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에 쓴 약이 몸에 좋다”라는 말이 있다. 이는 통념상 맛과 건강이 반비례한다는 생각을 반영한 것이다. 이 말을 기업에 적용해 보면, ESG와 기업의 재무성과 및 가치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기업 관계자들과 이야기해보면, 일반적으로 그들에게 ESG는 따라갈 수밖에 없는 추세이자, 기업의 책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곧 비용이며, 재무 또는 기업 가치와는 별개로 오히려 부담을 준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사실 이는 맞는 말이다. 어떤 기업에서 ESG 내재화 시스템을 구축하고 비즈니스를 진행하려면, 인력 채용, 내부 교육, 지속가능경영보고서 작성, 온실가스 인벤토리 구축, 공급망 대응 등 모든 것이 비용이 든다. 기업은 이러한 부담 때문에 의무화되기 전까지는 ESG를 최대한 피하려 하고, 비즈니스 의사결정을 쉽게 내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과업에서도 ESG 평가점수 향상, 공급망 대응, 공시 등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면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학계에서는 ESG와 재무성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까? ESG와 기업의 재무적 성과의 관계에 대해선 긍정론과 부정론이 혼재되어 있다. 긍정적인 관계를 설명하는 대표적 예는 미국 버지니아 대학 프리먼(Freeman) 교수로, 이해관계자 이론을 통해 이해관계자, 윤리, 가치, 사회 문제 해결 등이 기업의 이익 창출과 연계된다고 주장한다. 반면, 부정적인 이론의 대표자인 밀턴 프리드먼(Friedman) 교수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비용 증가를 초래하므로, 이러한 활동은 기업의 재무적 성과 및 기업 가치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고 설명하였다. 필자가 직접 여러 보고서를 확인한 결과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가 다소 많았다. 그럼에도 사회적 활동이 기업의 성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R&D 투자,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 등이 필요하다고 언급된다.
사실 학문적으로나, 과학적으로 ESG가 재무적 성과 향상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관성을 직접적으로 증명하기는 쉽지 않다. 이론적으로 어떤 요소가 영향을 끼친다고 증명하기 위해서는 다른 요소들은 동일하게 통제해야 하는데, 이는 사회 또는 경제 현상에서는 즉각적으로 증명하기는 어렵다. 기업의 재무적 성과 또는 기업 가치의 향상은 거시 경제, 경영 등 다양한 요소들이 반영되어 하나의 결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론적인 상관관계 증명은 어렵더라도, 실제 비즈니스에서는 ESG가 기업의 경영 성과 측면에서 도움이 된다는 사례를 많이 찾아볼 수 있다. 하버드 경영대학은 ESG 성과가 우수한 기업들이 리스크 관리, 운영 효율성, 브랜드 가치 등에서 경쟁 우위를 가지며, 이는 기업 가치의 상승으로 이어진다는 상관관계를 밝혀냈다. 매출 측면에서 ESG를 통해 전기차나 신재생에너지 분야처럼 향후 성장성이 높고, 지속 가능한 투자 기회를 확보할 수 있으며, 이는 사업의 시장을 확대하거나 신시장 개척에 도움이 된다.
투자의 귀재인 워런 버핏은 위대한 기업의 조건으로 영구적 해자를 보유해야 한다고 했으며, 핵심 요소 중 하나로 낮은 생산원가와 강력한 브랜드 파워를 꼽았다. 이는 ESG 측면에서도 부합한다. 첫 번째로, ESG의 핵심 가치인 지속 가능성은 기업 운영의 효율성으로 연결되어 낮은 생산원가로 이어진다. 예를 들어, 어떤 제품의 판매가 지속 가능성이 보장된다면, 장기적인 설비 계획을 통해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또한 자본시장에서 기업은 신뢰도가 중요하기 때문에, ESG 실천으로 인한 기업의 신뢰도 확보는 자본 조달에서도 비용 절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
마케팅 및 브랜드 가치 측면에서도 ESG는 큰 무기가 될 수 있다. 최고의 마케팅 재료는 소위 ‘정직함’이다. 대중은 소비할 때 자신이 의식적인 소비자라는 생각이 들면, 거기에 비용을 조금 더 지불하는 것은 근사하다고 생각하며, 그 기업에 대한 충성도를 높일 수 있다.
기업의 수익성을 나타내는 지표 중 ROE(Return On Equity, 자기자본이익률)라는 항목이 있다. 기업 투자자들은 이 항목이 높은 기업에 투자하려는 경향이 있다. ROE는 기업의 순이익을 자기자본으로 나눈 수치로, 기업이 이를 높일 방법은 분자에 해당하는 순이익을 높이거나 분모에 해당하는 자본을 낮추는 것이다. 순이익을 늘리는 것은 사업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지만, 기업 자기자본을 줄이는 것은 ESG의 거버넌스에 해당하는 주주 친화적인 정책을 통해 배당을 늘리거나 자사주 소각으로 가능하다. 일례로, ESG 및 주주 친화 정책으로 유명한 애플은 2013년부터 매년 자사주 매입/소각을 진행해왔으며, 그로 인해 ROE 상승률은 실제 순이익 상승률보다 4~6% 정도 더 성장했다. 이는 투자에 있어서도 기본 전제가 되어야 하는 것이 기업 수익성 못지않게 지속 가능성일 것이다.
기업의 가치를 높이는 것은 혁신적인 사업 기반을 통해 이윤을 창출하는 것과 동시에 ESG 또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통해서도 이루어질 수 있다. 기업의 최고 추구 가치는 영속성이며, 이는 ESG의 핵심 가치인 지속 가능성과 일치한다. 기업 가치와 ESG는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라, 동시에 추구되어야 할 상호보완적 개념이다.
최근 우리나라는 K팝, K드라마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글로벌하게 인정받고 있다.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같은 대기업들도 전 세계에서 명성을 떨치고 있지만, 그 명성과 제품 가치에 비해 기업 가치는 이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현상이 만연하다. 이는 국내 기업들이 ESG와 거버넌스에 소홀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 기업들도 ESG 가치를 높임으로써 기업 가치를 한 단계 끌어올릴 기회를 잡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