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흔들릴 수밖에 없지만, 그 흔들림 덕분에 살아있다

존재와 실재 #05

by 박종민

문득 깨닫는다. 내게는 두 겹의 세계가 있었다. 한 겹은 이성으로 파악되는, 논리와 질서로 정연하게 설명되는 세계이고, 다른 한 겹은 감각으로만 스며드는, 어떠한 이치도 통하지 않는 혼돈 자체의 세계다. 나는 오랫동안 전자의 세계에 안주했다. 이성은 내게 가장 견고하고 완벽한 도구처럼 보였고, 따라서 그 도구가 다듬어 준 세계관 또한 절대적인 것이라 믿었다.

그런데 불현듯 그 믿음이 무너졌다. 논리라 여겼던 것은 허상에 가깝고, 내가 ‘명료’라 불렀던 것은 그저 겉을 스치며 덮어둔 얇은 막이었다. 이성의 세상은 깔끔하고 정돈되어 있지만, 뒤편에는 얼마든지 무수한 모순과 욕망, 불안이 웅크리고 있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마치 발 디딜 땅이 순식간에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이성이라는 축이 사라지자, 목소리를 잃은 나는 커다란 침묵과 마주했다.

그 침묵 속에서 비로소 감각이 속삭였다. 바람이 지나간 후 남은 적막, 오래된 목재가 삐걱거리는 소리, 얇은 담배 연기 사이로 겨우 번져 가는 시린 공기. 이런 감각은 언제나 나와 함께였으나, 나는 이성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느라 그 미세한 떨림들을 외면해 왔던 듯하다. 부정해온 것은 이성의 힘이 아니었다. 이성은 실체가 아니라, 내가 붙들고자 했던 편리한 틀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그렇다고 감각이 나를 구원하리라 기대할 수도 없다. 오히려 감각의 세계는 휘발성과 불안정성으로 가득 차 있다. 오감은 순간순간 내게서 사라지고, 내 기억은 그것들을 흐릿한 그림자로 남길 뿐이다. 이성의 허상에서 벗어나자마자 나는 감각이라는 또 다른 허무 속으로 마구 내던져지게 되었다. 두 세계 사이에서, 나는 어떠한 실체도 붙들지 못한 채 공중에 붕 떠 있는 듯한 막막함에 시달렸다.

그럴수록 어딘가에 매달리고 싶었다. 차라리 고통이 확실하게 존재를 느끼게 해준다면, 고통에 몸부림치더라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하는 심정이었다. 결국 나는 이성도 감각도 아닌, ‘괴로워하는 나 자신’이라는 가장 원초적인 존재로 돌아갔다. 휘황한 이성의 이상도, 선명한 감각의 현전도 아닌, 고통에 생생히 꿈틀대는 그 찰나를 부여잡은 것이다.

때로는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감히 붙들 수 있는 것은 오직 고민하는 순간의 나 자신뿐이라고. 애써 버텨온 기나긴 시간 속에서, 이성의 굴레가 무너지고 감각에 피로가 겹쳐 올 때, 나를 일으켜 세웠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더 살고 싶다'는 막연한 의지였다. 설명할 수 없기에 더욱 갈급했던 그 본능이 아니었다면, 나는 이미 무너졌을지도 모른다.

그 혼란의 문턱에서, 나는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뒤엎고 새롭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성의 허술함과 감각의 무상함을 마주하며, 고통이야말로 내면의 부조리를 견딜 수 있게 해주는 독특한 힘이라는 걸 깨닫는다. 그리고 지금도, 설령 그것이 절망으로 가득 찬 날들을 의미한다 해도, 나는 그날들 가운데서만이 나를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고 믿는다.

여전히 이성은 건물처럼 서 있다. 내가 한때 그 안에 살았던 공간의 그림자가 남아 있다. 동시에 감각의 파편들은 틈날 때마다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린다. 두 세계 사이에서 나는 위태롭게 공존한다. 언어로 정의할 수 없는 불확실함이 나를 삼킬 듯 다가올 때마다, 나는 속으로 이렇게 외친다. “나는 이렇게 흔들릴 수밖에 없지만, 그 흔들림 덕분에 살아 있다.”

이 모호한 세계가 주는 혼란과 내 안의 고통을 애써 껴안는다면, 그 안에 비로소 한 줌의 진실이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언젠가 그 진실이, 끊임없이 뒤흔들리는 나 자신을 온전히 설명해 줄지도. 나는 아직 알 수 없지만, 그 의문을 갖고 이 글을 쓴다. 무엇도 확실하지 않기에, 나는 부조리한 현실과 무거운 고통을 온 몸으로 마주하며, 오늘도 흔들리면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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