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소설
사람 키만 한 벤치가 가로등 밑에 자리 잡고 있었다.
서둘러 흙이 묻은 다리를 털어내고 화장실 변기에 앉는 것처럼 작정하고 앉아버렸다.
앉아마자 보인 것은 까마득한 모기 때였다.
평소에는 불쾌한 비행을 저지르는 모기들을 끔살 시키고 싶었을 테지만, 오늘만큼은 저 녀석들이 손해일 것이다.
나는 잘 느끼지 못하지만, 확신하는 악취가 땀구멍 속에서 나기에,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 오물 앞에서 저런 작은 녀석들은 손쓸 방도가 없다.
물론 나 또한 끔찍한 것을 마주해야 했다.
천천히 허리를 굽히고 왼쪽 아킬레스건을 사타구니 쪽으로 밀착시켰다.
또한 신발 뒤꿈치를 잡아 가볍게 밀어내었다.
그러곤 빗물과 땀이 적절히 섞여있는 양말을 일차적으로는 발볼까지, 후에 완전히 벗겨냈다.
소름이 돋았다.
대충 봐도 커다란 물집이 발바닥에 위치해 있었다.
걸을 때마다 둔탁한 이물감이 느껴졌지만, 실제로 보니 이물감 같은 단어는 잘 포장한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었다.
검지로 살짝 찔러보니 조금의 따가움과 짓눌림의 느낌이 오묘하게 들었다.
확 김에 세게 누르자 소리도 없이 터져버렸다.
나는 순간 고개를 치켜세워야 했다.
생각보다 끔찍한 따가움이다. 5개 정도 되는 꼬챙이를 지속적으로 눌러재끼는 듯했다.
송골 맺힌 눈물을 닦아주고 상처부위를 소독했다.
소독약을 뿌릴 때마다 삐릿했지만, 아까 전의 충격과 고통에 비할 것은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밴드까지 붙여주고 호주머니 속 휴대폰을 꺼냈다.
물이 들어가 먹통이 된 휴대폰을 이리저리 두드려보았지만, 그것뿐이었다.
"제기랄..."
속이 끓는 목소리가 들렸다. 꽤나 가까운 곳에 인상을 찌푸린 남성이 슬리퍼를 질질 끌며 걸어왔다.
"...."
관상 같은 것을 믿지는 않지만, 그것도 정도라는 것이 있다.
내가 만약 여자였다면 신변의 위기를 느낄만한 낯짝이었다.
그때 그는 잠시 나를 훑어보았다. 그의 시선은 염증이 터진 발 쪽에 집중되어 있었는데, 애써 시선을 피했다.
"괜찮으세요?"
아까 전과 목소리가 사뭇 달랐다. 과거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간극에 인상을 집어넣었다 하더라도 확연하게 그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아.. 조금 걷다가 힘들어서요, 뭐 조금만 쉬었다가 바로 움직이려고요"
"혹시 집이 가까우신가요? 다리가 불편하시면 부축해 드릴게요"
"....."
자세히 보니 그의 손은 어쩔 줄 몰라하며 그의 몸통에 어색하게 붙어있었다.
"아.. 그러면 조심히 들어가세요."
말끝을 흐리며 등을 돌리는 그의 모습을 보며 무언가 확신했다.
양손이 모두 의수였다.
"그럼 조금 쉬고 저기 서등초등학교까지 부축해 주실 수 있을까요?"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돌리고 옅은 미소를 풍기며 말했다
"물론이죠, 제가 몸은 이렇지만, 부축해 드릴 여력은 충분합니다"
나풀거리는 손을 강조하며 다부진 표정으로 일관했다.
솔직히 놀라웠다, 내가 알던 세상의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놀란 제스처를 취한다면 그것은 좋은 판단이 아니라고 직감했다.
그에게 심각성을 강요할지도, 혹은 그런 향기라도 느끼게 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별로 놀라지 않으시군요, 하긴 요즘은 더한 사람도 sns에서 볼 수 있고요 그렇죠?"
(아뿔싸)
"혹시 손이 어쩌다가 그렇게 되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민감한 질문일 수도 있지만 그의 태도나 행동이 궁금해서 미칠 것 같았다.
"잠깐 앉아서 얘기해도 될까요?"
나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확실하게 의사를 표현했다.
이후 그가 벤치 쪽으로 들어오자, 퀴퀴한 담배냄새와 꼬순 된장냄새가 스며들었다.
모습은 멀리 있을 때와 달리 험악하다기 보단 듬직한 곰상이었다.
하지만 체취로 인해 인상을 조금 구기고 말았다.
그는 2,3 뺨정도 떨어져 공손히 두 팔을 모아 앉았다.
그러곤 모기가 조금 거슬렸는지 머리를 조금 흔들더니 차분히 시선을 바닥에 고정했다.
"서론이 조금 길 수 있는데.."
"괜찮습니다"
딱 잘라 말하자 그제야 그는 긴 숨을 들이마시며 말을 이었다.
