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탄주 권하는 사회

by 서완석

고등학교 1학년 때 설악산으로 수학여행을 간 적이 있다. 사실 누이와 함께 힘겨운 자취생활을 하며 학교를 다니던 내게 수학여행은 호사였다. 하지만 어찌어찌 하여 수학여행비를 마련해준 누이 덕분에 속초의 허름한 여관에서 밤새 파도소리를 들으며 잘 수 있었으며 비선대나 권금성 같은 비경을 구경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그런데 여행 첫째 날 국어선생님께서 아버지 없는 사람은 손을 들어 보라 하셨다. 영문을 모르던 나를 포함한 친구 여덟 명이 손을 들었고, 선생님께서는 여관방에 빙 둘러 앉은 우리들에게 당시 강원도의 유명한 경월소주를 내놓으시며, “모름지기 술은 아버지 앞에서 배워야 하는데 너희들은 아버지가 안 계시니 선생님 앞에서 배워야 할 것이다.” 라고 하시며 우리들 모두에게 소주 한잔씩을 따라주셨다. 끔찍할 정도로 쓴 술이었는데 딱 석 잔만 주셨던 기억이 난다.


선생님께서는 소주를 따라 주시며, 첫째, 술잔은 차야 맛이 나는 것이 아니므로 술을 따를 때는 술잔에 2/3만 따를 것이며, 둘째, 아랫사람에게 따를 때도 두 손으로 따라야 할 것이며, 셋째, 술잔은 세 번 이상 나누어 마실 것이며, 넷째, 술잔을 돌리게 되면 술잔을 빨리 돌려주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진정으로 술맛을 느낄 여유가 없고 위생상으로도 좋지 않으니 술잔은 돌리지 말 것이며, 다섯째, 술좌석에서는 절대로 종교 얘기나 정치 얘기를 하지 말 것이며, 여섯째, 술을 즐기되 술에 빠지지 말 것이며, 일곱째, 가능한 술의 진정한 맛을 느끼려면 섞어 마시지 말되 어쩔 수 없이 섞어 마시게 되는 경우 저도주에서 고도주 순으로 마셔야 한다는 등의 말씀을 해주셨다.


우리 집안에서 술을 마실 줄 아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인데 내가 어린 시절에 돌아가신 아버지와 사촌 형님, 그리고 나는 술을 즐기는 편이고, 나머지 사람들은 술을 거의 하지 못하거나 조금 마시는 정도인데 선생님께 주도를 배운 이후 나는 그것을 지키려 애를 쓰며 살아오고 있다. “술은 지혜로운 자로부터 지혜를 빼앗고, 현자를 떠들게 하며, 근엄한 사람을 미소 짓게 한다.”는 호메로스의 말처럼 술이라는 것을 마신 후 완벽하게 정상적이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인지라 누구나 실수를 하게 마련이지만 지금까지 큰 실수 없이 살아 온 것에는 선생님께서 일러주신 주도가 큰 힘을 발휘했다고 생각한다.


몇 년 전 타계하신 선배 한 분은 술좌석에서 흥이 나면 1960년대 라디오 드라마의 주제곡인 ‘광복이십년’을 굵직한 저음으로 기가 막히게 부르곤 하셨는데, 항상 술이라는 것은 사람과 사람 간에 영혼의 교류를 가능케 하는 것이라는 말씀을 하시곤 했다. 동양철학을 가르치시던 그 선배는 우리 전통 혼례식에서 신랑과 신부가 한 표주박을 둘로 나눈 잔에 술을 따라 마시는 합근례의 의미를 설명해주시면서 술은 부부로서의 인연을 맺는 것을 의미하며, 표주박에 따라 마시는 술은 부부의 화합을 의미한다고 하셨다. 표주박은 그것이 반으로 쪼개지면 그 짝은 이 세상에 하나 밖에 없게 되며, 그 둘이 합쳐짐으로써 온전한 하나를 이루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가톨릭에서 행하는 성찬의 전례에서는 만찬 음식으로 빵과 포도주를 사용하는데, 예수가 최후의 만찬에서 빵을 떼어 나누어 주고 포도주를 따라주던 것에서 유래했다. 초대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이 행위를 재현하면서 이를 일반적으로 ‘성찬’이라 했다. 성찬의 원어인 '에우카리스티아(eucharistia)'는 그리스어로 본래 감사의 뜻으로, 감사와 찬미와 축복은 성찬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예절이다.


