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고향으로의 전입전출
탈출이 아닌 다른 지옥
연고가 없는 지역에서 4년간 근무하다가 운이 좋게 고향으로 전출할 수 있게 되었다.
첫 발령지인 곳도 나의 고향도
작은 지방 도시라서 인재가 부족하고
신규직원을 뽑아도 큰 도시로 전출 나가기를 희망하는 경우가 많아서 3년 내 또는 5년 내 전입전출을 금지한다.
아니나 다를까, 인사담당자는 보내주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인맥을 이용해 자기 고향으로 달아난 직원이 여럿 있었기에
나를 잡아 둘 명분이 없어서 결국엔 고향으로의
전출을 허락해 주셨다.
연고가 없다는 이유로 차별당하기 싫었고
그들이 차별하지 않았음에도 피해를 당했다는
망상 속에 사는 게 싫었다.
주변에서도 고향으로 가든지 상위 기관으로 전출 가는 것이 진급에 유리할 거라 얘기해 주었고
아버지께서 투병 중이셔서 가족을 돕기 위해
고향으로의 전출을 선택했다.
친구들과 선후배들이 많이 있으며
부모님의 지인들도 계시니까
고향으로 가면 금방 적응하고 좋을 줄 알았다.
게다가 예전에 근무했던 지역보다
내 고향의 인구가 4배로 더 많기 때문에
업무분장이 잘 되어 있고 근무환경과
조직문화가 좋을 거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인구와 공무원 비율이
첫 발령지보다 좋지 않았고
(인구대비 공무원 수가 적다.)
업무 강도가 더 세며, 조직문화 또한 더 보수적이었다.
기대가 큰 만큼 너무나 실망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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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직공무원은 다른 지역으로 전입전출할 때 강등을 전제로 진행한다.
9급부터 쭉 근무해 온 직원이 전입 온 직원으로 인해 진급이 밀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그 당시 8급이었던 나는 9급으로 강등하는 것에 동의해야만 전출이 가능했기에 타의 반 자의 반으로 동의서에 서명했다.
6개월 뒤에 원래 급수로 복구해 준다는 얘기에
그 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1년이 되어서야 원래의 8급으로 돌아왔고
그동안 나보다 1년 늦게 공직에 들어온 분들이 7급으로 승진했다.
9급으로 강등했으면서도 경력이 있다는 이유로
7급이 일하는 자리로 발령을 냈고
기본급, 성과급, 명절상여금, 시간 외 근무수당은 모두 깎인 채로 잦은 야근에 시달려야 했다.
금방 적응하고 잘 지낼 줄 알았지만, 너무 낯설었다. 업무도 힘들었다.
전혀 모르는 사람들만 가득한 곳에서
임용 동기도 없이 나 혼자 외딴섬에 와 있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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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출 성공이 아닌 다른 지옥으로 건너왔다.
좋은 점이라고는 딱 하나.
가족들과 함께 지낼 수 있어서
심리적으로 기댈 수 있다는 것?
그것 외에는 모든 게 힘겨웠다.
공무원이라는 직업 자체가 나와 맞지 않는데
어리석게도 지역만을 옮겼으니 그럴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