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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탈희 Jun 10. 2024

핑계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

공무원 합격하고 임용 전까지 2~3개월 시간이 있었다.

임용 전에 해외여행을 다녀오려고 아르바이트를 찾았다.

이름만 대면 다 아는 패션회사에 소재팀과 아파트분양 모델하우스 알바를 지원했고

두 군데 모두 출근하라는 연락이 왔다.


패션회사(비정규직)를 가자니, 덜컥 겁이 났었다.

괜한 미련에 어렵게 합격한 공무원(정규직)을 포기하게 될까, 또 저번처럼 야근수당도 주지 않으면서 막 부려먹지는 않을까... 두려웠다.


그렇게 나는 아파트분양 모델하우스 알바를 선택했다.



정부에서 지원하는 청년 전세 자금 대출 덕분에 서울에서 전셋집을 구해 저렴한 이자로 지냈었다.


대학을 졸업하면 남은 계약 기간까지만 살 수 있고 전세금을 빼야 했는데,  현실에 맞게 정책이 바뀌면서 졸업 후에도 취업준비 기간을 고려해 대출기간을 연장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지방직 공무원 합격을 포기하면 서울에서 자취하며 다시 취업을 준비할 기회는 있었다.


어리석게도 난, 그 기회를 선택하지 않았고

바닥까지 내려간 자존감과 내가 뭘 할 수 있겠냐는 패배감에 휩싸인 채 시골로 내려갔다.


근무지에서 지낼 자취방을 구하면서 눈물이 났다.


'너, 지금 유배지 온 거야. 너, 벌 받는 거야.

더 노력해 보고 도전해 볼 시도조차 하지 않은 채 스스로를 포기한 죄로...'



낯선 촌에서의 공직생활은 힘들었다.

조직문화와 시골사람들 특유의 공동체우선주의 문화 속에서 나의 자유와 행복은 무참히 짓밟혔다.


강제로 끌려간 회식 2차에서 도중에 밖에 나가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너무 힘들다고, 공무원이 뭐가 좋냐고 펑펑 울었다.


엄마는 '그럼 그때 서울에서 집계약 연장하고 취업준비를 더 해보지 그랬냐. 언제는 서울살이 힘들다고 다 포기한다더니... 자신 있으면 관두고 하고 싶은 거 하라.'라고 하셨다.


엄마는 딸이 부모의 가난 때문에 꿈을 포기하지 않길 바라셨다.

그래서 늘 응원했고 마음껏 꿈을 펼치기 바라셨으면서도

그분들이 생각하기에 최고의 직업인 공무원이 되길 바라셨다.


대학 때부터 공무원 시험 한번 봐라, 그냥 한번 보는 건데 뭐 어떠냐는 말로 나를 설득했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며 그 말을 무시했었는데, 반복되는 설득에 말려버린 건가....

그 말이 내 무의식에 남았던 걸까.


더 이상 부모님께 손을 벌리며 살기 싫었고,

무직자로 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여 미친 듯이 공무원 준비에 돌입했다.


공부하러 학원을 갈 때도 매일 밤 울어서 퉁퉁 부은 눈과 좌절한 마음으로 수업을 들었었다.


솔직히 공부가 잘될 리 없었다.


그럼에도 운 좋게 공무원에 합격했다.


합격하지 않았다면, 과연 내가 다른 일을 하고 있었을까?




아니다 싶을 때는 과감한 유턴이 필요하다.


1년만 버티면 나아질 거라는 주변의 희망고문에 1년을 버텼고, 그래도 2~3년은 끈기 있게 다녀보고 신중히 결정하라는 말에 3년을 버텼다.


모은 돈이라도 있으면, 그 자금으로 뭐라도 하련만... 입에 풀칠하기 바쁜 쥐꼬리 월급에 뭘 바랄까.


그만두겠다고 말하자 부모님은 나에게 고향으로의 전출을 권했다. 여기로 오면 나아질 거야... 그곳이 이상한 걸 거야....


운 좋게 고향으로 옮겼고, 역시나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되었다.


코로나로 먹고살기 힘든데, 월급이 따박따박 나오는 공무원이 얼마나 좋냐며... 밖은 더 춥고 고단하니 후회할 짓 하지 말라고 했다.

그렇게 또 3년이 지났다.


어느새 10년 가까이 되었다.


내 상태를 객관적으로 평가해 보니

나이는 30대 중반.

2~3년 더 있으면 연봉 5천이 넘게 된다.

10년간 투자한 기회비용을 한 순간에 날려먹을 자신이 있는가?

이직을 위해 준비해 놓은 게 있는가?


우습게도 배짱도 없고 준비된 것도 없다.


그럴 수밖에 없는 핑계와 이유도 만들고자 한다면 얼마든 만들 수 있겠지만,


결국 징징거리기나 했지

제대로 된 노력은 하지 않은

망상에 사로잡힌 미친 x.




그때 그만둘걸....

이제 되돌릴 수도 없고 어떡해?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

- 조지 버나드 쇼 <묘비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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