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고령화되어 가고 인프라가 부족한 지방에서 젊은 청년이 일할 수 있는 양질의 직장이라고는 거의 공공기관 밖에 없다.
고향으로 가서 부모님과 가까이 살고 싶어도 막상 안정적인 직장이 한정적이다 보니 직업 선택의 폭이 좁아서 지방소도시에는 젊은 인구가 점점 줄어든다.
우리나라의 출산율이 줄어듦과 동시에 젊은 인구가 도시로 빠져나가다 보니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는 20년 전만 해도 한 학년에 6개의 반이 있었는데, 이젠 한 학년에 1개 반으로 줄었다.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되었던 지역 대학교가 폐교되었고 나름 '대학로'라고 불리던 거리에는 활기가 사라진 지 오래다.
이런 지방소도시에서 20~30대 젊은 공무원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또 다른 어려움에 봉착하게 한다.
서울에서 살 때는 또래들과 교류하고 그 나이대에 할 수 있는 고민을 나누며 젊은 문화를 공유했는데
지방에서는 또래도 많지 않고 문화생활, 자기 계발을 할 수 있는 인프라가 부족하다 보니 답답한 점이 많다.
게다가 지방이라는 지역의 특수성과 세대 차이로 인해 윗사람에게 일방적으로 맞추고 따라가야 하는 아랫사람의 위치에 오랜 세월을 보내야 한다.
어린아이도, 청년도, 노인도 아프고 늙은 사람보다는 쌩쌩하고 젊은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에 대부분 동의할 것이다.
어떤 50대 팀장님은 "줌바댄스에 갔더니 다 아줌마, 언니들 뿐이라 싫었다.", "젊은 사람과 놀고 싶다."라고 말하며 20~30대 직원들과의 저녁 술자리를 자꾸만 만드셨다.
"저도 업무 후에는 제 또래랑 놀고 싶지, 나이 든 당신과 놀고 싶지 않아요!!!"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차마 입 밖으로 내뱉을 수는 없었다.
공무원으로 일을 하면서 어른들이 예쁘게 봐주시고 좋아해 주셨지만, 한편으로는 내 기가 다 빨려버리는 느낌에 힘들었다.
회식 2차 노래방에서 최신 발라드를 부르고 싶지만 어른들을 배려해서 빠른 비트의 트로트를 불러야 했듯, 매 순간 어른들의 취향에 맞추어야 했기에 겉으로는 즐거워 보였겠지만 사실 에너지 소모가 크고 스트레스받았다.
남자 팀장님께서 저녁에 먹고 싶은 것을 사주신다기에 파스타를 사달라고 했더니, 그건 안된다고 거절당한 적도 있다.
그분의 '저녁에 먹고 싶은 것'이란 '먹고 싶은 안주, 그것도 소주 안주'를 뜻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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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사람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주고 젊은 문화를 경험해 보려 노력하고 젊은 사람과의 차이점을 인정하고 존중하면 좋겠으련만,
대부분의 어른들은 본인의 취향과 그들의 문화를 받아들이도록 강요했고 그들의 문화 속에 젊은이들이 들어오기를 일방적으로 바라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예전에 근무했던, 인구 3만 남짓한 촌구석이 그래서 싫었다.
지금은 고향으로 전입하고 나서 그런 강요는 덜해서 좋다.
젊은 사람들이 먹으러 가는 술집도 가보고 싶어 하고 노래방에서 어른들이 모르는 노래를 불러도 참고(?) 들어주신다.
전보다 상황이 나아졌으나, 또래 직장인들과 나눌 수 있는 고민이나 공감대가 부족하다 보니 답답함이 온전히 해결되지는 않았다.
나이를 먹어 가면서 나도 그런 선배, 그런 어른이 되지는 않을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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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또래 직원이 핸드폰 케이스 때문에 친구들에게 핀잔을 들었다고 했다.
점잖고 실용적인 디자인의 핸드폰 케이스였지만,
비교적 평균연령이 젊은 직장을 다니는 친구들 눈에는 그 디자인이 나이 들어 보였던 것이다.
나도 대학 동기들을 만날 때면
상대적으로 나이 들어 보이는 언행과 패션감각에
위축되고 서글펐다.
비교하자면 끝도 없겠지만,
그냥 서울에서 살 걸... 하는 후회를 떨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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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시에 비해 지방소도시는 시간적으로 여유 있는 것 같다.
비교적 출퇴근 시간이 덜 들고, 인프라가 부족한 만큼 할 게 많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그리고 공무원은 자기 계발을 해서 아무리 본인의 가치를 높여도 어차피 호봉표에 따라 호봉이 올라가고 때가 되면 진급이 되기에 경쟁이 덜하고 자기 계발에 대한 압박이 없다.
그런 여유 때문일까.
남에게 관심이 많다.
지역이 좁으니 관심을 갖지 않으려 해도 금방 소문이 나서 너도 알고 나도 아는 정보가 된다.
그래서 연애도 쉽지 않다.
사생활이 자유롭지 않다.
차 번호를 외우고 있다가, 네 차가 거기에 있던데 거기에 가서 무얼 했냐며 묻는다.
월요일에 출근하면 주말에는 무얼 했는지 궁금해한다.
궁금해하면 오픈하고 얘기해 주지만, 굳이 일하는 사이끼리 시시콜콜 사생활을 얘기해야 하나 싶다.
일하는 관계, 직장 내 인간관계로 선을 긋고 싶지만 여기는 이상하게 그게 잘 안 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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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소도시는 없는 게 참 많다.
원어민과 오프라인으로 영어회화를 공부하고 싶어도 영어학원 성인반이 아예 없다.
피부 질환으로 고생할 때는 피부과 전문의 병원이 없어서 잘 듣지 않는 약을 먹다가 결국 타 지역 종합병원에서 치료받았다.
전시나 공연을 볼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되고 가끔 있기는 하지만 규모가 아주 작거나 경쟁률이 치열해서 티켓팅이 어렵다.
맛있고 예쁜 브런치 가게도 단 2군데뿐이다.
주말 점심시간에 줄 서있는 모습을 보니, '더 예쁜 인테리어와 더 맛있는 음식이 있는 브런치 가게를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위에 나열한 것들이 없어도 사는 데에 큰 지장을 주지는 않지만, 자꾸만 도시와 비교되는 철없는 마음을 어찌할까.
다행히 내가 사는 지역에는 헬스장, 수영장, 요가, 필라테스 등 운동에 관해서는 선택지가 많다.
덕분에 골프를 배우고 있지만, 역시나 함께 소통할 30대 또래를 찾기는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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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 20~30대만 지방에서의 삶이 힘든 것은 아니다.
양질의 교육과 진로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지방의 청소년들.
의료서비스가 부족해 어려움을 겪는 어르신들.
경제가 돌아가지 않아 문을 닫는 자영업자들 등등...
인구감소와 지방소멸 문제를 해결하려 정부와 지자체마다 노력하고 있지만,
양질의 직장을 늘리는 것과 동시에
젊은 세대의 문화와 취향을 공유하고 받아들이려는
기성세대의 노력이 없다면
젊은이들은 계속해서 지방을 떠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