다. 못생긴 초록 방수 페인트 바닥에 가구라고는 피뢰침과 안테나, 어디 쓰는지 모를 파이프뿐이지만. 어딜 둘러보아도 사람이라곤 찾을 수 없는 곳. 맑은 날의 뭉게구름이나, 한낮의 하얀 햇빛, 그 아래 날카롭게 벼려진 각진 벽들, 흐린 날이면 먹물을 풀어놓은 듯 두터운 구름이 뭉그럭거리는 모습이 잘 보이는 곳. 깊은 물속에 잠긴 듯 마음이 답답해질 때면 숨을 쉬러 이 곳에 올라온다. 이 위에 있으면 내가 이상한 사람이란 걸 잊을 수 있다. 처음에 옥상에 올라온 이유는 이게 아니었는데,
그날부터 품었던 비밀스러운 소망은 잠잠하다가도 활화산처럼 터져 나오곤 한다.
내가 처음으로 옥상으로 올라간 날은 고등학교에서 1년을 마친 겨울이었다. 그때 옥상 벽 너머로 뛰어내리고 싶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왜 죽고 싶었을까. 그걸 알지도 못한 채로 죽음을 향한 갈구는 나의 습관이 되어가고 있었다. 옥상에 처음 올라온 날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은 사실이라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게 그리 녹록치 않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극한의 상황에 있어도 결정의 순간이 다가오면 난 늘 죽음이라는 안식처의 문턱에서 돌아서야만 했다. 도망치고 싶은, 내가 가면 안 되는 그 곳. 시간이 영원했으면 하다가도 영원히 멈춰버렸으면 하기도 했다. 그 둘은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어느 곳에도 속해있지 못하고 하루를, 그리고 또다시 하루를 살아가는 내게 시간은 멈춘 것 같으면서도 영원하게 느껴진다. 어쩌면 난 그냥 살아있는 게 너무 지친 것일지도 모른다. 정수리를 찌르는 정오의 빛을 뒤로 한 채 옥상에서 나간다. 문이 닫힌 비상계단에는 빛도 바람도 없다.
톡톡. 느즈막한 오후의 부우연 햇살이 창을 건드린다. 좋은 날씨는 나를 부끄럽게 만든다. 푸른 하늘 속에서는 태양이 하늘을 여행하는 게 너무나 잘 보인다. 그 여정 속에서 나도 같이 바쁘지 않으면 안 되는 것 같다. 부끄럽다. 세상이, 해가 떠 있는데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를 비웃고 있다. 올라가 있는 블라인드를 내린다. 블라인드 아래에는 화구박스가 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학원과 시험장을 함께한 친구다. 반투명한 화구박스 속으로 프라즈마 72색 색연필이 비친다. 박스의 표면에서 포도를 안고 있는 여자가 날 힐끗 쳐다본다. 호미화방에서 이 여자와 처음 마주친 날, 나는 대학에 가면 무엇인가가 달라질 거란 기대에 부풀어있었다. 찬바람 아래 봄 향기가 선뜻선뜻하던 그 날의 공기는 아직도 생생하다. 누군가가 날 이해해 줄 거라는 믿음이 아직 희미하게 살아있던 날들. 수은색 구름 사이로 옅은 빛이 비쳤고, 기대에 찬 스무 살들은 하얀 입김을 내뱉으며 지하철역으로 쏟아졌다. 주위를 설렘으로 전염시키는 체온 속에서 난 철제로 된 색연필 박스를 안고 역 계단을 내려갔다. 집에 와 박스를 열고 매끈거리는 72색의 원기둥들을 하나하나 깎으며, 앞으로의 삶은 이토록 흠 없이 빛나기를 바랐다. 그러나 대학에 왔다고 어두운 마음이 반짝거리는 일은 없었다. 내 안의 믿음은 빛을 잃고 사그라져 갔다.
