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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탈희 Jul 02. 2024

고문관

경계선 지능인과 직장 생활하는 고통

경쟁률을 뚫고 공무원 시험을 통과한 사람들은 비범하진 못해도 평범할 거라 생각했다.


보통 경계선 지능인들은 공무원을 합격하기 힘들기 때문에 직장에서 만날 일이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경쟁률이 매우 낮은 지역이나 직렬이 있기 때문에 충분히 그들도 합격할 수 있다.


A도 그렇게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


9급 공무원이 되기 위해 인생의 1/3을 공부에 매진하여 드디어 합격했다.


그 당시 그 시험은 경쟁률이 2:1이었기 때문에

과락만 넘기면 충분히 합격할 가능성이 있었고 한우물만 팠던 A는 본인의 전략대로

만만해 보이는 지역에 지원하여 합격했다.


그때부터 불행이 시작되었다.

A 주변의 직원들에게.



A는 일명 고문관이었다.


직원들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들 중 10가지만 적어보자면...


1. 같은 내용으로 20번 이상 가르쳐줘도 기억 못 함.

2. 인수인계 내용을 메모해 놓고도 자신이 메모한 사실 자체를 음.

3. 눈치 없고 정상적인 의사소통이 안되며 말귀를 못 알아듣고 엉뚱한 대답을 늘어놓기 일쑤.

4. 다른 사람이 본인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어도 미안함 없음. 공감을 못하고 남의 부정적인 평가에 타격 없음.

5. 스스로 검색해서 알아보고, 연습 삼아서 해 보고, 담당자 본인이 책임지고, 판단하는 것들을 못함.

6. 남들 하루에 문서 10개 만들어 결재받을 때,

문서 1개 가지고 2~3일 걸림.  그 마저도 틀려서 수차례 수정.

7. 비품 창고 안, 코앞에 보이는 물건을 못 봐서 없다고 보고함.(시야가 좁고 집중을 못함.)

8. 응용, 적용, 활용이 되지 않아서 모든 경우의 수를 건건이 그때그때 알려줘야 함.

9. 본인만의 논리를 굽히지 않는 고집이 있음.

(비효율적인 방식을 고집해서 더 쉬운 법을 알려줘도 본인 방식을 고집함.  당연히 일은 느리고 정확도도 떨어짐.)

10. 몸에서 냄새가 많이 남. 주변 반경 2m 안에 A의 체취가 퍼져 직원들이 디퓨저, 향수, 탈취제로 고통을 참고 있음.



이 10가지는 그래도 참을 수 있다.

정말 참을 수 없는 것은


본인은 아무 문제가 없고 정상인 사람이라고 믿는 점이다.


A는

나는 왜 이 모양일까?

나는 왜 또 까먹었을까?

나는 왜 이렇게 느릴까?


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다.


스스로가 유능한 공무원이라 굳게 믿으며

오늘 하루도 열심히 일한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행복하다.


나로 인해 주변 직원들 업무가 과중되든, 스트레스 받든, 전혀 알바 아니다.


주변 사람들이 잘못을 지적하고, 화를 내고,

부정적인 평가를 직설적으로 말해줘도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다.





경계선 지능인을 검색해 보면 간혹 스스로가 경계선 지능인이라서 의도치 않게 실수하고 자꾸만 배운 내용을 잊어버리니 힘들다는 고백이 나온다.


스스로를 객관화하고

나에게 문제 있음을 인정할 수 있다는 건

그래도 희망이 있다.


최소한 미안해할 줄 알고,

나로 인해 남들이 힘들어한다는 것을 알아채는 눈치가 있는 것이며,


핑계대기보다는 스스로가 기억력이나 집중력이 부족함을 인정하고 고민하는 것은

그만큼의 인지능력이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A에게 딱 그만큼의 능력을 바라는 것도 욕심이 되어버린 상황.


그런 A와 20~30년을 더 같은 공간에서 일해야 한다는 사실이 고통스럽다.