이처럼 술이라는 것이 갖는 의미는 대단한 것임에도 잘못 마시는 경우 영원히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줄 수도 있고, 죽음에까지 이를 정도의 무기로 변할 수도 있다. 조지훈 선생님의 주도 18단계 중 나는 어디에 속하나 가만히 생각해보니 석주(惜酒, 술을 아끼고 인정을 아끼는 사람), 즉 주현(酒賢) 정도는 되는 게 아닌가 싶은데 나는 아직도 술을 경계하고 두려워하기 까지 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두려운 것이 폭탄주다. 오랫동안 앞에서 말한 주도를 지키려 노력하며 살아 온 탓인지 술을 섞어 마시면 금세 취해버리고 다음 날 기억이 끊어지는 경험을 하기 때문이다.


폭탄주라는 것이 생긴 유래에 대해서는 다양한 설이 있지만 미국의 탄광, 벌목장이나 부두 또는 철강공장 등에서 일하는 노무자들이 즐겨 마신 '보일러 메이커 (Boiler Maker)'가 폭탄주의 원조라는 설이 가장 신빙성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고된 일을 하면서 벌이가 시원치 못했던 사람들이 싼 값에 빨리 취하게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폭탄주를 즐기는 선배 한분은 사람들을 자주 만나 접대해야 하는 직업을 가진 자로서 사람을 빨리 취하게 만들어 술자리가 빨리 파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폭탄주만큼 좋은 게 없다는 말을 한 적이 있는 데 이 또한 같은 맥락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주도는 술 문화가 서로 다른 동·서양, 그리고 나라마다 큰 차이가 있는데, 서양의 경우에는 대부분 스스로 따라 마시는 주도로 되어 있고, 중국도 상대방의 술잔이 항상 가득 차도록 수시로 첨잔을 하지만 강제로 권하거나 잔을 돌리지 않는다. 각자 자기 잔에 술을 가득 따라 건배를 하지만 조금만 마시고 싶을 때는 ‘스위(조금만)’라고 하며 상대편의 양해를 구하고 조금만 마실 수 있다. 일본의 경우 술잔을 권하는 것은 우리와 비슷하지만 아주 작은 잔으로 홀짝홀짝 마시다보니 많은 술은 마시지 않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술잔을 주고받거나 술잔을 돌려 마시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음주문화는 음주를 동질감 형성과 결속의 매체로 보는 것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술 마시는 양이나 시간을 자의대로 조절할 수 없는 음주문화이다. 이런 문화에서 폭탄주는 치명적일 수 있다. 내가 가장 괴로워하는 것 중 하나가 연배 지긋한 선배나 어르신 또는 직장의 상사들이 폭탄주를 만들기 시작하는 때이다. 왠지 그 자리를 피하거나 주는 잔을 마시지 않으면 그 무리에서 왕따를 당할 것 같은 분위기에 주눅이 들기 때문이다.


우리 조상들이 향음주례(鄕飮酒禮)라는 음주예절을 정해 나라에서 법도를 정하고 학생에게 교육시켰다는 것은, 주도가 인격형성에 큰 영향을 준다는 점을 인식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오늘을 살아가는 문화인에게 주도는 술을 마시는 당사자만의 개인적인 취향이 아니라 그 시대와 사회의 정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다. 각자의 주량을 존중하는 품격 있는 술자리를 기대하는 내가 구성원으로서의 자격이 없는 것일까?


[출처] 대한민국 정책브리핑(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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