다시 뭉뚝해진 72개의 색연필을 꺼낸다. 색연필 깎기는 힘들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성가시고 무의식적인 노동이라서, 마치 내가 72개의 손톱을 가진 생명체가 되어 정성스럽게 손톱을 깎아내는 기분이다. 색색깔의 심지를 보호하고 있는 나무껍질이 커터 칼에 밀려가 떨어진다. 사각사각. 예리해진 색연필의 수가 늘어날수록 심지에서 떨어진 가루는 더 알록달록해진다. 눈 속에 색들이 넘쳐 어지럽다. 정해진 일과에 맞춰 억지로라도 삶을 살아가던 고등학생 시절처럼 대학교에서도 버텨내는 것이 좋았을까.
사각.
대학교마저 나와 버린 지금, 내가 속한 곳은 아무 데도 없다.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그럴 수 있니, 혼자서 널 키워내느라 내가 얼마나, 고함과 눈물과 인상 쓴 엄마의 미간 같은 것들이 머릿속에서 이지러진다.
사각.
엄마, 나 학교 그만 다닐래요.
엄마는 모른다. 내가 입시 때문에 죽고 싶은 게 아니었다는 걸. 혹은 대학에 와서 힘들어진 게 아니라는 걸. 나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천천히 죽어가고 있었으니까. 땅 위의 삶이란 건 언제나 자유로울 수 없었다. 지면에 가까워질수록 커진다는 중력처럼 땅 위에서 강해지는 사람들 사이의 인력은 나를 괴롭게 했다. 그러면서도, 누군가에게 전달되지 못하는 마음이 속에서 곪아갈 때마다 난 이해받고 싶다고 간절히 바랐다. 그 기대는 몇 번이고 좌절되어도 포기하기 어려운 종류의 것이었다. 감정인지 마음의 병인지 모를 어떤 것에 괴로워하는 내가 싫었다. 왜 하필 나였어야 했을까. 인생이 논리도 이유도 없이 인간에게 퍼붓는 벼락같은 불행에 대한 한탄을, 내 성취만을 바라보던 엄마에겐 털어놓을 수 없었다. 엄마의 사랑은 내가 옳은 길을 걸어가야만 주어지는 트로피 같았다.
내 몫의 삶이 너무 버거워 누군가에게 이해받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나를 낳은 엄마도 나를 이해할 수는 없었다. 하긴 나도 날 이해할 수 없는걸. 엄마는 몸이 아픈 게 아니면 입시가 끝날 때까지만 참아보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 노력해보면 안 되겠냐고. 입시가 끝났다고 내 고통이 끝난 건 아니었다. 엄마랑 말할수록 나는 애초부터 잘못 만들어진 부품 같다는 슬픈 확신은 점점 강해졌다. 입은 고목 뿌리처럼 말라버려 움직이지 않았다. 내가 원한 건 누군가 나를 이해해주는 것뿐이었는데.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일까? 같은 상처를 안은 사람이라면, 나를 이해해줄 수 있을까? 72개의 손톱을 다 깎은 흔적이 어둠 속에 침침하게 비친다. 이제 모두 새것처럼 날렵해졌겠지. 그러나 창밖이 이미 어두워 잘 보이지 않는다. 별을 찾고 싶었지만 인간의 빛이 너무 밝아 별은 그 빛 속에 사라져간다.
