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한 사무직에 6시 칼퇴근.
철밥통, 정년과 안정적인 노후 보장.
여자에게 그만한 직업이 없다며 주변에서는 공무원이 되기를 권유했다.
그 말을 믿지 말았어야 했다.
적어도 무슨 일을 하는지, 얼마나 많은 부서가 있고 다양한 분야의 업무를 하는지, 조직 문화는 어떤지, 신중히 알아봤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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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은 의상학.
서울소재 대학에서 공부했으나 내 체형은 디자인실 막내를 하기에 부적합했고 딱히 대단한 패션 감각을 갖고 있는 건 아니었다.
그래도 손으로 옷을 만드는 걸 좋아해서 실습 과목은 모두 A 이상을 받았고 명장님 밑에서 패턴(테일러링)을 배우기도 했다.
그 당시 패션계는 열정페이라는 이름답게 싼 값으로 노동을 착취했고 그마저도 기회가 없으면 경력을 쌓을 수가 없었다.
운이 좋게 패션회사 소재팀에서 일을 하게 됐지만, 엄청난 업무 강도와 상사의 갑질, 그에 비해 적은 보수, 불안정성으로 꿈을 내려놓았다.
형편이 어려워 부모님이 반대를 많이 하셨음에도 꿈을 이루겠다는 목표 하나로 지방에서 상경했는데, 막상 대학을 졸업하고 나니 눈앞의 현실에 와르르 무너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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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 일했던 의류 브랜드의 소재팀은 팀장 1명과 알바생(나)1명으로 구성되었고, 정직원만큼 일했지만 봉급은 100만 원 초반이었다.
그래도 일은 재미있었는데, 팀장의 온갖 히스테리를 참느라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었다.
계약직으로의 전환 얘기도 나왔지만 버틸 수 없어서 그만두었고, 내가 그만둔 지 1년 뒤에는 패션시장 불황으로 회사 상황이 어려워지면서 그 브랜드는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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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일을 하면서 술을 마시지 않는데도 간이 나빠져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었다.
부모님은 그런 낯빛을 보시고는 당장 그만두고 공무원을 하라며 나를 설득하셨다.
사실 대학교 1학년 때부터 부모님은 틈만 나면 공무원의 장점만을 얘기하며 그냥 한번 시험이라도 보라고 권유했다.
내 꿈을 이루겠다는 포부로 그 권유를 거절하며 스물다섯까지 버텼으나...
주변 친구들의 취업 소식, 서울에서의 불안정한 거취 문제, 아버지의 투병 등으로 조급하고 불안한 마음에 덥석 공무원을 하겠다고 진로를 틀어버렸다.
궁지에 몰린 나의 선택지에는 '공무원'만 보였던 것이다.
사실, 다른 의류 브랜드로부터 소재팀에 일하러 오라는 연락을 받기도 했지만...
공무원이 되어서 칼퇴 후 만들고 싶은 옷을 실컷 만들면 된다는 생각으로 어리석은 선택을 하고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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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공부를 끝내겠다는 일념으로 종로에 있는 학원을 다녔다.
2015년, 운이 좋게도 공부한 지 1년 만에 지방직 9급에 합격했다.
기쁨도 잠시.
나는 공무원에 대한 직업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