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비 내리는 밤에

머피의 법칙

by 수험생

코에 닿은 것이 주위사람의 침 같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채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언제 거세질지 모르는 빗방울을 피하려 주변 편의점에 들어갔다.
들숨 날숨, 눈치가 보이는 숨소리를 3번 정도 내쉬었다.
계산대에 알바생도 신경 쓰였는지 곁눈질을 틈이 날 때마다 했는데
걱정의 표시보단 거북한 표현을 나름의 격식을 갖추고 한 것 같아,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
앞머리의 물방울을 털어내고, 살 생각은 없지만 음식 코너 쪽으로 향했다.

단아하게 진열된 김밥들을 보니, 마음이 조금 누그러졌다.
방금까지 썩어가던 음식물에 방부제를 넣어둔 듯한 묘한 느낌이다.
정말 그럴 생각은 없었지만, 가장 저렴한 김밥과 핫바를 꺼내 계산대로 움직였다.
마침 우산도 보이길래 엉거주춤 방향을 틀었다.

계산대에 김밥과 핫바를 가지런히 올려놓고, 우산은 심이 내쪽을 향하도록 밀어 넣었다.
"봉투 필요하세요.?"
"아니요, 괜찮아요."
단말기에 카드를 집어넣기 전, 불현듯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지금 내밀고 있는 카드는 후불제 교통카드인데 정확한 메커니즘은 모르지만, 교통비 이외에 결재는 후불제가 아니다.
"그.. 카드 잔액이..."
정말 소름 돋았다. 머핀인가 머피인가 하는 사람을 그만 상기시키고 싶다.
"아... 그러면 김밥이랑 핫바는 빼주세요"
"... 아..."
둔탁한 기계음이 다시 한번 들렸다.
"죄송해요, 다시 갖다 놓을게요"
민망한 상황을 타개할 말을 꺼내고 싶지만, 무어라 할 말이 없다.
모양새가 너무나 어색했지만, 참고 잽싸게 뛰져 나왔다.
아까 넣어둔 방부제도 상해 버린 했다.

거리에는 다 떨어지지 못한 물방울들이 힘을 내고 있었는데, 정말 기운 빠지는 하늘이다.

집까지 거리는 대략 10분, 신호등이 심술부리면 13분까지도 가능한 거리라 형편이 좋지는 않다.
챙같은 편의점 캐노피에서 마음의 준비를 하고, 다시 한번 뛰쳐나갔다.

다행히 가는 방향에 사람이 없어 들쭉날쭉한 모양새를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해방감 같은 것은 느껴지지 않았다. 찝찝하고 불쾌한... 특히 웅덩이를 밟는 순간에는 다른 의미로 짜릿함마저 느껴졌다.

숨소리를 걱정할 즈음에 신호등이 보였다.
좋은 타이밍이다. 굳이 굳이 완급조절을 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시발, 어째 낯이 익더니, 몇 안 되는 여자동급생이 눈에 들어왔다.
잘 보일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이 정도의 몰골을 보여줄 만큼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어찌 저찌, 고개를 반대방향으로 미묘하게 틀어주고 뛰는 듯, 걷는듯한 발걸음을 취했다.
뒤통수에 따가운 시선이 느껴질 무렵,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이 머피씨였으나, 뭐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아파트 정문까지 오니, 그제야 안심이 되었다.
계단에 앉아 여러 차례 숨을 고르고 축축한 몸을 일으켜 세웠다.
터벅터벅, 물이 새는 발걸음에 걱정이 되어 휴대폰을 확인했지만, 다행히 지퍼 안쪽까지는 침투하지 않은 모양이다.
"..ㅇ취ㅣ.."
뛰어다니느라 눈치채지 못했지만, 오슬오슬 떨리는 추위다.
얼른 따뜻한 물에 담그고 싶던 찰나, 문자가 왔다.
"...."

머피씨는 가히 충격적일 정도로 위대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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