왜 별은 보이지 않아. 목구멍에 울컥, 뜨거운 굴 같은 게 올라온다. 참을 수가 없어 계단을 달려 내려간다. 인적이 드문 길을 골라 무턱대고 뛰어간다. 심장은 입 밖으로 튀어나올 듯 쿵쾅거리고 혀 뒤쪽은 사포로 갈아버린 듯이 따끔거린다. 머리 뒤쪽이 띵해서 더이상 달릴 수 없을 때까지 달린다. 다리가 턱 풀리고 컥컥거리는 채로 주위를 둘러본다. 끝없는 아파트 단지 속. 아무리 달려도 이곳을 벗어날 수 없다. 다시 집 쪽으로 걸어간다. 절박하게 달려갔던 그 길은 너무나도 짧다. 집으로 돌아가는 마지막 관문은 엘리베이터다. 학교를 그만두고 집에 숨으며 다른 사람과 마주치는 일에서 해방되었지만 단 한 곳, 엘리베이터에서만큼은 그럴 수 없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갈 때 누군가가 함께 타는 게 두렵다. 좁은 공간 안에서 누군가와 숨을 공유하고 있으면 뒤에서 밧줄이 내 목을 졸라오는 것 같이 숨이 막힌다. 사실은 그냥 내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부끄러운 것일지도 모른다. 꼭대기 층으로 올라가는 여정이 날이 갈수록 점점 힘들어진다. 난 왜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아 하는 일상적인 일조차 견딜 수 없는 것인가. 빨리 안전한 내 방 안에 담기고 싶다. 문이 거의 닫히고 이번에는 무사히 올라가겠다 싶은 순간 누군가 문을 비집고 들어온다. 문이 닫혀 버려 엘리베이터를 나갈 수도 없다. 얼굴이 익다. 얼마 전 4층에 이사 온 사람이다. 4층으로 올라가는 짧은 순간 등에는 차가운 땀이 맺힌다. 오른쪽 벽에 최대한 붙어 거리를 만들어본다. 이상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은데. 엘리베이터를 써야 할 땐 사람이 가장 다니지 않는 새벽을 고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4층 사람은 그 시간대에 자주 나타났다. 같이 타고 싶지 않아 괜스레 우편함을 확인하러 가면 엘리베이터는 늘 어느 정도 열려있다가 올라가곤 했다. 엘리베이터로 돌아와 다시 올라가는 버튼을 누르면 4층에 멈춰있던 엘리베이터를 확인할 수 있었다. 4층입니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린다. ‘4’의 오른쪽 눈이 긴 앞머리에 가려진 틈으로 나를 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이상한 사람인 거, 들켜버렸나 보다.
‘해야 하는’이 없는 하루는 늘어지듯이 흘러간다. 어느새 하늘은 하늘색이 아닌 다른 색으로 물들어간다. 삐삐삐삐삐삐삐. 삐리릭. 문 열리는 소리에 심장이 철렁하다. 엄마가 웬일로 일찍 퇴근했나 보다. 엄마가 화장실을 간 틈을 타 현관문을 열고 계단을 올라간다. 나를 바퀴벌레처럼 볼 눈이 무섭다. 엄마도 내가 한심하고 싫겠지만 세상에서 나를 제일 싫어하는 사람은 나다. 남을 싫어하면 그 사람을 안 보면 되는데 내 자신이 싫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양쪽 콧구멍을 젖은 솜으로 콱 틀어막은 것 같다. 숨을 쉴 수 있는 곳으로, 계단을 뛰어 올라간다. 내가 가장 혼자 있고 싶은 순간을 방해하는 누군가가 있었다. 또 ‘4층’이다. 담배를 피러 올라왔구나. 내 또래처럼 보이는데 폼이 꽤나 익숙하다. 비상계단에서 기다릴까. 그의 검지와 중지 사이로 거의 사라져가는 흰 막대를 보며 이상한 고집이 생긴다. 하늘을 독차지하기 위해 조금만 버티기로 했다. ‘4’가 서있는 모서리에서 최대한 떨어져 하늘을 본다. 시야가 깨끗해 앞으로는 관악산이, 뒤로는 북한산이 보인다. 아파트 숲만 아니라면 서쪽의 땅 끝까지도 보일 것 같다. 하늘은 저렇게나 넓은데 내가 가질 수 있는 건 이 옥상만 한 크기뿐이다.
“20층 사는 분 맞죠?”
