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한 하루

창작소설

by 수험생

p는 엉거주춤 똑 부러진 선택 하나 못하는 지경에 이르러, 에둘러 눈을 흘기며 바디 랭귀지를 꺼내보는 것이었다.
"왼쪽으로... 아 레프트 원 블록... 앤 롸이트 아.."
p는 자신에게 이러한 시련이 주어짐이 마땅한 하늘의 벌이었는지에 대해 곰곰이 더듬거려 보다가 오늘 아침 콕콕 찌르는 날 선 기억을 떠올려 보았다.

그가 까무러치게 놀란 이유는 자그마치 짧은바늘이 10을 가리키는 것이 눈앞에 선명히 보이던 것에 연유했다.
놀라움이 사뭇 가시고, 그는 버려진 시간에 대해 좁쌀만큼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텁텁하였다.
그러곤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에게 자신의 소중한 2시간, 내지 3시간 따위를 토로하며 화풀이를 끄집어내는 것이었다.
장작 속 타올라 툭툭 떨어지는 불똥이 집안 분위기 속 흐르는 공기덩이를 발화하여 터트렸다.
연쇄적인 폭발이 진행되었다.
하지만, 항상 p가 뱉어낸 말들은 p의 귀나 입에 엉겨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논리의 결함이나 근거의 타당성 같은 딱딱스러운 것을 걷어내더라도 그의 마음속에는 끈적이는 무언가 뱉어낸 말들이 줄줄이 쌓여만 갔다.
p는 답답한 이 상황 속 어느 타개할 만한 충격스런 비속어들을 잠시 목 속 구덩이에 담가놓았다가, 꺼내 볼까도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그것은 인간됨됨이에 대한 묘한 p의 철학에 철저히 위배되는 것이기도 했다.
물론 지금까지 뱉어낸 말들은 어디까지나 그가 생각하는 인간의 허용범주 속 어휘이거나 말의 표지라고 단정 지어 생각하는 것이었다.

p는 끝까지 묵혀두었던 말들을 꺼내놓지 못하였다.
이윽고, 태워진 텁텁한 내음이 더 이상 퍼지지도 않을 시간이 경과하자 분위기는 급격히 냉랭해졌다.
이제껏 몰아친 p의 언행 속 또 어디선가 되풀이되는 이 찜찜함이 괜스레 차갑고 무겁다는 것을 느끼고 나서야 p는 머리를 감고 집을 나섰다.

p의 배속에서 커다란 알람이 울렸다.
주위를 살핀 p는 쥐똥만 한 눈물이 나는 것이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것임이 분명하다는 운명론적 사고를 통해 세상 불쌍한 표정으로 편의점으로 쪼르르 도망치던 것이었다.
p는 제 손이나 포켓에 돈이 없다는 것을 망각하고 어슬렁어슬렁 계산대 위에 진라면과 참치 삼각김밥을 꺼내놓았다.
주인이 바코드 스캐너로 찍찍 찍어내고 있을 때 p는 주섬거리며 당황스러운 티를 내지 않으려는 것에만 급급하였다.
이어, 크흠거리며 넌지시 손을 꺼내 미안하다는 둥 마는 둥 그 먹을거리를 원 위치로 옮겨놓았다.

그렇게 홀랑 들어간 배속, 꼬르륵 거리는 것에 주체적인 판단 따위나 억제 욕구가 바랠 즈음에 땡그랗고 커다란 눈의 외국인이 길을 묻는 것이었다.

".. 쏘 쏘리.. 아이캔 스피크 잉글리쉬..아 캔트, 캔트"
그는 우스꽝스런 몸동작을 멈추고 눈을 내리며 떨리는 발음으로 언질을 주었다.
외국인이 가 버리고 나서 p는 드디어 p 자신에 대한 솔직한 평을 내놓았다.
"에휴 병신 같은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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