"그날은 다른 날보다 행운이 좀 더 실려있던 날이었어요, 아침부터 집사람이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소고기, 그리고 어묵이 들어간 멀건 장국을 준비해 줬어요, 세탁기도 살 돈이 아깝다며 고약한 빨래더미를 손으로 박박 닦아내던 사람이 말이죠.
그러곤 저녁에는 외식하자며 느닷없이 부드럽게 으름장을 놓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 사람이 복권이라도 당첨이 되었나 싶었습니다."
그는 잠시 어깨로 입을 닦아내었다. 그리고 시선을 서서히 위쪽으로 향하더니 무언가에 잠긴 듯이 깊은 표정을 지었다.
"출근준비도 도와줬어요, 하지 말라고 단호하게 털어내도 그 러시아 오뚝이 인형처럼 끈질기게 도와주었죠, 그런 일은 질색팔색하던 사람이...
잠시 세상이 바뀐 것처럼 느껴졌어요, 막간을 이용해 탄 믹스커피도 이게 커피맛이던가 하며 의심하고 마셨댔죠.
출근길 지하철에선 제가 꽤나 우스꽝스러웠나 봅니다, 직장지인 말로는 헤벌쭉한 모습이 매칭이 안된다 뭐라나, 주변사람이 똥 씹은 표정으로 자리를 피하니 저는 새삼 머리를 감지 않았나 마음을 졸이고 있었죠."
그는 다시 입을 닫았다.
"아내분을 많이 사랑하셨나 보네요."
"그것도 참, 세상이 바뀐 것처럼 보였는데 아니라고는 말 못 하겠네요."
나는 왼쪽 겨드랑이에 박혀있던 검은 가방에서 보리차가 들어있는 보온병을 건네드렸다.
"목 좀 축이고 천천히 얘기해 주셔도 됩니다, 어물쩍한 시간이기도 하고요."
그는 보온병을 건네받고는 순식간에 해치워버렸다.
그리고 다시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회사에서도 아마 그런 상태였을 겁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반응이 일관됐으니까요.
그렇게 회사일을 끝내고 지하철로 향하는 도중에 머리에 무언가 쏟아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다름 아닌 땀덩어리였죠, 식은땀, 어깨나 등 쪽에는 자국이 선명하더군요.
시선이 캄캄하다는 걸, 머리가 어지럽다는 걸 더 이상 미룰 수 없겠더군요.
바로 앞에 그 사람이 있는데 말이죠."
"그게 그날의 마지막 기억입니다, 집사람말로는 내리 하루를 꼬박 기절해 있다고 했어요. 원인은 급성뇌졸중이라 하던데, 깨어나 보니 두 팔에 힘이 안 들어갔어요. 이제 괜찮다고 울먹이던 그 사람을 쓰다듬어 주고 싶었는데, 뭐랄까 붙어있다고는 느끼는데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으니 씁쓸하더군요, 정말로.."
그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이 공간을 뜨겁게 끓이는 그의 눈물이 조금씩 떨어지고 있었다.
"의사양반이 이대로는 팔이 썩을 수 있다며 조심스레 절단하자고 제안했어요, 그런 단호한 울림에 집사람은 풀썩 주저앉더군요.
너무나 힘없이 주저앉은 집사람이 마치 장례식장에서 울지 않는 유가족 같았습니다.
그때 제 세상은 무너졌다고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팔을 절단하기 전에, 아내에게 그날 아침에 대해 물어보았습니다.
대답은 가히 충격적이었습니다.
울먹이며 눈물이 코인지 입인지 하는 곳에 들어가는 와중에 뚝뚝 말하더군요.
연애할 적 사진을 우연히 휴대폰에서 보았다고, 그때가 생각이 나서 그랬다며 말하더군요.
정말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귀여운 이유로 저의 세상을 바꿔놓았다니 참 놀랍기도 했고요.
덕분에 가벼운 마음으로 수술실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저에게 의수가 생기기 전까지 아내는 저의 뒷바라지를 해줬어요."
"한 1년쯤 지났을 거예요, 아침마다 아내가 먹여주던 밥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내는 없고 한 쪽지만 덩그러니 식탁에 놓여있더군요.
그 내용은 기억에 없습니다.
확실한 것은 그 이후로 아내는 어디론가 가버렸다는 것입니다.
그 쪽지 안에 그 행선지가 적혀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차마 다시 볼 염두도, 보고 붙잡을 자신도 뭐도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저는 주저앉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지금까지 제 뱃속에 다 담지 못해 흘러 넘 칠 정도의 사랑을 주었습니다.
그 사람이 그렇게나 사랑했던 나를 포기할 순 없었다 이 말입니다."
그는 오른쪽 의수를 자랑하였다.
"그리고 필사적으로 살다 보면, 어쩌면 그녀가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요?"
나는 그를 양손으로 안아주었다.
그리고 더 이상 그에게서 악취는 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