깜짝 놀라서 뛰어오를 뻔했다. ‘4’가 나를 보고 있다. 시선이 닿는 걸 자각한 순간 몸이 목각인형처럼 삐걱거리는 것 같다. 말은 어떻게 하는 거였더라. 아니, 목소리는 어떻게 내는 거였지. “...네.” 오랜만에 듣는 내 목소리가 낯설다. 내 목소리에 대한 당혹감은 이내 ‘4’를 향한 원망으로 변한다. 나에게 말을 걸고 대답까지 하게 한 ‘4’가 어서 눈앞에서 사라져줬으면 좋겠다. 동시에 이런 생각이나 하는 내가 싫어진다. 이 사람은 좋은 뜻으로 한 말일 텐데. 난 역시 구제불능이다. ‘4’는 멍청하게도 이런 나를 보며 사람 좋게 웃는다. “그동안 종종 마주쳤는데 인사를 못했네요. 여기 자주 오세요?” 난 저 사람이 의도하는 사교에 응해줄 수 없다. 사람들은 어찌 저리 낯선 이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걸고 그의 구역을 침범하려 하는 것인가. 그의 노크에 겁이 나 대답 없이 옥상 문을 나가버렸다. 차가운 녹색 빛이 감도는 비상계단은 황량하다. 엄마는 자정이 지나 잠에 드니 그전까지는 집에 들어갈 수 없다. 하릴없이 계단에 앉았다. 그가 담배를 다 피우면 곧 이곳으로 내려올 것을 알면서도 내겐 갈 곳이 없다. ‘4’가 문을 열고 계단을 내려온 건 꽤 시간이 지난 후다. 굳어있는 내 옆을 지나면서 혼잣말처럼 뇌까린다. “너무 자주 오지는 마세요. 무섭잖아요, 여기.” 옥상은 무서운 곳이 아니다. 죽음을 시도하는 곳이라서 무섭다면 내 마음은 다 지옥이 되어버릴 것이다. ‘4’가 남기고 간 희미한 담배냄새는 오래도록 남아있었다. 내 죽어버린 마음을 애도하는 향처럼.
한동안 보이지 않던 ‘4’가 다시 나타난 건 저번처럼 담배를 피우는 채로다. 유난히도 노을이 아름답게 지는 날이다. 이런 날의 하늘은 수채화보다는 유화가 어울린다. 삼키면 밤고구마처럼 목이 막힐 듯한 밀도 높은 하늘. 레몬 옐로, 버밀리온, 스칼렛 레이크, 퍼머넌트 바이올렛, 프러시안 블루, 인디고. 눈을 깜빡거릴 때마다 변하는 색 위로 솜털 같은 구름이 나풀댄다. 하얀 색의 아파트 외벽은 하늘에 풍덩 잠기어 함께 붉게 물들어간다. ‘4’의 얼굴도 아파트와 함께 노을빛으로 물들어 있다. 내가 있을 걸 이미 예상한 듯 다가온다.
“죽고 싶어서 매번 옥상에 올라오는 거죠?”
대답 없는 내 입이 충분한 대답이 됐을 것이다. 매번 옥상에 올라와 있는 내 모습을 보면 누구든지 그렇게 예상하겠지. ‘4’는 말도 없이 왼쪽 손목에 두르고 있던 빛바랜 금색의 시계를 끄른다. 그의 나이에 맞지 않는, 중년 남성에게나 어울릴 법한 넓은 체인을 가진 시계. 왜 갑자기? 의아해하는 내게 ‘4’는 팔을 뒤집어 손목 안쪽을 내보인다. 선명한 하얀 선들이 보인다. 오래전 생긴 흉터. 아주 날카로운 것으로 동맥을 망설임 없이 내리친 흔적. 늘 차고 다니던 시계는 저 보이지 않는 금들을 위한 것이었나 보다. 이 많은 선들이 만들어질 때까지 ‘4’가 버텨온 삶의 무게는 어떤 것이었을까. 하얀 금 안에 내가 겹친다. 옥상 너머의 허공을 하릴 없이 바라만 보던 나. 혼자서 몇 번이고 죽음을 고민하던 나. 죽고 싶지만 죽을 수 없어 포기했던 날들. 이 금을 만들어낸 너의 나날도 그렇게 고통스러웠을까. 민달팽이처럼 자기를 보호해주는 껍데기를 다 벗어버린 ‘4’ 앞에서 나는 더이상 내 갑옷을 유지할 수 없었다. 눈앞의 하얀 금이 물기에 젖어 흐물거린다. 나도 모르는 사이 ‘4’의 왼 손목을 잡았다. 호오 하고 작은 숨을 불었다. 너무 늦어버린 위로지만 마음의 흉터에는 가닿기를, 믿지도 않는 신에게 기도했다. 인간은 역겨운 존재다. 그런데 동시에 너무 불쌍하고, 또 사랑스럽다.