다른 부서로 보내버릴 수 있으면 좋으련만.

폭탄 돌리기를 차마 할 수 없어서

꾹 참고 같이 일하거나

아니면 내가 옮겨야 한다.


업무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데도 자를 수가 없다.

없어도 되는 예산을 더 세워 A의 업무 일부분을 업체에 외주 맡기게 되었다.

그런데도 불필요한 야근을 하며 A는 야근수당을 야무지게 챙겨간다.

스스로는 열심히 성실히 일하고 있다고 자부하면서.


이렇게 세금이 낭비되지만,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이상 A를 자를 수가 없다.



A는 악의가 없다.

그냥 인지능력, 습득능력, 기억력, 응용력, 공감능력, 소통능력, 집중력, 운동신경 등...

전반적으로 다 떨어지는 경계선 지능인일뿐.


그래도 스스로는 행복하고 만족하니 부럽기도 하다.



악한 인간이 아님을 알지만,

차라리 못됐지만 자기 할  잘하고 남에게 업무 부담을 주지 않는 사람이 낫다는 생각이 든다.



조카가 다니는 어린이집,

6살 아이 하나는 아직도 자신의 이름을 말하지 못한다.


선생님들이 부모에게 조심스레 검사와 치료를 권유해 보지만 그 아이의 부모는 우리 아이가 정상적으로 성장하고 있다며 방치한다.


또래 아이들보다 느리고 소통이 어렵고 문제가 있는데도, 부모가 알아채지 못하거나 문제를 인정하지 않아서 상태가 악화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어른이 된 아이는 사회생활, 경제생활이 어렵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으며 자존감이 떨어지게 된다.


이미 성인이 된 경계선 지능인은 사실 치료하기 힘들다.


어릴 때 빨리 발견하여 맞춤 교육을 해주면

훨씬 나아진다는 전문가의 말에도


내 아이는 문제없다는 믿음으로 상황을 악화시키는 부모를 보면 너무나 안타깝다.



언제부턴가 경계선 지능장애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이 커지고 언론에서도 언급되면서 많이 알려지게 되었다.


하지만, 정신과 의사도, 교육자도, 정치가들도... 또 언론이나 대중매체에서도 모두들 경계선 지능인들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것에만 초점 맞춰 얘기할 뿐


그 반대에 서서 그들과 함께 일하고 생활하며 고통을 겪는 이들을 위한 얘기는 없었다.


화병이 나고, 스트레스받고,

말귀를 못 알아먹으니 언성이 높아지고...

심지어는 일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까지 하게 만드는 이들을

그저 감싸고 도와야 한다고만 말할 뿐이다.



사람은 다 쓸모가 있고, 역할이 있다며

A를 비난하지 말라 했던 이들도

이젠 질려서 치를 떤다.


포기하려고 해도

공돈 받아가는 꼴을 못 보겠고


그래서 일을 시켰더니

되레 더 큰 고통을 안겨주는 A.



이젠 A의 얼굴만 봐도 혈압이 오르고

불쾌한 냄새 때문에 스트레스받는 게

매일 반복되니 고통스럽다.


최소한의 업무적인 대화만 하는데도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A.


누가 피해자인지. 누가 약자인 건지.

누가 배려받아야 하고 이해받아야 하는 건지.




A에게 물어보았다.


스스로에게 답답함을 느낄 때가 없냐고.

나는 왜 남들보다 느릴까 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냐고.


만약, '그렇다'라고 했다면 연민이라도 생길 텐데.



돌아오는 대답은?


'당신이 엄청 뛰어나서 잘하는 거지,

내가 못하는 게 아니다.

나는 열심히 하고 있고, 나는 발전하고 있으며 나아지고 있다.'



상대방을 높게 평가함으로써

본인을 평균으로 만들어버리는 화법과


전혀 나아진 게 없는 데도, 나아지고 있다고 믿는

긍정적인 마인드.


대단한 멘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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