한 위대한 시인이 잔인한 달이라고 노래했던 4월은 그가 죽은 이후에도 끊임없이 돌아와, 눈이 닿는 모든 곳에 벚꽃을 흐드러지게 피워낸다. 꽃잎이 날리면 내 코도 난리다. 간질거리는 코끝이 봄을 알리고 있다. 옥상에서 꽃향기가 맡아진다는 건 나의 착각일 수 있으나 꽃가루가 들고 온 노란 빛만큼은 이 위까지 날아다니고 있다. 봄은 봄이구나. 흔히들 내 나이를 청춘이라 한다. 푸른 봄. 높고 외로운 곳에 서서 평일 낮의 벚꽃을 여유롭게 구경할 수 있는 청춘이란 참 슬프다. 가까이서 보면 더 좋겠지만 용기가 나지 않는다. 행복한 사람들, 손을 잡고 함께 걷는 사람들, 소리 내며 웃는 사람들, 행복해서 견딜 수 없다고 온몸으로 외치는 사람들과 저 꽃을 함께 볼 용기가. 끼이이익. 쇠문이 열리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자 ‘4’가 있다. 수업이 끝나고 바로 왔는지 백팩을 맨 채다. 언제나처럼 담뱃갑을 쥔 한 손의 반대편에는 웃기게도 솜사탕이 있다. 담배와 솜사탕이라니, 이토록 안 어울리는 조합이 있을까.
“정류장 앞에 솜사탕 아저씨가 왔길래,” 내가 중학교를 다닐 때부터도 솜사탕 아저씨는 학교 앞 버스정류장에 하교 시간을 맞추어 종종 오곤 했었다. “이것도 구름과자잖아요. 맨날 나 혼자 피니까 미안해서.”
맛대가리 없는 설탕덩어리. 단 한 번도 저것을 맛있다고 생각해본 적 없다. 그러나 봄은 건조한 계절이었다. 솜사탕을 건네주는 ‘4’의 까슬거리는 손끝이 안타까워 거절할 수 없었다. 옅은 분홍빛이 도는 인공의 구름. 부드럽지만 약간은 텁텁한, 직물 같은 설탕의 실 몇 가닥을 베어 물었다. 끈적하고 나풀거리는 실은 입술에 붙다가 어느새 사라진다. 정제당과 색소가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맛은 지독히도 달았다. 베어 물어 침이 묻은 부분은 어느새 진한 분홍빛으로 물들었다. ‘4’는 말없이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였다.
달빛이 밝아 방 안에 그림자가 지는 밤이다.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도 창문으로 달빛이 흥건하게 쏟아지고 있다. 나보다 먼저 옥상을 차지한 ‘4’의 뒷모습이 어느새 익숙하다. ‘4’는 뒤돌아보거나 인사를 하지는 않았지만 문을 열고 올라온 사람이 나인 것을 안다. 멀지는 않은 옆에 다가가 선다. 달은 그의 가느다란 어깨 위로 가볍게 착지해 하얗게 빛을 내고는 다시 바닥으로 떨어진다. 달빛으로 만들어진 그림자는 햇빛과 다르게 그림자의 주인공을 아프게 만들지 않아서 좋다. 아픈 태양빛이 달의 표면에서 반사되면 안 아파지는 것처럼, 내게도 달이 하나 있다면 사람을 대하는 게 그렇게 아프지만은 않을까. 갑자기 ‘4’의 얼굴이 떠오른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생각인가. 잠깐 동안 미쳤나 보다. 멀쩡한 삶을 살고 있는 누군가를 내가 있는 진탕으로 끌어올 만큼 파렴치한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나의 그림자는 내가 짊어지는 것으로 족하다. 저 멀리 우리 동네에서 가장 높은 주상복합에서 비행기를 위한 안내등이 빨갛게 반짝거린다. 지상의 빛은 너무나 밝다. 아름답긴 하지만 내 것은 될 수 없다. 내 몸에 붙어 움직이는 어둠이 내가 가질 수 있는 전부겠지. 내 그림자를 주위에 전염시키지 않으려면, 그러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옆에 서 있던 그림자는 좀 더 다가온다. 다가온다. 더 다가와서 나의 것과 하나가 될 때까지. “이곳에서 하늘을 보면 왠지 진짜 하늘을 보는 것 같아요.” 그 순간 너만은 날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미약한 희망의 빛을 감지한 것 같다. 아니, 감지했다기보다는 그냥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 별은 대도시의 빛공해로 가려진 북극성의 빛만큼이나 희미했으나, 어쨌거나 존재한다는 사실이 내겐 더 중요했다.
“벚꽃 보러 갈까요? 지금은 어두우니까 낮에.” ‘4’의 목소리가 아주 가까이서 들려온다.
옷장을 여니 홀아비 냄새가 난다. 여자밖에 없는 우리 집이지만 왠지 홀아비 냄새는 분명 이럴 것이란 느낌이 든다. 마지막으로 입은 지 몇 년은 된 고등학교 교복이 오도카니 걸려있다. 중학교 체육대회 때 맞춘 멘체스터 유나이티드 유니폼도. 몇 번의 빨래 끝에 쫄아버린 싸구려 기모 후드티도. 옷장 안에서 대부분을 차지하는 건 목 늘어난 티셔츠와 보풀이 잔뜩 일어난 츄리닝 바지다. 자퇴하고는 옷을 산 적이 없으니 당연한 일이다. 후줄근함의 향연 속에서 엄마가 미대생이 된 기념이라며 건네준 검은색 코트만이 풀 먹인 모습 그대로 고고하게 서있다. 그나마 멀쩡한 옷들을 몇 벌 골라내 세탁기 안에 넣었다. 철썩철썩, 드럼통이 돌아가는 소리를 파도삼아, ‘4’와 함께 걷고 이야기하는 내 모습은 어떨지 상상한다. 여기 꼭대기보다는 햇볕이 덜 따갑고, 바람은 덜 차가울 지상 위에서.
어떤 기대를 마음속에 안고 잠에서 깨어나는 건 정말 오랜만이다. 한 때는 종종 이런 감정을 느끼기도 했다는 게 놀라울 정도로 이 생경한 감정은 나와 멀어져 있다. 현관문을 열고 나와 계단이 아닌 엘리베이터 앞에 선다. 하나뿐인 역삼각 방향의 버튼을 누르자 엘리베이터는 금방 20층에 도착한다. 다른 누군가와 땅을 밟아보는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이런 평범한 일에 긴장하는 내 자신이 한심하면서도 심장박동이 기분 좋게 빨라지는 것만은 어찌할 수 없다. ‘4’와 만나기로 한 아파트 현관에서부터 연분홍의 터널이다. 연약한 꽃잎들이 살랑거리는 바람을 못 이겨 바닥으로 날아간다. 한없이 가볍다. 나의 낙하도 저 낙화처럼 가벼우면 좋겠다. 내 삶이 저 꽃잎보다 무거우면 얼마나 무겁다고 죽음이 이렇게 무거운 것일까.
“일찍 왔네요?”
평소보다 밝은 목소리가 내 상념을 깨뜨린다. 지상에서 본 ‘4’는 옥상에서와 조금은 달라 보이기도 한다. 조금 더 밝은 것 같고, 조금 더 살아있는 사람 같다. 어젯밤에 본 나와 닮은 얼굴은 착각이었을까?
아파트 단지 옆 뚝방길에는 온통 벚나무다. 옥상까지 올라와 내 코를 괴롭히던 꽃가루의 진원지는 이곳이었구나. “꽃이 참 예쁘게 폈죠.” 정말 예쁘긴 예쁘다. 땅에는 하늘과는 다른 아름다움이 있었다. 다만 그 아름다움이 나와는 섞일 수 없다는 걸 알아서 마음이 슬퍼질 뿐이다.
“지금은 학교에 안 다니는 거죠?”
“…네.”
벚꽃은 아름답고, ‘4’랑 땅 위를 걷고 있고. 다 좋은 것 같은데 자꾸만 맞지 않는 바지를 입고 걷는 것처럼 불편하다.
“왜 자퇴한 거에요?”
“…….”
“저번에 제가 보여줬잖아요. 저도 힘들었지만 지금은 이겨내고 대학교 다니고 있으니까……. 음, 좀 더 노력해보면 어떨까요.”
안 돼. 그러지 마. 너만큼은 나에게 그런 말을 해선 안됐다. 너의 흉터는 과시를 위한 것이었나.
“마음이 아프다고 다 이상한 사람은 아니더라고요. 병원을 다녀보는 건 어때요? 부끄러울 것도 아니고. 젊은 나이인데, 시간이 아깝잖아요.”
그래, 그의 말대로 모두가 달려가고 있다. 나는 혼자 기어가고 있다. 바빠야 할 낮에 뾰족한 일과가 없는 내 일상이 싫다. 20대의 시간은 정말 귀중하다고 했는데 나는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할지 모르겠다. 어떻게 하면 후회가 남지 않을지 모르겠다. 나는 내 자신 하나마저 책 임지지 못하는걸. 다 알면서도 고칠 수 없는 내가 싫다. 그런데 아무것도 모르면서 멋대로 걱정의 말을 쏘아대는 네가 미워진다.
난 이미 망가져버린 게 아닐까. 내가 믿었던 모두가 날 이해하려고는 하지 않고 고치려고만 한다. 더이상 설명하기에도 지쳤다. 어떤 누구도 내게 무엇을 바라거나 기대하지 않는 곳으로 도망치고 싶다. 하지만 그런 곳은 지상에 존재하지 않겠지. 결함투성이인 나를 받아줄 곳은…
“옥상으로 올라갈래요.”
모든 것이 죽어있는 옥상에서 살아 움직이는 건 환풍기뿐이다. ‘4’는 갑작스런 나의 말에 영문도 모르고 따라 올라온 눈치다. 어느 집에서 화장실 환풍기를 켰나 보다. 돌돌돌 돌아가는 은색 날개를 따라 역한 냄새가 훅 올라온다. 타인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건 때로는 불쾌한 일이다.
‘좀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직인가 봐요. 그쪽이 더 마음을 열어줬으면 좋겠어요.’
‘4’의 말을 떠올리며 마음속에 폭풍이 인다. 네가 뭘 알아. 난 마음을 더 열 수 있을 만큼 괜찮아질 수 없었다. 넌 아무것도 모르면서 내가 할 수 없는 걸 바란다. 내가 너에게 어떤 마음을 줬는지 넌 영원히 모르겠지. 넌 내가 궁금한 게 아니었다. 마음을 열기를 바란 것도 아니었다. 넌 그냥 네가 원하는 어떤 파편을 찾고 있던 거야. 너도 결국 이기적인 한 사람일 뿐이었다. 그러면서 날 다 이해하는 척 받아줄 것처럼 군 게 화가 난다. 네가 내킬 때만 넌 날 이해할 거라며 오만을 부리고 너에게 달갑지 않은 나의 모습은 외면했다. 우린 함께인 적이 없었다. 같이 있던 순간마저도 우린 다른 곳에 있었다.
아, 난 그때 깨달아 버린 거다. ‘4’가 날 이해할 수 없을 거라는 걸. 그에겐 그의 상처만이 중요했다. 하지만 나에게도 나의 상처만이 중요했다. 너에겐 너만의 옥상이 있겠지. 너의 옥상까지 닿기 위해 가야할 길이 내게는 너무 두렵다. 그래서 난 나의 옥상으로 돌아가려 해. 아파트 꼭대기를 올려다봤다. 너무나 멀어 보이기도 했지만 너무나 가까워 보이기도 했다. 저 정도 높이에도 산산조각날 정도로 인간은 연약하구나. 저 높고 외로운 곳은 너무 멀지만 그래도 내가 돌아가야 할 곳이다. 외롭지만 자유로운 곳. 저기서 비로소 난 죽고 싶어하고 조금은 이상한 나 자신일 수 있다. 너를 생각할 때마다 분홍색 솜사탕과 같은 색으로 물들어간 너의 얼굴이 눈에 보일 듯 떠오를 것이다. 그 안에 담긴 따뜻한 마음을 칼같이 과거로 흘러보내기에 난 너무 무른 사람이다. 계속 떠오르는 분홍의 너는 나를 괴롭히겠지. 하지만 너와 있으면 난 영원히 나일 수 없다. 아마 한 인간의 본질을 이해하는 건 너무나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오랜만에 다시 찾은 옥상은 당연하겠지만 변한 게 없다. 기역자로 굽어진 파이프를 디딤대 삼아 가슴팍까지 올라오는 벽 위로 기어오른다. 벽 안에서 보는 풍경과 벽 위에 앉아 보는 풍경은 다르다. 하늘 안에 풍덩 빠진 기분이다. 달랑거리는 발 아래에는 아무것도 없고 동시에 모든 것이 있다. 이제야 땅 위의 세상과 이어진 기분이다. 내가 저 안으로 들어가는 방법은 떨어지는 것 외에는 없는 것일까. 처음 올라온 날부터 옥상은 내게 죽음을 위한 다이빙대나 다름없었지만 이렇게까지 위험한 구역으로 온 적은 없다. 벽 너머로 몸을 던지고 떨어지는 찰나를 상상하면 내 머릿속에는 늘 같은 영상이 반복해서 재생됐으니까. 귀를 스치는 서늘한 날카로운 바늘 같은 쇠 같은 바람소리와 거꾸로 보이는 어두운 세상과 비정상적인 속도로 나에게 달려오는 지겹게도 익숙한 놀이터와 지면에 닿은 몸의 살과 장기가 뼈에 찢기고 으스러질 내 모습. 죽은 나를 유령처럼 바라볼 날 떠올리면 뛰어내릴 용기도 초라하게 도망가 버린다. 신이 정말 있다면 날 죽여줘서 자신의 권능을 보여주기를 매일 기도한다. 하루를 버티기 두렵다. 그런데 죽는 것도 두렵다. 결국 오늘도 난 저 땅으로 다가갈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땅으로 내려가고 싶은 마음도 포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영원히 나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겠지. 나를 구원해줄 수 있을 거라 믿은 사람도 결국 나를 구원해주지 못했다. 나를 구원할 수 있는 건 나뿐이었다. 그러나 나는 너무 지쳤다. 벽을 잡은 손을 이제는 놓고 싶다.
하늘은 넓었고, 사람은 작았다. 난 그중에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